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굉지선사 默照銘 해설
正-偏이 서로 어울리니 理·事가 하나네
<
둘은 하나를 말미암아 存在하니 하나 또한 고수하지 말지어다
오늘은 ‘坐禪箴’도 물론이지만 禪詩의 백미로 꼽히는 굉지선사의 ‘默照銘’으로
金剛經 맛을 느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좌선잠이나 묵조명 같은 선사의 시를 자꾸 음미하다보면
金剛經의 참 맛이 좀 더 깊게 우러나게 됩니다.
‘銘’도, ‘箴’도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가까이 적어두고 잘 새기라는 것이니
우리의 行住坐臥 語默動靜의 日常에서 마음이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默照란 깨달음을 체득한 경지이지 지식이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후학을 위해 그 경지를 이해시키려면 부득이 문자를 빌릴 수 밖에 없겠지요.
默照란 부처님의 삼매의 경지여서 부처님의 법을 이은 가섭존자도 알 수 없고
가섭의 법을 이은 아난도 알 수 없고,달마의 법을 이은 혜가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법계의 살림살이가 너, 나 없는 한 덩어리일 때
비로소 묵(默)과 조(照)의 참 맛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默은 眞理이고 照는 眞理가 現實化되어 宇宙森羅萬象의 모습으로 나온 眞理의 現象이므로
곧 眞空妙有의 宇宙法界 살림인 것입니다. 默照銘은 조금 길지만 문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默照銘은 일부이고 나머지는 다음 주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默照銘(묵조명) (상) / 宏智禪師 (굉지선사)
默默忘言 昭昭現前 묵묵망언 조조현전
침묵하고 침묵하여 언어가 끊어짐이여, 밝고 또렷하게 앞에 드러남이로다.
鑑時廓爾 體處靈然 감시곽이 체처영연
거울처럼 밝게 비칠 때에 툭 트임이여, 본바탕은 신령스럽도다.
靈然獨照 照中還妙 영연독조 조중환묘
신령스럽게 홀로 비춤이여, 비추는 가운데 도리어 미묘하도다.
露月星河 雪松雲嶠 로월성하 설송운교
이슬에 잠든 달과 은하수에 목욕하는 별이요, 눈 덮인 소나무와 구름 덮인 봉우리로다.
晦而彌明 隱而愈現 회이미명 은이유현
어두울수록 더욱 밝아지고 숨으려 할수록 더욱 드러나도다.
鶴夢煙寒 水含秋遠 학몽연한 수함추원
차가운 저녁놀에 학이 꿈꾸듯, 가을 물이 먼 정경까지 머금은 듯,
浩劫空空 相與雷同 호겁공공 상여뇌동
무한한 시간 속에 텅 비고 텅 비었지만, 서로 어울림이 우뢰와 같도다.
妙存默處 巧存照中 묘존묵처 교존조중
묘연함은 침묵 속에 존재하고, 공교함은 비춤 속에 존재하도다.
巧存何存 惺惺破昏 교존하존 성성파혼
巧妙함의 存在는 어떻게 지키는가? 안과 밖이 惺惺하게 혼침을 깨야하나니,
默照之道 離微之根 묵조지도 이미지근
묵과 조의 도는 離와 微를 뿌리 삼도다.
徹見離微 金梭玉機 철견이미 금사옥기
離와 微를 꿰뚫어 살피면, 옥 베틀에 황금북이 돌아가고
正偏宛轉 明暗因依 정편완전 명암인의
正과 偏이 완연히 굴러, 밝고 어두움이 서로 어울리도다.
依無能所 底時回互 의무능소 저시회호
서로 어울리되 能所가 없음이여, 理와 事가 自由自在롭게 하나로 돌아가도다.
〈보충설명〉
1. 默默忘言 昭昭現前 (묵묵망언 조조현전)
부처님께서 6년 동안 설산에서 고행하며 沈默을 지킨 모습,
유마거사가 문병차 찾아온 문수보살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沈默을 지킨 모습,
달마대사가 9년 동안 소림굴에서 沈默을 지킨 모습,
언설의 바다가 고요히 잠든 이 沈默이 바로 默默忘言(묵묵망언)입니다.
부처님의 침묵, 유마의 침묵, 달마의 침묵은 단지 멈추어 있기만 한
소극적 침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生命이 살아 숨쉬는 적극적 대화입니다.
마치 겨우내 雨雷가 땅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봄이 되면 얼음을 녹여 꽃을 피워주고,
여름이면 하늘로 올라가 비를 내려 만물이 무성하게 하고,
가을에는 오곡을 익게 하는 위대한 울림입니다.
그리고 이런 침묵(默)과 침묵(沈默)으로 뿌리내린 부처님의 49년 설법이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것이 昭昭現前입니다.
