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국 대선이 우리에게 안긴
권오재 미국 솔즈베리대 연구교수 입력 2016.11.03 21:02[경향신문]
미국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내의 엄청난 사건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지만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고, 그 중요성은 작지 않다. 그러나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심과 시선은 아쉽다. ‘운명론’처럼 미국 대선 결과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는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우리는 국익을 위해 어떻게 미국을 견인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주요 대선캠프의 외교안보 라인과 접촉하면서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 노력하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두 손 놓고 쳐다보고만 있다.
국제관계는 냉정하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지만 미국 대통령은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인 다른 나라 대통령이다. 우리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미국이 중요한 것에 비해 미국에 우리는 그다지 중요한 나라가 아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안보 최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한 강연에서 “버락 오바마가 당선돼야 한반도 문제가 풀린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의 토로로 이해가 됐지만, 그의 바람대로 등장한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방관으로 오히려 북핵문제를 꼬이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도, 외교가 선의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물론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가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대선 결과가 우리에게 유리 혹은 불리할 것인가를 따지는 것에 그쳐선 안된다. 우리는 미국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미 행정부와 정치권이 우리의 이익에 맞게 움직이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인가만 쳐다보고 있다면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만 맡기는 꼴이 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한 부시를 도라산역에 세워 철도 침목에 평화의 메시지를 쓰도록 하고, 북폭을 검토했던 빌 클린턴을 누구보다 강력한 햇볕정책의 지지자로 변화시킨 경험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한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적극 수용해 이에 동참하도록 하는 역량과 설득력을 키우는 것이고, 이를 위한 전략을 마련해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목표와 역량이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아쉽다. 얼마 전 미국 민주당원인 한 정치학자를 만났는데 그가 “본선 경쟁력을 따져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는데, 트럼프와 같은 엉터리가 나올 줄 알았다면 버니 샌더스에게 투표했을 수도 있겠다”고 말할 만큼 트럼프의 등장은 이변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막말과 추문으로 도배된 가십을 보는 정도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 높은 지지를 얻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조롱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트럼프 현상은 우리에게 많은 성찰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기성정치는 왜 신뢰받지 못하는가, 그리고 이런 불만은 왜 더 좋은 정치로 전환되기보다 저급한 정치에 열광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트럼프 현상에 있어 우리는 미국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외친 것과 같이 ‘국민 성공시대’를 내세운 탐욕가와 나라를 온통 비선 실세에게 갖다 바친 꼭두각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나라, 통합보다는 분노·분열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얻는 정치세력이 그 어느 나라보다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나라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 얼마나 불행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트럼프 현상에 손가락질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왜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왜 좋은 정치가 나쁜 정치를 이기지 못하는지 돌아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제 곧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될 것이고, 우리에게도 새로운 상황과 과제가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구경만 하기엔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엄중하고, 우리의 처지가 절박하다. 전략과 성찰 그리고 변화, 미 대선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과제이다.
<권오재 미국 솔즈베리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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