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 명령 하달" 505보안부대 문건 내용 살펴보니..
유선의 입력 2017.08.27. 20:42
[앵커]
앞서보신 보도들은 전해드린 대로 1980년 5 · 18 당시 광주에 주둔했던 505보안부대 문건에 담긴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이 505 보안부대가 작성한 문건 중엔 "발포 명령 하달"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도 있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취재기자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유선의 기자, 우선 저희 JTBC 등 언론에 공개된 505 보안부대 문건들은 진본입니까?
[기자]
진본은 확실합니다.
505 보안부대는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부 예하부대이고, 문서에 보면 2007년 당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문서를 확인했다는 표시도 되어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1980년 5월 21일 새벽에 작성된 문건, 그 문건에 등장하는 '발포 명령'이란 문구가 있는 거잖아요. 이게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최초로 확인된 군 수뇌부의 발포 명령 증거다, 이렇게 봐도 되는 거 아닌가요?
[기자]
빨리 발포 명령의 증거를 찾고 책임자도 규명해야 하겠습니다만…아쉽게도 이 문건을 그 출발점으로 삼기는 좀 힘듭니다.
[앵커]
그런 취지의 보도도 많이 나왔고, 지금 하신 얘기는 보도와 다른 얘기인데. 왜 그런거죠?
[기자]
문서 전체를 보시겠습니다.
해당 문서 번호는 21-57, 그러니까 1980년 5월 21일에 작성된 57째 문서입니다. 작성 시간은 21일 새벽 0시20분이라고 돼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작성된 21-55번 문서를 보면, 작성 시간이 21일 밤 10시 55분입니다.
[앵커]
시간 순서가 안 맞는군요.
[기자]
이 505보안부대 문서가 21-01번부터 21-60번까지 있는데 순서를 맞춰보면 또 각 문건들이 담고 있는 상황 등을 종합해보면…문제의 57번째 문건은 21일이 아닌, 22일 새벽 0시20에 쓴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앵커]
그렇게 되면 이미 그 때는 집단 발포 이후가 되는 거겠군요.
[기자]
바로 그렇습니다. 그 부분이 중요한데요.
문서에는 22일 0시 20분에 작성됐다고 한다면 21일 밤 11시 15분에 "유사시 발포하란 명령이 하달됐다"고 봐야합니다. 그런데 계엄군은 이미 10시간 전인 21일 오후 1시에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에게 집단발포, 조준사격을 한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그럼 대규모 발포를 다 한 뒤에 '알리바이성'으로 "유사시 발포하라"는 자위권 성격의 명령을 문건에 담아뒀다, 이런 추정도 가능하단 건가요?
[기자]
일부 문서가 오기됐을 가능성, 애초 문서를 잘못 작성했을 가능성 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전 과거사진상위원회도 이 문건을 확인했지만 발포명령 증거로 채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건을 기초로한 발포 명령자를 타고 올라가지 못했던 겁니다.
[앵커]
그럼 국방부가 이번에 꾸릴 특별진상조사단. 이곳에선 이 발포 명령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요?
[기자]
쉽진 않은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이번엔 37년만에 처음으로 군 관계자, 특히 공군 쪽에서 조종사들의 증언이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 있고, 무엇보다 대통령 지시 이후 국방부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군의 비밀 자료, 또 기무사의 존안자료를 최대한 공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에 앞선 세 차례 시도 때보단 진일보한 진상 규명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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