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최태민, '반공' 명목 한국교회까지 영향력 확대 노렸다

장백산-1 2016. 11. 29. 22:17
국민일보

최태민, '반공' 명목 

한국교회까지 영향력 확대 노렸다


신상목 기자 입력 2016.11.29 20:44 댓글 65
국민일보가 입수한 '구국선교단 사업계획안' 보니
최태민이 1975년 5월 15일 작성한 구국선교단 사업계획안으로 구국선교단 창설과 목사 군사훈련, 기독교 인사 문화 교류(붉은줄) 등을 담고 있다.

1975년 6월 구국십자군이 개최한 대회에 나선 최태민.

국민일보가 29일 입수한 최태민 영세교 교주의 구국선교단 사업계획안은 당시 이 단체 명예총재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지렛대 삼아 한국교회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던 일종의 청사진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1975년 5월 15일 작성된 계획안은 구국선교단이 어떻게 기독교계를 이용해 목적을 이뤄가려 했는지 비교적 상세히 기술돼있다. 사업계획안 첫 쪽에 등장하는 ‘사무행정 지침’에 따르면 계획안은 ‘차질 없는 기획수행을 생명으로’ 했다.

계획안은 총 15개 항목으로 작성돼 있다. 기독교사상에 입각한 반공정신이라는 이념 중심으로 긴밀하게 (기독교계와) 연대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75년 4월 29일 발족한 구국선교단에는 강신명(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최훈(예장합동) 박장원(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 등 10개 교단 목회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사업계획안 1, 2안은 멸공연수강좌와 멸공단합대회 개최를 담고 있다. 서울과 임진강, 대구 등에서 대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계획안이 작성되기 이틀 전인 5월 13일 구국선교단은 임진강에서 2000명의 기독교인을 동원, 구국기도회를 개최했다. 이 기도회는 ‘멸공단합대회’ 단기계획의 일환이었다. 기도회를 표방했지만, ‘반공과 안보’를 전면에 내세운 일종의 궐기대회였다. 당시는 다수 국민들이 박정희정권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던 때였다. 최태민씨는 이런 대회를 통해 영애 시절의 박 대통령을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계를 이용한 반공의식 강화는 6월 21일 서울 배재고에서 개최된 ‘구국십자군’ 창설과 맥을 같이 한다. 사업계획안에는 “1975년 내로 목사 군사훈련을 50기로 입대하여 5000여명까지 교육을 완료한다”고 명시돼있다. 군사훈련에는 기독교 목사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여기서 멸공 연수 강좌와 집총군사훈련까지 시켰다. 구국십자군 창설은 장기계획의 일환으로 사업계획안에 언급했다. “중앙에는 총사령부, 각 시도군읍면에 지역별 십자군창설, 전국에 20만” 등으로 표현했다.

사업계획안 15개 항목 중 10개가 기독교를 언급하고 있다. ‘기독교인사 문화 교류’ 항에는 해외 기독교 저명 교수나 인사를 초빙해 강연이나 좌담회를 개최하자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세계 기독교 여성 지위향상 대회도 개최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해외 기독교 인사를 언급한 것은 최씨가 73∼74년 한국에서 개최됐던 대형 기독교 집회를 목격하면서 기독교의 강력한 영향력을 의식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사업계획안에는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는 계획도 있었다. 세계기독교신도평화회담을 열어 “기독교신도들의 신앙을 기조로 한국 통일에 대한 국제관계 역량을 북괴에 제시한다”는 내용이다. 기독교연합합창대를 조직해 “국내에 민주화 역량을 제시하고 통일 작업의 일환으로 민간외교의 기능을 전개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합창대는 ‘십자군(Crusader) 합창대’라는 별칭을 달았다.

사업계획안은 ‘월’ 표시와 ‘수시’라는 기한을 표시하고 있다. 모두 75년 안에 시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 대통령의 후광과 박정희 당시 대통령 지원에 힘입어 세력 확장의 기세를 몰아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국선교단은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당시 기독교계 신문들은 구국십자군에 대해 연일 보도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장통합 총회 등 교계에서도 7월에 접어들면서 구국십자군에 동조하거나 관여하지 말 것을 결의하는 등 경계가 이어졌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는 “최태민의 사업계획안은 기독교계를 향한 치밀한 계획들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며 “그는 이를 통해 한국교회 목회자를 앞세우는 수법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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