그러므로 空함까지 空하여 俱空(구공)을 이루어 是非分別이 사라진
‘默默忘言’은 체(體)에 관한 表現이고, 昭昭顯前은 용(用)에 관한 表現입니다.
굉지선사는 法性의 아름다움을 默과 照, 體와 用으로 번갈아 읊어가며
우리로 하여금 마음에 새기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2. 鑑時廓爾 體處靈然(감시곽이 체처영연)
여기서의 거울은 투명하며 티 한 점 없는 맑은 거울입니다.
모습이 비치든 비치지 않든 맑아서 편안한 거울, 이 것이 바로 신령스러운 삼매의 경지입니다.
3. 靈然獨照(영연독조) 照中還妙(조중원묘)
露月星河(로월성하) 雪松雲嶠(설송운교)
이슬과 달과 별, 하얀 눈과 푸른 소나무, 떠도는 구름과 우뚝 선 산봉우리는
서로 이질적이지만 법계 살림 안에서 함께 만나면 절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깨달음 가운데서는 모든 事物이 汚染되지 않아서
서로 어긋남 없이 圓滿히 잘 어울리므로 妙하다 한 것입니다.
4. 晦而彌明 隱而愈現회(이미명 음이유현)
소나무가 눈에 덮여 있어도 더욱 파랗게 드러나고,
산봉우리가 구름에 덮여도 우뚝함이 더욱 드러나듯이
우리 마음의 本來 자리는 어두운 가운데서도, 숨겨진 가운데서도 밝게 드러납니다.
중용에도 군자가 홀로 있을 때 삼가면 숨을수록 더욱 빛난다고 했습니다.
5. 鶴夢煙寒 水含秋遠(학몽연한 수함추원)
默照의 狀態는 鶴夢[학몽]처럼 모든 煩惱가 사라진 알 수 없는 경지입니다.
그리고 煩惱의 熱氣가 사라진 본래 우리 마음의 當處는 차가운 것으로 표현됩니다.
가을철 空氣는 차갑고 맑아서 먼 곳 풍경까지 환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또, 파란 하늘빛을 머금고 먼 풍경을 비추는 강물도 따라서 차갑습니다.
森羅萬象을 모두 비추는 차가운 강물은 바로 默照의 狀態이며
한데 어우러진 圓滿한 眞理의 모습입니다. 眞理에 대해 이러한 方便的인 表現들을
華嚴經에서도 眞理에 대해 ‘九類衆生이 황금 보자기에 흩어놓은 아름다운 구슬
紫羅帳裏散眞珠[자라장리산진주]’이라고 아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잖습니까?
6. 浩劫空空 相與雷同(호겁공공 상여뇌동)
주역의 64卦[괘]중에는 地雷復(지뢰복)卦가 있습니다.
이 괘가 節氣를 가르킬 때는 冬至를 가르키는데 陰爻 5개가 위로 겹쳐 있고
제일 밑에 陽爻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卦의 제일 밑에 있는 양효(陽爻)는 雨雷를 象徵합니다.
동지(冬至)가 되면 땅 밑에서 잠자고 있던 雨雷가 기지개를 켜고 다시 땅위로 올라와 꽃을 피우게 하듯이,
眞理도 텅~ 비워져 잠들어 있는 듯 보이지만 冬至의 雨雷처럼 萬物을 생겨나게 하지 않습니까?
7. 妙存默處 巧存照中(묘존묵처 교존조중)
沈默이 그저 沈默으로만 끝나면 죽은 沈默입니다.
冬至의 雨雷처럼 生命의 싹이 內在되어야 現實에서 妙用이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6천년 전에 정리된 周易의 52번째 ‘重山艮(중산간)’卦(괘)에서도
主觀(能)과 客觀(所)이 뚝 떨어졌을 때는 허물이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重山艮’卦는 山이 두 개 겹쳐있는 모양의 卦입니다.
공자는 艮卦(간괘)의 모양을 보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象曰 艮其背(상왈 간기배)면 不獲其身(불획기신)이요
行其庭(행기정)하야도 不見其人(불견기인) 이니無咎(무구)라.
모양으로서 설명하면,
“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얻지 않을 것이요,
그 사람의 뜨락을 거닐어도 그 사람을 보려하지 않으니 허물이 없도다.”
艮卦(간괘)에서의 艮(간 )은 멈춘다는(止=>止於至善(지어지선).
君者는 敬(경)에 머물고, 臣下는 忠(충)에 머물고 子息은 孝(효)에 머무는 등의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멈춤은 單純한 停紙가 아니고 動(동) 가운데의 靜(정)을 의미합니다.
默照(묵조)에서 볼 때, 照(조 )가 살아있는 默(묵)과 一脈相通하지요.
