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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유언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命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前生의 갚음으로 언제 나를 쏠는지 알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生과 死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生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肉身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生命 自體는 어디까지나 個別的인 것이므로
人間은 저마다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다.
實存이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人間의 當當하고 本質的인 苦惱를 뚫고
歡喜의 世界로 指向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밖에는
人間의 優越性을 認定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傳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葬禮式이나 祭祀 같은 것은 아예 所用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儀式이
만약 내 이름으로 行해 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 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生命의 機能이 나가버린 肉身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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