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함께 사라져야 할 사람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입력 2017.03.12 21:32
[경향신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선고가 내려지던 시각, 종합병원 대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화면을 응시하던 수십 명의 환자, 보호자,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일제히 짧은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언뜻 돌아봤지만 낙담하거나 한탄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80% 정도의 국민이 탄핵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의 결과와 피부로 느끼는 주위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사람들은 왜 박수를 쳤을까? 신념, 공포, 희망, 분노의 감정은 추상적이어서 사람들은 이를 형상화하려는 욕구를 갖는다. 그 결과물은 토템이 되기도 하고 부적이 되기도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그 감정을 특정 인물에 투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마녀가 되지만, 실상 더 중요한 것은 왜 사람들이 영웅이나 마녀를 필요로 했는지, 그리고 영웅을 추앙하고 마녀를 불태움으로써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이다. 다수의 시민들이 대통령의 탄핵을 반긴 이유도 기실 박근혜라는 한 개인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라는 한 개인이 상징하는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통치체제, 부패하고 무능한 지배집단, 안이하고 비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파면된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다고 해서 분노의 대상이 와해되지는 않는다. 구조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는 일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다란 상징물 하나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가. 어렵사리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이지만 말이다. 이제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희망이 더 커지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적폐’의 상징들이 사라져야 한다.
공복이라는 자존심을 사욕으로 덮어버린 고위 관료들과 청와대 비서관들이 있었다. 권력과 결탁하여 부정한 이익을 추구했던 대기업 총수들이 있었다. 교육자로서의 명예와 소임을 가장 비교육적인 방법으로 내팽개친 대학 교수들이 있었다. 모두 티끌만 한 개인적 이익을 위해 무능한 권력을 이용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중 여럿이 이미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으니 최소한의 ‘사라짐’ 정도는 목격한 셈이다.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며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정치인들이 있었다. 헌재가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결정한 대통령을 짧게는 4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영웅으로, 혹은 신화의 주인공으로 떠받들며 시민들을 기만한 이들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들에게 다시 표를 줄 시민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천재지변에 준하는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이 정치인들 대부분은 머지않은 미래에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이 있다. 이 시스템의 유지에 누구보다도 기여했고 그래서 대통령의 파면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지만, 사라질 마음은 그닥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옹호하고 미화하기 바빴던 일부 언론인들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견이 되기는커녕 그나마 있던 감시견도 내쫓은 이들이다. 무능한 정권이 시대착오적인 일을 벌일 때마다 비판과 충언 대신 찬양과 홍보를 자임했던 이들이다. 이들 중 몇몇은 어처구니없게도 요즘 야당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일감을 찾는다고 한다.
선거로 뽑은 사람이 아니니 탄핵을 할 수도 없고, 구체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기소를 할 수도 없다. 아마도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판하고, 필요하다면 정치인들을 통해 법령을 개정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우선 이들이 사라지길 바란다는 결의라도 다지고자 한다. 특히 공공의 자원이 투여되어 공공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그들’부터이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자신들이 알고, 주위 사람들이 안다. 언론에 관심을 가진 보통의 시민들도 안다. 방송사의 사장실 근처나 보도본부에도 있지만 KBS 이사회와 (MBC 이사회 격인) 방송문화진흥회에도 포진되어 있다. 한국 언론과 방송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스스로 물러나야 할 이들이지만, 아마 그런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습효과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감시견이 아닌 애완견 역할을 했던 적잖은 수의 보도 책임자나 경영 책임자들이 언론인으로서의 존경을 포기하는 대가로 개인적인 영달을 누렸기 때문이다. 탄핵된 이는 당연히 없었다.
바뀌어야 한다. “이게 나라냐?”를 외치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대통령의 파면을 이끌어냈듯, “이게 방송이냐?”를 외치는 분노가 ‘그들’의 사라짐으로 이어지길 고대한다. 그들이 사라진다면 한국 언론과 방송에도 비로소 생기가 돌기 시작할 것이다. 대통령의 파면이 단번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는 대신 작은 희망을 주었듯이.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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