山이 겹겹이 둘려 있을 때에는 무리하게 전진하기 보다 고요히 멈추어서
自身도 返照하고 眞理도 살펴야 되잖아요?
‘艮其背(간기배) 不獲其身’(불획기신)은 등만 보고 몸 全體를 보려하지 말라는 我空( 아공)의 뜻이 있습니다.
곧, 등은 내 몸과 마음을 볼 수 없는 자리이니 몸도 마음도 잊으라는 가르침입니다.
‘行其庭(행기정) 不見其人(불견기인)’ 은 타인(객관세계)에 대해
마음을 비우라는 法空(법공)의 뜻이 있습니다.
我空(아공)과 法空(법공)이 이루어지면 當然히 허물이 없어집니다.
見聞覺知는 우리 마음의 本體가 아니고 그림자(幻影)여서 是非善惡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眞理는 모르는 대로 맡겨둬야 허물이 없습니다.
默照의 살림살이는 바로 言語가 끊긴 境地이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맡겨야겠지요.
그래야 般若가 살아납니다. 이 것이 眞理를 바로 살피는우리의 立場입니다.
승찬대사의 信心銘(신심명)에 依據하여 보더라도
默(묵 )과 照(조)가 허물이 없으려면 한 生覺도 일어남이 없어야 합니다.
그 內容의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二由一有(이유일유)니 一亦莫守(일역막수)하라
一心不生(일심불생) 하면 萬法無咎(만법무구)니라.
無咎無法(무구무법)이요 不生不心(불생불심)이라.
둘은 하나를 말미암아 존재하니 하나 또한 고수하지 말지어다. 한 생각도 내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느니라.
허물이 없으면 法에도 의미를 둘 것이 없고, 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마음이라 세울 것도 없다.
허물은 하찮은 하나로부터 始作하여 가지를 치는 差別의 모습에 노예가 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그러나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경지에서 차별의 모습을 수용하면
서로 비추며 調和를 이루는데 어찌 허물이 붙겠습니까?
허물없는 이 것이 바로 노월성하(露月星河)입니다.
8. 默照之道(묵조지도) 離微之根(이미지근)
離는 法性의 體를 말하며 微는 法性의 用을 말합니다.
따라서 默照의 道는 體와 用이 뿌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默照를 실천하기 위해,意識과 無意識을 모두 일깨워 밖에 벌어진
삼라만상과, 나를 構成하고 있는 四大와 五蘊이 空한 것임을 알아차려,
숨을 들이킬(入息입식) 때는 法性(법성)의( 體체)(이離)를 觀하고,
숨을 내 쉴 (出息출식) 때는 法性(법성)의 用(微미)을 觀해야 합니다.
9. 徹見離微(철견이미) 金梭玉機(금사옥기)
法性의 體와 用인 이미(離微)를 확철대오해서 살피면, 法界는 바로
황금북(用)이 옥베틀(體)을 왔다 갔다 하면서 織組하는 만다라로 보입니다.
부처님의 49년 설법도 이 옥베틀을 움직이며 황금북이 직조한 만다라입니다.
10. 正偏宛轉(정편완전) 明暗因依(명암인의)
정(正)은 絶對平等의 體(眞空, 理, )를 의미하고, 편(偏)은 差別의 모습(妙有, 事)을 의미합니다.
眞理의 當處인 體와, 差別的 世界인 現實에서의 用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입니다.
그러므로 명(明)은 現實의 모습이고 色을 의미하고, 암(暗)은 잘 드러나지 않는 眞理의 本體이며 空을 의미합니다.
正-偏, 色-空, 明-暗,은서로 떨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니고 만다라 베를 짜 듯이
서로 어울리며 依存하는 法界의 살림살이입니다.
사찰에서 목탁을 치거나 종을 울릴 때 아침에는 소리를 점점 올리고
저녁에는 소리를 점점 내리는 것도 明暗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眞理의 리듬(hrythm)입니다.
11. 依無能所(의무능소) 底時回互(저시회호)
回互(회호)는, 正偏(정편), 色空(색공), 明暗(명암) 등이 서로 어울리는 法界의 살림살이가
能所(능소)로 나뉘지 않아서 서로 만나지만 걸림이 없이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理事無碍(리사무애)의 뜻입니다.
反對로 不回互(불회호)는 사람은 사람대로, 학은 학대로, 제각각의 事物이 自己 位置에서
諸各己 다른 모습의 個性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삶의 향기 메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한히 행복해 지는 일상 (0) | 2014.06.26 |
---|---|
석류꽃 (0) | 2014.06.26 |
입 밖에 내지 않느니만 못하다 (0) | 2014.06.20 |
아랫도리 / 문성해 (0) | 2014.06.17 |
세 가지 마음 (0) | 2014.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