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한국이 부러운 미국, "한국인들이 했다면 우리도!"

장백산-1 2017. 3. 13. 01:48

경향신문

[김진호의 세계 읽기]

한국이 부러운 미국, "한국인들이 했다면 우리도!"

김진호 선임기자 입력 2017.03.12 17:55 수정 2017.03.12 22:41


[경향신문]

미국의 ‘트럼프저항운동(TRM)’ 측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려놓은 서울의 촛불시위 사진. TRM은 “이와 같은 수개월 동안의 시위가 한국 대통령을 부패 혐의로 탄핵, 제거하도록 했다. 그들이 할 수있다면, 우리도 할 수있다”고 설명을 달았다.

극적인 반전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차가운 바닷물에서 서서히 잠겨가던 순간, 대통령이 머리 손질이나 하던 나라, 친구인지 점쟁이인지 애매한 아줌마가 국가기밀서류를 누구보다 먼저 받아보던 웃기는 나라가 갑자기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한 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각국 언론은 지난 몇 달 동안 한국에서 벌어졌던 탄핵국면의 극적인 결말에 환호하고 있다. 부러움의 핵심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국민’과 ‘헌법’이라는 민주주의의 본령을 일깨워줬다는 지적이다. 부러움이 큰 나라일수록 자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의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과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영국의 반응이 눈에 띈다.

영·미 주류언론들은 헌재의 탄핵인용을 민주주의의 승리로 규정하면서 의미를 달았다. 북한의 도발과 대선을 앞둔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 이제 시작에 불과한 재벌개혁 등 산적한 현안들을 지적하면서도 민주주의의 개가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워싱턴포스트는 10일(현지시간) ‘한국은 민주주의가 어떠해야 하는지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선고문을 인용하면서 “국민과 헌법이 전부였다”고 전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고작 30년 밖에 안된다는 점에 비추어 놀랄 만한 용단”이었다고도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어 “한국 헌재의 결정이 더욱 큰 반향을 낳은 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운명이 함께 엮였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유착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숱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계속 민주적 제도들을 진화시키면서 확대해나갈 것이라는 덕담도 빼놓지 않았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온라인 사설에서 “한국의 정치인과 경제인들은 그간 시늉 뿐인 처벌만 받고 피해나갔다”면서 헌재의 이번 결정은 ‘올바른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중 처음으로 박근혜가 탄핵된 이유에 대해 무능과 권위주의, ‘헬조선’에 대해 높아지는 불만 탓에 물러났다면서 그가 여성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을 통제하는 것은 첫번째 조치일 뿐”이라면서 “박(근혜)의 독재자 아버지 치하에서 경제발전에 기여했던 재벌들 또한 과도한 권력을 축적해 온 만큼 개혁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식을 전하는 워싱턴포스트 트위터에 독자들이 보낸 답글들. 워싱턴포스트 트위터

영국 BBC 월드뉴스의 아시아 편집장인 셀리아 하튼은 대담프로그램에서 “지난 몇달간 서울과 한국 주요 도시에서 벌어졌던 탄핵요구 시위는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열망하는 것”이라면서 “단 한명도 다치거나 연행되지 않고 진행됐던, 열정적이고 교육적인 평화시위였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곧바로 청와대를 떠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정치생명은 끝났어도 자신의 정당이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류언론들의 점잖은 평가와 달리 미국 내에서는 “한국이 부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사법제도와 의회권력, 군, 정보기관 공동체, 언론 등 민주적 제도들이 일상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내 일각에서 일고 있는 탄핵 움직임을 반영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트럼프저항운동(TRM)’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서울의 촛불시위 사진과 함께 “한국인들이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있다(If They can do it, So can we)”는 포스팅을 올려놓았다. 티파티 운동에 대항해 커피 파티 운동을 주도했던 다큐멘터리 감독 애너벨 박은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준 데 감사한다. 한국인 브라보!‘라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TRM 운동원들은 “다음은 우리 차례”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는 등의 코멘트를 붙였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전한 워싱턴포스트 트위터에는 “너무도 부럽다” “우리도 더이상 기다릴 수없다(can’t wait our day…)” “저항하자!”는 등의 답글이 올라왔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미국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 지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탄핵에 찬성하는 여론이 46%(여론조사기관 PPP)에 달했지만 미국 내 탄핵움직임은 아직 주류사회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12일 현재 온라인 청원 ‘지금, 트럼프를 탄핵하자(impeachdonaldtrumpnow.org)’에는 89만 6656명이, ‘백만 미국인의 청원’ 사이트에는 23만 355명이 서명하는 등 대부분 수십만명에 그치고 있다.

‘헬조선’으로 대표된 한국 내 부의 불평등을 탄핵 배경으로 짚은 가디언의 온라인 사설에는 “탄핵만 제외한다면 토리(보수당)와 메이 총리가 이끄는 영국의 현실에 대한 묘사가 될 수 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또 다른 네티즌은 촛불시위를 부러워하며 “수백만명의 한국인들이 주말마다 시위를 했다. 영국에선 2003년 이라크전 반대 시위가 있었지만 (당시)토니 (블레어 총리)를 멈출 수 없었다. 탄핵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방송이 지난 10일 대통령 탄핵을 시작으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국을 진단하는 뉴스를 내보내면서 광화문에서 경향신문 특별판을 읽고 있는 시민의 모습을 소개했다. |BBC 홈페이지 캡처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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