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속에 누울 때
죽은 시체를 넣는 관(棺)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으신가요?
죽어서 죽은 육신이 들어가는 관 속에 말입니다.
저는 관 속에 들어가서 누워본 적이 있습니다.
‘죽음 체험 하루 피정’ 이었습니다. 취재차 갔었습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더군요. 관 속에 들어가 누우려고 말입니다.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관 속에 들어가 누웠다가 나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글썽 거렸습니다.
곁에 있던 그리스도상 아래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더군요.
관 속에 들어갈 때와 그 속에서 나올 때, 확실히 다르더군요.
가만히 보고만 있자니 관 속이 너무 궁금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줄을 섰습니다. 제 차례가 왔습니다.
신부님이 관 뚜껑을 열었습니다. 저는 계단을 밟고 제단 위에 올랐습니다.
관 속으로 한 발을 넣었습니다. 또 다른 한 발을 넣었죠.
그리고 위쪽을 보고 관 속에 누었습니다. 뒤통수가 관 바닥에 닿았습니다.
잠시 후 관 뚜껑이 스르르 닫히더군요. 닫힌 관 뚜껑 틈새로 빛이 조금
들어왔습니다. 그 위로 검은 천이 덮였습니다. 관 속은 완전히 캄캄해졌습니다.
눈을 떠도 암흑, 눈을 감아도 어둠, 이런 게 무덤 속이구나 싶더군요.
바깥 세상에는 아직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등...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 내가 아끼는 모든 물건이 관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때 실감이 났습니다. 뒤통수를 쾅! 치더군요. ‘아, 이런 거구나. 죽는다는 게.
바깥세상의 어떤 것도 이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구나.
관 속에 누워있는 저를 다시금 되돌아 봤습니다.
관 속에는 오직 몸뚱이만 있더군요. ‘숨이 끊어졌으니 이 몸도 곧 썩겠구나.’
그럼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아!, 그렇구나! 마음, 영혼만 남겠구나. 그 영혼.’
한참 지났습니다. 관 뚜껑이 열렸습니다. 밝은 빛에 눈이 부시더군요.
일어나 관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주 짧은 체험이었죠. 그래도 여운은 길더군요.
‘잘 살아야겠구나. 그래야 죽어서도 맘 편하게 잘 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며칠 전에 이해인 수녀를 만났습니다. 프란치스 교황의 트위터 메시지를 묵상하며
썼던 글을 책으로 냈더군요. 책장을 넘기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도가 눈에 띕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容恕)하기가 힘이 듭니다. 主여, 당신의 자비를 저에게 허락하시어,
제가 다른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게 하소서.’
용서하기가 참 쉽지 않은가 봅니다. 교황조차 이런 기도를 올렸으니 말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묵상을 통해 이런 댓글을 교황의 메세지에 붙였습니다.
“저는 용서가 어려울 땐 미리 저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想像 속의 관’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합니다. 그 댓글에 저는 속으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수녀님은 “내일은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데’라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
의외로 용서가 잘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삶의 중요한 열쇠는 죽음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우리가 틀어쥐고 있는 모든 걸 놓아버리게 하는 거대한 리포맷하는 자리니까요.
그러니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거나, 명상이나 묵상을 통해 죽음을 깊이 사색한 이들은
리포맷한 자리를 체험합니다.
리포맷한 그 자리가 예수에게는 십자가였고, 붓다에게는 보리수 아래 무아(無我)의 자리였겠죠.
시인이기도 한 고진하 목사는 리포맷한 그런 삶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표현하더군요.
덤으로 인생을 살 때 그 때 인간은 비로소 自由自在한 존재가 된다고 말입니다.
죽었다 다시 사는 삶, 리포맷한 삶, 어쩌면 그게 ‘부활(復活)’이 아닐까요.
모든 생명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두를 용서하는 삶, 그런 삶이 덤으로 살 때의 선물이라면
참 괜찮지 않나요. 살아서 내 발로 관 속에 들어가 한 번 크게 죽어보는 것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런 관이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그런 관은 우리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남을 용서하려면 먼저 ‘나만 옳다고 여기는 나의 고집’ 이 깡그리 무너져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가 됩니다. 나만 옳다고 착각하는 나의 고집이 와르르 무너저 내릴 때 그 때가
내가 한 번 죽는 겁니다. 그게 바로 리포맷하는 삶, 진짜 관입니다. 리포맷하는 삶, 그 진짜
관 속에 들어갈 때는 두렵고 힘들어도 나올 때는 홀가분합니다. 덤으로 사는 삶, 자유자재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중앙일보 차장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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