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선(禪)으로 읽는 복음] 24. 모두 나에게로 오라

장백산-1 2016. 10. 7. 13:55

[선(禪)으로 읽는 복음] 24. 모두 나에게로 오라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복음, 11:28~30]


인생의 괴로움을 구체적인 感覺으로 표현하자면 무거움일 것입니다. 견디기 힘들어 하는 존재의 무거움, 

아니면 가슴 한 구석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함, 온몸이 얽매여 갇힌 것과 같은 갑갑함이 사람들을 곧 

어둡고 음침한 죽음의 골짜기로 내몰 것만 같습니다.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인간들의 일상생활 속에 

어두운 배경처럼 음습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이라는 어두눈 그림자 이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탄식을 내뱉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개역한글판 [로마서, 7:24])


예수가 말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이런 말씀을 

듣게 되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여기서 말하는 ‘나’는 다름 아닌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고 여기고, 예수를 

좇아야, 예수를 믿고 따라야지만 이 풍진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모든 宗敎의 經典은 경전에 쓰여진 글자를 그렇게 문자 그대로, 축자적(逐字的)으로 읽고 해석

해서는 제대로 그 문자로 표현된 眞意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 경전은 眞理를 드러내서, 

사람들에게 眞理를 傳達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된 方便으로 사용하는 수단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眞理는 그 경전을 읽고 있는 그 당사자를 떠나서 따로 있는 무엇이 결코 아닙니다. 경전을 보고

있는 나 自身이 바로 眞理라는 事實을 일깨우고 알아차리게 해서 깨우쳐 주는 방편이 경전입니다.

(잠시 묵상)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나’는 예수의 ‘나’이면서 同時에 우리 모두의 ‘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서 ‘나’는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니, 이 세상, 이 우주 전체가 바로 하나밖에 없는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단 하나밖에 없는 '나' 그 '나'를 일컬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 겁니다. 

이 하나님은 어디에도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제 스스로 존재하면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창조하는 

‘나’입니다. ( I AM THAT I AM)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할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 ‘나’에게는 멍에도 없고 짐도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 묵상)


이 세상에서 오직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인 ‘나’는 어떤 사람도 아니고, 어떤 사물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나'는 이 우주,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 보는 唯一한 觀察者, 이 세상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유일한 

증인입니다. 이 '나'는 이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다 보고 다 알지만, 이 ‘나’ 自身을 보거나 알 수

는 없습니다. 이 ‘나’ 에게는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고, 이 '나'에게서 벗어나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이 하나님인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이고 이 세상 모든 것이 이 하나님인 '나'와 한 몸이기 때

문에 절대로 이 현실의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들과 分離되고 分別될 수가 없는 것이 하나뿐인 '나'

바로 하나님입니다.


이 事實을 분명하게 깨닫는 순간, 宇宙 全切, 이 世上 모든 것들, 一切가 ‘나’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것만이 ‘나’라고  여기는 生覺 즉, 錯覺, 幻想이 사라집

니다. 그 순간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분리와 분열, 분별로 생긴 대립, 갈등, 투쟁, 불화가 깨끗하게

사라집니다. 대신 본래부터 이미 완벽하게 갖추어진 만족과 평화, 영혼의 안식이 찾아옵니다.

(잠시 묵상)


달마(達磨)가 벽을 바라보고 있는데 혜가(慧可)가 눈 속에 서서 칼로 자기 팔을 자르고 말했습니다.

“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스승께서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좋다 그래 그렇게 해주마. “네 아픈 마음을 내게 가지고 오너라. 너를 위해 편안하게 해 주겠다.”

혜가는 “저의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결코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의 마음을 이미 편안하게 해 주었다.”  (잠시 묵상)


서두에서 인생 괴로움의 구체적 감각은 무거움, 답답함, 갑갑함,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라고 했습

니다. 사람들은 보통 흔히 마음이 무겁다, 마음이 답답하다, 마음이 갑갑하다, 마음이 불안하다, 마음이 

두렵다 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혜가 역시 그러해서 달마에게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그런데 달마는 무겁고, 답답하고, 갑갑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신 그런 ‘마음’

을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무거움, 답답함, 갑갑함, 불안, 두려움이란 감각을 바

깥으로만 쫓아 헤매던 혜가 자신으로 하여금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마음’의 실체를 찾도록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마음을 찾아보십시오. 어떤 것이 ‘마음’입니까? ‘마음’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마음이 어떤 때는 불안했다가 어떤 때는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마음이다.’라고 할 만한 

것을 찾았습니까? 만약 ‘마음’을 찾을 수 없다면 찾을 수 없고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마음’이 어떻게

불안하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게 될수 있겠습니까?


‘나’라고 할 것이 따로 없다면 어찌 그 없는 ‘나’가 고생하며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일 수 있겠습

니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미 이 세상에 오직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

‘나’에게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의 불필요하고 아무 이유도 없는 방황을 그치고 편히 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멍에와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영혼이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뿐인 이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보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습니까?  (침묵)


- 몽지-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깊고 간절한 마음  (0) 2016.10.07
지금 여기 당장의 실재  (0) 2016.10.07
물거품, 그림자 같은 이 세상  (0) 2016.10.07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  (0) 2016.10.06
공(空)은 어떤 것인가  (0) 201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