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어릴 적에 ‘작은 집 이야기’란 그림책을 자주 읽어줬다. 미국 작가 버지니아 리 버튼이 쓰고 그린 이 그림책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대부분이 발전 원하면서도 자연 줄어듬은 원치 않아 뭇 생명들 존재 살필수록 내 존재도 있음 알아차려야
먼 먼 옛날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그 집을 지은 사람은 금과 은을 다 주어도 이 집을 절대 팔지 않을 거라 했다. 이 집을 지은 이는 그의 손자의 손자, 그리고 그 손자의 손자가 그곳에서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래도록 남아 있길 소망했다. 작은 집은 언덕 위에 올라앉아 주변 경치를 보며 시간의 변화,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행복해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작은 집은 말이 끌지 않는데도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내려가는 수레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 후 오래지 않아 말이 끄는 마차가 줄어들고 말이 끌지 않는 수레가 점점 늘어났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작은 집 주변은 점점 개발이 되고 발전이 되면서 거대 도시가 된다. 작은 집은 도시를 ‘모두들 바빠 보였고, 모두들 허둥대는 것처럼’ 느꼈다. 작은 집은 도시에서는 결코 ‘언제가 봄이고, 언제가 여름이고 언제가 가을인지, 겨울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겨우 한낮에만 해를 볼 수 있고 밤에는 도시의 불빛이 너무 밝아서 달도 별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점점 더 부산하게 움직였고, 모두들 흘낏 눈 돌릴 새도 없이 뛰어만 다니는 그곳에서 작은 집은 이제 도시에 파묻혀 존재감마저 사라진 지경에 이른다. 창가에 달렸던 덧창이 일부 떨어져 나가고 유리창은 깨져 작은 집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행색이 되고 그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럼에도 작은 집은 시골 마을과 데이지 꽃 들판과 달빛 아래 춤추는 사과나무를 꿈꾼다. 꿈을 꾼 덕분이었을까? 드디어 어느 날 작은 집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작은 집을 지은 사람의 손녀의 손녀였다. 그는 그 집을 이내 알아보고는 작은 집을 옮기기로 한다. 옮기는 장면이 압권이다. 존재감조차 없던 작은 집을 옮기는 날 도시 전체는 몇 시간이나 교통이 마비된다. 드디어 작은 집은 예전의 그 풍경과 비슷한 자연으로 옮겨진다.
이 책에는 자연이 도시로 變化하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풀과 나무와 소박한 작은 집이 있던 공간이 거대한 빌딩과 찻길 빼곡한 도시로 바뀌는 걸 소위 발전이라 한다. 그러니까 自然이 줄어드는 것이 發展인 셈이다. 발전이란 일반적으로 더 좋고 나은 상태로 나아가는 걸 뜻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발전하고 싶어 한다. 경제가 발전하지 않으면 큰일이라고도 한다.
자연이 줄어드는 것을 발전이라 하고 발전해야한다는 사람들이 자연을 그리워하는 걸 보면 그 자체가 모순이란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곳에 가서 직접 자연을 보고 싶어 한다. 다른 나라의 자연을 보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 자연이 줄어들어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작은 집이 묘사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면 자연이 줄어들수록 삶이 행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들 바빠 보였고, 모두들 허둥대고 있다는 작은 집의 그 표현이 기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얼마나 많이 비껴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바쁘고 허둥거리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몇 번이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질까? 자연과 내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과연 며칠에 한 번 생각하기라도 할까? 별빛 혹은 달빛을 보려 언제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기억은 과연 있기나 할까? 계절이 어떤 모습으로 오고 가는지 인지했던 적은 몇 번이나 될까? 존재에 대한 물음 이전에 우리는 이런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질문을 내게 몇 번이나 던져봤을까? 부처님 법을 만나서 환희로웠던 경험은 작고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줄 알게 되면서였다. 그 모든 因緣들이 존재하므로 내 존재 또한 가능할 수 있다는 緣起法의 가르침을 통해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자라는 경험도 한다. 그리고 그 감사함은 또다시 더 많은 존재들과 나를 점점 더 촘촘히 連結시켜준다. 뭇 생명과 존재의 連結性을 섬세하게 살필수록 허둥거리고 바쁘던 일상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는 걸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존재들을 自然이 줄어든 도시에서 느끼기란 좀체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금과 은을 다 준대도 양보하지 않고 지켜내야 할 가치 있는 것이 곧 自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뭇 존재들이 살아 숨 쉬는 그곳 自然은 곧 내 존재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무엇이 진정한 발전일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