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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의 딜레마

장백산-1 2017. 7. 8. 18:14

김재규의 딜레마


우리 사회는 지금깢도 박정희 그림자가 걷히지 않았다. 박근혜가 막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두고 봐라, 박근혜가 박정희 그림자까지 모두 지우고 갈 것’이라는 예측성 칼럼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가 탄핵되고 재판을 받고 있어도 박정희 그림자는 여전하다.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렸다’는 말을 들었다. 앞뒤 뒤바뀐 소설 같은 이야기였으나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싸했다. 김재규가 박정희 가슴에 권총을 겨누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부마사태를 시발로 전국적인 혁명적 반정부시위가 일어나 박정희는 밧줄에 묶여 거리에 끌려 다녔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상상력의 클라이맥스였다. 비약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논리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었다.


역사상 쿠데타를 성공하면 권력을 누리다 죽고, 실패하면 역적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성계가 쿠데타에 성공했으나 그 뒤 아들들은 피 터지는 싸움을 보였다. 세종대왕이 선정을 베풀어 ‘육룡이 나르샤’라고 했으나, 이성계의 씨앗들이 500여년 이 나라를 지지리 못난 나라로 이끌어왔다. 대통령 박근혜가 세종대왕처럼 선정을 베풀었더라면 박정희의 친일 행적과 좌익 행각은 모두 사라지고 반쪽짜리 남한에서 ‘제2건국의 아버지’란 역사국정교과서로 이성계의 업적을 능가할 뻔 했었다.


이것이 김재규의 딜레마다.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김재규가 아니었으면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가 옳고 그른지 판가름이 났을 것이라 했다. 박근혜가 박정희라는 아버지 덕에 대통령까지 되어 국정농단으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데도 법원 앞에서 ‘가장 깨끗한 박근혜 대통령님 석방하라’는 박정희 추종세력들이 태극기를 흔든다. 


태극기가 등장한 것도 해괴한 일이거니와, 요즘 정권이 바뀌어 국무위원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외교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몇 사람이 이중국적, 위장전입, 투기혐의 등이 있다고 자기 허물 구린 줄 모른 야3당이 깨진 독의 예리한 날처럼 물고 늘어진다. 물론 불법혐의가 있다면 의당히 국무위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외교장관 청문회에 검증하러 나온 국회의원 가운데 박근혜 국정농단 주주격인 자유한국당의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이 얼굴을 드러냈다. 이들 얼굴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인명진이란 사람이다. 인명진 목사는 세간에 정직한 사람으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가 ‘박근혜=새누리당’을 혁신해 먼지와 까끄라기를 털어내겠다고 들어간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결과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새누리당’을 ‘자유한국당’으로 이름만 바꿔 ‘박근혜=새누리당’의 공식에 새누리당을 빼고 ‘박근혜=국정농단’으로 뒤바꿔놓았다. 박근혜 국정농단을 ‘박근혜=자유한국당’으로 하려니 뭔가 헷갈렸다. 혹 박근혜는 득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새 며칠이나 지났다고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이 새 정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에 등장했다. 누가 이들에게 자유한국당 명찰을 달고 국무위원 청문회의장에 뻔뻔히 낯을 들고 나타나게 했는가. 


여기에 이르면 인명진이 누구냐 하는 질문을 한 번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은 사라져야 한다’고 기염을 토한 그가 박근혜 국정농단 주주격인 사람들을 청문회의장에 내보내려고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것은 아닐 터다. 중국 속담에 ‘패초유근유자(稗草有根有?)’란 말이 있다. 벼농사에 해만 끼친 피도 뿌리가 있고 씨앗이 있다는 뜻이다. 친일의 피가 면면히 흐르는 일부 기득권층 사회에 초록이 동색이라고 친일 좌익 행적의 박정희와 박근혜 추종자가 어찌 없겠는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있는 무리들이 국권을 좌지우지하다 보니, 광주시민에게 전투특전단을 파견하고 헬리콥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주검으로 몰아간 명령권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 지금 어떤 모습인가.


부정한 돈으로 호화생활을 하면서 뻔뻔히 고개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가 하면 전직 대통령이라는 특권까지 누리며 사실을 부인하고 은폐하는 자서전을 낸 사회가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이 아닌가.


적을 막으라는 무기가 손에 들어오자 권력욕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안하무인의 철권통치로, 거기에 온당한 처벌도 받지 않는 이 관행은 역사적 차원에서 바로 잡아져야 한다.

 

신지견 소설가 hjkshin@naver.com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