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스크랩] 영화 "변호인"

장백산-1 2013. 12. 24. 19:42

     

    영화 "변호인"과 "부림사건"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다.

    변호인은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했단다..

    그럼 부림사건은 뭐냐??

    부산의 학림사건이라해서 부림사건이다..

    아...그럼 학림사건은 뭐냐??

    이정도는 알고 영화를 봐야하지 않을까??

     

    시대적 배경과 역사의 흐름을 알고 영화를 보면,

    영화의 맛을 더 살리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고..

     

    역사의 시간을 박정희 저격 전으로 돌려보자...


     

    ........................................................................1979년........................................................................




    1979년 가발을 만들던 YH무역 사장이 

    회사의 공금을 들고 미국으로 튀었다..

    이 공장은 폐업을 할수밖에...


    YH무역 여공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대책을 강구해보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못했고

    마지막으로 찾아간곳이 야당 신민당사였다.

    당시 신민당의 총재는 김영삼..

    김영삼은 여공들을 위해 진짜 잘 싸웠다..

    3당 합당하기 전의 김영삼.



    암튼 이 사건은 야당과 민주화세력의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박정희와 여당은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한다.

    민주화 요구시위와 김영삼 제명에 대한 반발은 곧 부마항쟁으로 이어졌다.



    부마항쟁을 대하는 박정희와 차지철..

     

    "사태가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쏘라고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박정희-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이나 희생시켰는데,

     우리는 100만~200만 희생시키는 것 쯤 별 문제겠습니까?"

    -차지철-



    "신민당이 됐건 학생이 됐건,

     탱크로 밀어서 캄보디아처럼

     2,3백만 죽이면 조용해집니다."

    -차지철-




    그리고 10월 26일..

    박정희와 차지철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진다.

    이 사건수사를 총지휘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12월 12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한다.



    .......................................................................1980년..................................................................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과 서울의 봄..

    대학생들의 민주화 열망...

    그리고 전두환 사퇴와 비상계엄령 해제를 외치던 군중.

    서울역에 10만명의 학생이 모였다..


     

     

    "솔직히 처음 예상보다 너무나 많은 수의 인원이 군집했다.

     이 많은 인원 수를 통제할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대로 계속 청와대까지 진군하다간 사분오열되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지 모른다.

     일단 각 학교로 해산 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다시 진군하자"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심재철(현 새누리당의원) 발언..



    "지금 이 상태에서 해산을 명하는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게 끝난다.

     이 많은 인원이 현재 여기서 복귀한다면

     신군부는 어떤 보복행위를 할 지 모른다.

     결단코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걸 끝내야 한다."


    당시 학생회장이던 유시민의 주장..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

    학생들의 총궐기에 움찔했던 전두환일당은 17일 비상계엄을 확대했고,

    전국의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학생대표들을 연행했다.

    연행된 학생대표들로 인해 시위가 추춤했지만 광주에서만은 시위가 계속되었고,

    5월 18일 공수부대가 전남대에서 학생들을 진압하면서

    그 처절했던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되었다.


     





     


     








    광주를 진압한 전두환은 체육관선거에서 단일후보로 나와 99.9%로 대통령이 되었다.


    ..........................................................1981년.....................................................................


    전두환이 대통령이되자 학생운동은 더 격화되었고..

    신군부세력은 국면을 전환시키기위해 사건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운동권 학생들을 불법으로 강제연행하고,
    남영동대공분실에서 구타와 고문을 했다.
    "너 빨갱이지?"
    "너 빨갱이잖아!"

     


    이때 연행되었던 분들은 모두 실형을 살게 되었고,
    31년만인 작년에 모두 무죄로 확정되었다.
    이것이 바로 학림사건이다.
    학림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분이 노무현이다.
    그리고 그때 배석했던 판사가,
    현 새누리당 대표인 황우여와 헌법재판소장인 이강국이다..



    김종언 : http://blog.daum.net/reddragon-/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길 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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