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속으로]
한겨레 · 중앙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사설 비교해보기
입력 2017.04.10. 20:06
[한겨레]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논리 대 논리] 한겨레 “박정희 패러다임 접고 새 나라 향해야”…중앙 “무소불위 권력 분산, 개혁 고민해야”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1995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에 이어 벌어진 우리 헌정사의 세 번째 비극이다. 중앙과 한겨레는 ‘자연인 박근혜’에 대한 동정 여론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나 국민적 화합 · 통합을 명분으로 선처를 요구하는 주장” 등을 짧게 소개한다. 하지만 두 사설은 모두 이번 사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겨레는 박 전 대통령 구속의 의미를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대원칙을 법원이 다시 확인”한 것으로 갈음한다. 중앙 또한, 이번 사태가 “법치주의에는 성역이 없음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며, 박 전 대통령 구속까지의 사법처리의 과정은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입증”한 것이라며 높은 점수를 준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하지만 박 전 대통령 구속의 의미와 향후 과제에 대해서는 두 사설의 논점이 엇갈린다. 한겨레는 ‘확실한 과거 청산’에 무게중심을 둔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해도 국정농단 사태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구속은 수사 단계의 일부일 뿐이다. 앞으로도 피고인의 유무죄를 다투는 긴 형사재판 절차가 남아 있다. 한겨레는 “그동안 밝혀내지 못한 여러 혐의도 철저히 수사해 더 이상 혐의 사실을 둘러싼 논란이 앞으로 빚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박영수 특검은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를 “국가권력이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된 국정농단”이라고 규정했다. 헌법재판소 또한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평가한 바 있다. 법원의 구속 결정은 이러한 판단의 연장선상 위에 있다. 한겨레가 “구속은 애초부터 예견되던 바”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나아가 한겨레는 “뇌물죄 적용은 당연한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법원은 구속 영장을 발부하며 개별 혐의를 적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요 혐의가 소명된다”는 영장전담판사의 발언에서 법원이 검찰의 뇌물죄 적용을 받아들였다는 해석을 이끌어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측이 “통장에 돈 한 푼 들어온 적 없다”고 주장해도, 최씨의 범행 계획 수립과 실행 단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모관계가 성립되면 박 전 대통령은 ‘공동정범’에 해당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재판이 “지금 까지 40여년 계속돼온 박정희 패러다임을 접고 새로운 나라로 향하는 씻김굿”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겨레는 박영수 특검팀이 최순실씨 일가의 재산 추적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못한 이유를 “관련 기관들의 비협조”로 꼽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최씨 일가의 비리는 박정희의 유신공안독재시대부터 뿌리를 두고 이어져온 ‘적폐’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그의 비리를 들어내고 정리하는 일은 과거 청산의 과정이기도 하다.
반면 중앙은 이번 박 전 대통령 구속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은 “촛불이건 태극기건 감정에만 치우친 시위를 자제”하라고 권유한다. 지금의 헌법과 정치 시스템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가 마땅하지 않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 말기에는 항상 권력형 비리가 터져 나오며 측근들이 처벌받는 일이 거듭되어 왔다. 중앙은 정치권에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고 투명한 권력 행사가 이뤄지도록 감시 · 견제할 수 있는 개헌 등 제도적 정치개혁 방안을 고민”하라고 주문한다.
중앙은 대선까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주요 후보들에 대한 당부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현실 권력도 민주적 비폭력적 절차로 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며,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하는 국민의 힘을 두려워 하게 하는 영원한 반면교사”다.
특히 중앙은 박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불통이라는 지적을 수없이 받았음에도 끝까지 몇몇 측근들하고만 소통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대선 후보들에게 “불통과 비선에 기대 권력을 향유할 생각은 애당초 품지도 말아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중앙은 모든 문제의 해법은 국민과의 소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거듭해서 강조한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우리 헌정사의 비극이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를 폭력과 혼란 없이 끌어내린 ‘촛불혁명’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가 지금 까지 쌓여온 적폐 청산과 바람직한 권력구조 창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두 사설의 생각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추천 도서]
맹자 동양고전연구회 역주, 민음사 펴냄, 2016년
어떤 군주가 맹자에게 물었다. “신하가 임금을 끌어내리는 일이 가능합니까?” 맹자는 주저 없이 답했다. “인(仁)과 의로움을 해친 자는 왕이 아닌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는 더 이상 임금이 아니지요. 저는 한 사내일 뿐인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죽였다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맹자의 생각은 왕이 왕답지 못하다면 갈아치워야 한다는 ‘역성혁명’의 근거가 되었다. 존 로크에 따르면, 군주란 시민들이 자신들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회 계약’에 따라 추대한 자일 뿐이다. 때문에 왕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못 한다면 시민들에게는 ‘저항할 권리’가 생긴다. 권력자는 도덕적이어야 하며 모든 권력은 시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다. 이 점에서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
[추천 도서]
만화 존 로크 정부론 이근용 글, 주경훈 그림, 주니어김영사 펴냄, 2009년
[키워드로 보는 사설]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대통령제에서는 국가정책이 신속하게 결정되고 집행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그만큼 독재에 취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국가적인 위기가 닥친 시기에 더 커지곤 한다. 우리 역사에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이유로 민주주의와 인권에 반하는 정책이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실시되었던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 말기에는 어김없이 권력비리가 불거지곤 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이 안정적인 운용이 필요한 통일·외교·국방 분야를 맡고 총리가 행정부를 맡아 책임 통치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국회의 다수당이 국정을 이끌어 가는 내각제 등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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