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국회여, 공수처법을 막지 말라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헌법학 입력 2017.10.08. 20:06
[경향신문]
‘옥상옥(屋上屋)’이라는 말이 있다. 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는다는 뜻이다. 불필요하게 일을 이중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1987년에 여야 8인의 정치회담을 통해 현행 헌법의 초안을 마련하면서 헌법재판소 도입이 결정되자, 헌재 도입에 반대하는 측에서 내세운 대표적인 논리가 바로 ‘옥상옥’이었다.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일반법원이 있으면 됐지, 새로 헌재를 두는 것은 불필요한 이중장치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헌재가 불필요한 옥상옥이라고 이야기할 국민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 검찰과 별개로 고위공직자들의 범죄를 직접 수사하고 기소하는 공수처를 도입하자는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똑같이 옥상옥이라는 일부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집중된 권력을 다른 독립기관에 분산시키고 기관 간의 견제와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절대 옥상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의 오랜 믿음이다.
경향신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9~30일에 걸쳐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의견이 81.9%로 나타났다고 한다.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공수처 도입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형 부패척결과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더욱이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과 바른정당의 후보들은 공수처 설치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지금 국회에는 박범계 의원안 등 3건의 의원발의안,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안이 제출되어 있고, 최근에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도 공수처 설치 권고안을 낸 바 있다. 국회는 하루속히 이들 공수처 법안에 대한 심의에 착수해 국민들의 뜻을 두루 살피면서 여야 간의 대화와 타협, 설득과 조정을 통해 제대로 된 공수처 법안을 다듬고 이것을 통과시켜야 한다. 공수처 설치 법안이 만약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다면, 이것은 국회가 대다수 국민의 열망을 저버리는 일이고 지난 대선에서 공수처 도입을 공약한 각 정당들이 대국민 약속을 어기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공수처 설치가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 두 가지가 관건이라고 믿는다. 첫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내지 ‘정치적 중립성’ 확보이다.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많은 국민들은 검찰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검찰권을 오남용한 적이 있다고 믿는다. 공수처가 대통령 등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성공할 수 있는 이유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들이나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안에서 국회가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통령은 추천된 후보자 2명 중 1명을 후보자로 지명하게 하며, 이 처장 지명자에 대해 다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하는 것도 임명권자인 대통령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이다. 공수처장을 연임할 수 없게 단임제로 한 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공수처 구성원의 검찰과의 절연을 의미하는 ‘검찰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이다. 공수처가 성공하려면 검찰조직과 엄격히 분리돼야 한다. 일부의 우려처럼 옥상옥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검찰과의 절연은 꼭 필요하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들이 전·현직 검사의 공수처 임용 제한, 검사의 공수처 파견 금지 등을 조문화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공수처의 규모와 관련, 공수처 구성원을 최대 122명까지 둘 수 있게 한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안에 대해 일부에서 ‘슈퍼 공수처’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공수처의 규모는 국회 논의과정에서 수사 대상 고위 공무원의 범위, 수사 대상 범죄를 두고 조정하면 될 문제일 뿐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국회 논의과정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공수처에 대한 견제장치의 마련이다. 고위 권력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한 사정기관인 만큼 견제장치가 꼭 필요하다. 우선 국회의 견제장치로서, 공수처가 매년 정기국회에 사업보고서와 사업계획안을 제출하는 식으로 국회에의 보고의무를 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나 시민사회의 공수처 견제장치도 없어서는 안된다. 국민 누구나 처장 후보를 추천위원회에 천거하고 의견 제출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언론 브리핑도 가능하게 할 필요가 있다.
1996년에 참여연대가 공수처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부패방지법을 입법청원한 것이 공수처에 대한 국회 논의의 시작이다. 그동안 관련 법안이 국회에 13차례나 제출되었다. 21년 동안 논의했으면 논의는 충분히 했다고 본다. 국회의 결단만 남았다. 공수처 도입을 열망하는 많은 국민들이 이번 정기국회를 주시하는 이유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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