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신화'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세월호 참사 당시 쓴 칼럼 '화제'
심유철 입력 2017.05.22. 14:10 수정 2017.05.22. 16:25
[쿠키뉴스=심유철 기자]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한 일간지에 게재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칼럼이 21일 화제다.
김 후보자는 2014년 5월4일 중앙선데이 ‘김동연의 시대공감’에 칼럼을 기고했다. 김 후보자는 해당 칼럼에서 백혈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아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세월호 사고로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김 후보자는 해당 글에서 “혜화역 2번 출구는 늘 설레는 마음으로 걸었던 길”이라며 “대학로 소극장에서 좋아하는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러 가는 길목이어서였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큰 애가 병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하면서 이 전과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길은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안고 걷는 길이 됐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세월호 사고로 자녀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면서 남몰래 눈물을 닦았다”면서 “떠난 자식에 대한 애절한 마음과 간절한 그리움을 누가 알까. 자식 대신 나를 죽게 해달라고 울부짖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고통일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또 “이번 사고로 가슴이 매우 아프다. 어른이라 미안하고 공직자라 더 죄스럽다”며 “2년여 동안 투병을 하다 떠난 큰 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데, 한순간 사고로 자식을 보낸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더 아프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아들을 잃었던 당시,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국무조정실장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국무조정실 직원들 어느 누구도 아들의 투병 사실을 몰랐다. 아들 장례식 당일에도 업무에 복귀해 ‘원전비리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하는 등 공직자로서 강직한 모습을 보였다.
교육자로서의 능력 역시 출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는 지난 2015년부터 현재까지 아주대학교에서 총장을 지냈다. 그는 아주대에서 학생들과 정기적인 점심 식사 모임을 통해 학생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해결해주려고 노력했다. 또 김 후보자가 감명받은 책을 학생들과 같이 읽는 ‘책터디’ 소모임을 만들어 소통의 창구로 활용했다. 이에 아주대 학생들은 김 후보자를 ‘아주대의 소통 왕’ ‘담임 교수보다 다가가기 쉬운 총장님’ 등으로 평가했다.
김 후보자는 충북 음성 출신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야간대학에 진학, 8년 만에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동시에 합격했다.
김 후보자는 전두환 정부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예산 업무를 맡았다. 또 그는 노무현 정부의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기획재정부 제2차관,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며 국가 중장기 전력인 ‘비전 2030’을 만드는 데 핵심역할을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지명한 이유에 대해 “전 기획예산처와 기재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경제와 관련해 거시적 통찰력과 조정능력이 검증된 유능한 경제 관료”라며 “청계천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기재부 차관부터 국무조정실장까지 역임한 분이다. 누구보다 서민의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동연의 시대공감’ 칼럼 중 '혜화역 3번 출구' 전문
혜화역 2번 출구는 늘 설레는 마음으로 걸었던 길이다. 꽤나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인 대학로 소극장에서의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러가는 길목이어서였다. ‘지하철 1호선’이나 ‘라이어’ 시리즈 무대도 이 길을 따라 찾곤 했다.
같은 혜화역에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년 반 전, 갑자기 힘든 병을 얻은 큰애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였다. 병원 가는 길인 혜화역 3번 출구는 가슴 찢는 고통을 안고 걷는 길이 돼 버렸다. 서로 마주 보는 두 길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탄식이 나오곤 했다.
가끔 했던 강연에서 젊은이들을 꽃에 비유하곤 했는데 정말 꽃 같은 학생들이 세월호 사고로 희생됐다.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남 몰래 눈물을 닦았다. 아내는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을 정도였다. 떠난 자식에 대한 애절한 마음과 간절한 그리움을 누가 알까. 자식을 잃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죽을 것 같은 그리움도 세월 앞에는 먹빛처럼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아주 드물게는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반년 전 스물여덟 나이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린 큰애는 지금도 씩 웃으며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곤 한다. 어린이날을 생일로 둬서 이맘때는 더욱 그렇다.
옆에서 많이들 그런다.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것이라고. 일에 몰두해 잊어보라고. 고마운 위로의 말이긴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자식 대신 나를 가게 해달라고 울부짖어 보지 않은 사람, 자식 따라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아픔이란 것을.
떠나보낸 뒤에도 그 아픔을 매일 ‘똑같이’ 느끼는 것이 힘들었다. 아픔을 잘 견디고 있는 ‘척’을 해야 할 때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생각의 서랍장’을 만들려 해봤다. 그 장(欌)의 칸을 막아 그리움, 사랑, 분노, 안타까움, 미안함, 애틋함과 같은 감정의 끝단이 들어갈 서랍을 따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 때 그 일부를 잘라 서랍에 보관해 두는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애절함의 더욱 절실한 표현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아픔은 언젠가 서랍에 꼭꼭 넣어 두었던 감정의 모서리까지 모두 꺼내 훌훌 털어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훗날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나는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다. 그런 해원(解寃)이 있을 때야 서로 부르는 소리가 비껴가지 않을 것이다.
서랍장을 만드는 데 힘이 된 것은 주위의 위로였다. 큰애를 보낼 때 얼굴을 무너뜨리고 눈물을 흘렸던 반백의 중년은 큰애 돌 잔치 때 왔던 40년 넘은 친구였다. 어린애처럼 엉엉 울던 덩치가 산(山)만 한 청년은 외국에서 일부러 귀국한 큰애의 친구였다. 노구(老軀)를 지팡이에 의지해 운구차를 지켜보던 분은 큰애가 대학원 갈 때 추천서를 써주셨던 여든이 넘은 옛 상사였다.
이번 사고로 많이 아프다. 어른이라 미안하고 공직자라 더 죄스럽다. 2년여 투병을 하다 떠난 큰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데, 한순간 사고로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니 더 아프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그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분들 입장에서 더 필요한 것을 헤아려는 봤는지 반성하게 된다.
돌아보고 고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처럼 모든 국민이 함께 아파하는 나라는 그리 흔치 않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치유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 그리고 희생된 분들을 오래 기리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사회적 자본이고, 희생된 꽃 같은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진 빚을 갚는 길이다.
혜화역 3번 출구에는 아직도 다시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아파야 한다면 엄마, 아빠나 동생이 아니라 자기인 것이 다행’이라고 했던 큰애 때문이다.
이번 희생자 가족들도 견디기 어려운 사연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분들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를 드리고 싶다. 그렇게 할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말 않고 그저 따뜻한 허그(hug)를 해드리고 싶다. 그분들에게 닥친 엄청난 아픔의 아주 작은 조각이나마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그분들의 힘든 두 어깨를 감싸며 전하고 싶다.
tladbcjf@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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