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김진홍 칼럼] 야당 역할이 중요해졌다

장백산-1 2016. 10. 30. 19:06

[김진홍 칼럼]  야당  역할이  중요해졌다

“IMF 외환위기를 교훈 삼아 야당이 나라 결딴나지 않도록 수습책 주도해야”

입력 2016-10-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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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다. 법적으로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많은 국민이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드러난 최순실의 오만방자한 행동들이 대통령 비호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게 국민들 판단이다. 대통령이 마음 놓고 부리는 청와대 비서관들이 최순실과 그녀에 빌붙은 이들의 호가호위를 방조했다는 정황들마저 속속 노출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끝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문화예술계를 개인 놀이터처럼 주물렀던 최순실과 차은택을 둘러싸고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추가로 터질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그들의 무소불위와 안하무인에 좌절하고 절망했던 이들이 뒤늦게 온갖 만행을 고발하고 나설 소지도 있다.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외교·안보·국방·사회 등 국정 전 분야의 정책이나 인사까지 최순실의 검은 손길이 뻗친 것으로 규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아찔하다. 현재 14%인 대통령 지지율은 이런 참혹한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계속 추락할 것이다.

‘대형 사건·사고’를 일으키면 움츠러드는 게 인지상정이겠으되, 한 나라의 지도자는 달라야 한다. 본인 잘못으로 나라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최순실 파동의 원인과 진실은 이렇고, 자신도 법에 따라 처벌받겠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이러이러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하지만 모양뿐인 대국민 사과에다가 후속조치는 지지부진하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마지 못해 응하고 있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행태들이다.

게다가 40여년이나 된 박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의 해괴한 인연을 고려하면 대통령에게 의지할 건 이제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혼합종교 교주이자 범죄자인 최태민과 그의 다섯 번째 딸 최순실을 멀리하라는 경고가 아버지 박정희 때부터 최근까지 수차례 있었으나 이를 모두 묵살하고, 집권 후 최순실에게 슬며시 권력을 쥐여준 장본인이 바로 박 대통령이다. 그러면서도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이 사교(邪敎)에 빠져 있다는 세간의 지적을 떠올리게 만드는 잘못된 발언이다. 강도 높은 후속조치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누리당 의원들 책임도 적지 않다. 친박은 물론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총괄본부장과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각각 지낸 김무성, 유승민 등 비박계도 마찬가지다. 최순실을 몰랐을 리 없다는 증언이 맞는다면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가운데 석연찮은 부분이 많이 늘었음에도 이를 간과한 야당 의원들 역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최순실이 귀국했으나 특검으로 이어질 공산이 다분하다. 전모가 밝혀지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정은 한시도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 국정이 마비되면 대한민국이 공멸의 위기에 처할 수 있는 탓이다.

결국 정치권이 전면에 서야 한다. 여당이 수습을 주도하는 방식으로는 민심을 추스를 수 없다. 여당은 특검 운영 방식을 포함해 모든 사안에 대해 야당 입장을 수용하는 자세를 취해야 옳다. 야당의 경우, 연일 제기되는 의혹들 뒤를 따라다니며 대통령을 압박하고 비난하는 건 지금까지로 족하다. 국가가 결딴나지 않도록 차분하게 수습책을 제시하고, 이를 관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내외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김현철 게이트’가 터져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이 6%까지 떨어져 국정동력이 상실된 직후 IMF 외환위기가 닥쳤던 점을 되새겨야 한다. 야당 역할이 중요해졌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