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緣起法의 실천 -- 섭수(攝受), 받아들임

장백산-1 2015. 4. 21. 02:45

 

 

 

 

 

섭수(攝受), 받아들임 - 緣起法의 실천

 

緣起法 世界에서의 一切 모든 存在는 우연이나 운명론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며 존재가 만들어 내는 現象들은 모두가 그럴만한 因과 緣의 和合에 의해

緣起되어진 것이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은 原因에 따른 分明한 果報를 받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現在 나에게 주어진 現實은 어떠할까. 나에게 주어진 現實 또한 嚴然한 因果應報에 따른 

結果인 果報인 것이다. 現實이라는 結果 또한 과거의 내 因緣들이 原因이 되어 現在에 받는 果報인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억울한 것 같고, 불평등한 것 같고, 이해할 수 없는 現象일지라도 그것은

嚴然한 因果의 法則 속에서 벌어지는 果報이다.

 

사람들은 보통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부자들은 계속해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世上, 삶, 現實, 果報야말로

完全한 平等의 眞理, 業의 均衡의 原則이 꽃피어나는 곳이다. 다만 우리의 눈에는 세상의 一部分

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不公平한 것 처럼 보일 뿐이다. 人間은 前生과 이번生, 그리고 다음生으로

까지 이어지는 時間을 뛰어넘어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며, 空間的으로도 볼 수 있는 視野는 限定되어

있다. 因果라는 嚴然한 眞理의 흐름을 全切的으로 볼 수 있는 正見의 視野가 없으며, 緣起的이고

相互連關되어 일어나는 現象들을 全切的으로 洞察할 수 있는 智慧가 不足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눈에는 모든 것이 不公定하고 調和롭지 못하게 보인다. 그러나 因果應報의 世上, 因緣果報의 세상,

緣起의 世上은 그야말로 完全한 大平等의 世上이다.

 

이러한 緣起法則, 因果의 法則을 믿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앞에 펼쳐진 그 모든 것들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일밖에 없다. 그 어떤 現實도 아무 原因 없이, 理由 없이 나타날 수는 없는 이치이다.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라는 現實, 世上, 삶, 現象界가  내가 지었던 原因(業, 因)에 대한 結果,

즉, 果報로서 받아야 할 瞬間이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 여기 現實은 누가 만들어냈는가? 바로 나다. 내 業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 삶, 現實이라는

果報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지을 때는 福도 짓고 罪도 짓지 않았는가. 그동안 우리는 살면서 善도

行하고 惡도 行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 潛在意識 안에는 善業과 惡業이 恒常 共存하고 있다. 그

業들은 언제든지 現實, 삶에서 發現되기만을 기다리다가 因緣에 맞는 때가 오면 바로 그 瞬間에 善業

이든 惡業이든 現實, 삶으로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을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인 것이다. 지을 때는 善業과 惡業을 함께 지어 놓고 받을 때는 善業의 結果만 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내 앞에 펼쳐진 現實을 통째로 받아들이라. 거부하지 말라. 받아들인다는 것, 攝受하는 것이야말로

緣起를 理解하는 모든 修行者들이 實踐하는 智慧로운 삶의 方式이다. 즐거운 일은 과거에 지어 놓은

善業의 果報를 받는 것이니 즐겁게 받아들이고, 괴로운 現實은 과거에 지어 놓은 惡業의 結果를 받는

것이니 이 또한 받아들임으로써 惡業을 消滅시킬 수 있는 절호의 機會를 맞는 것이다. 業이 올라오는

瞬間에 完全한 肯定으로써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섭수하면 業은 올라오는 대로 녹아내린다.

 

내 앞에 펼쳐지는 그 모든 狀況을 全切的으로 受容하라. 좋은 果報의 現實이든 나쁜 果報의 現實이든

아무런 分別하지 말고 全切的으로 攝受(섭수)하라. 瞬間瞬間의 모든 삶과 삶 속에서 피어나는 모든

境界(現實, 삶, 果報)들을 흔쾌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 現實에는 平和가 깃들고, 모든 善惡,

좋아하고 삻어함, 옳고 그름 등 둘로 나누는 兩極端的인 分別이 消滅되고 中道의 智慧와 텅~빈 고요함이

드러난다. 섭수(攝受)는 삶, 現實, 果報를 認定하는 것이고, 眞理를 고스란히 내 품에 끌어안는 것이다.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