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풀다
몸은, 수많은 기록이 내장된 블랙박스. 유난히 얼룩진 곳을 따라가면 한 가지 냄새를 흘리고 신발의 뒤축처럼 경사진 습관들이 있습니다. 다알리아 반쪽을 비운 건 기울어진 바람이듯 사건의 정답은 기울어진 그곳에 있습니다.
창밖의 나무들은 낡은 계절을 벗어놓는데 두 발에 걸음이 단단히 묶인 잠을 푸는 예민한 손끝. 메스에 닿는 공기의 빛깔이 검붉습니다
한쪽으로 튄 비명과 차 바퀴가 남긴 스키드마크 또렷한 밤의 방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사인. 미처 내뱉지 못한 혀 밑의 까끌까끌한 말과 움켜쥔 왼손의 분노와 부릅뜬 시선이 사건을 재구성합니다. 뒤늦게 수거된 파편, 혹은 숨겨둔 열쇠 같은 뜻밖의 지병은 구겨지지 않게 잘 펼쳐놓습니다.
그날을 모두 꺼내놓은 싸늘한 잠은 다시, 조용히 봉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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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있고 원인은 없다는 어느 시사프로그램을 보면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죽음이 가져오는 고통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사는 게 중요하지 죽음까지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뜻밖의 죽음이나 억울함을 제대로 푸는 부검은 의학과 과학의 수준 정도를 나타내주는 것이라 합니다. 살아가면서 뜻밖에 겪어야 하는 아픈 일들이 생기기에 그것까지도 명백히 밝혀주는 노력과 발전이 필요해보였습니다.
- 최연수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