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의 방패'가 된 검사들, '허위증언' 리허설까지 주도
입력 2017.10.31. 05:06 수정 2017.10.31. 09:16
[국정원 파견 검사들의 수사 · 재판 방해 실태]이제영 검사 실무 TF서 "로펌으로 생각하라"
원세훈 변호인 대신 의견서 · 참고자료 작성
검사가 "검찰 조사 불법성 강조하라" 지침까지
"수사 충격으로 기억 감퇴" 등 증인신문 답변 준비
장호중 감찰실장, 검찰 압색 전날 가짜사무실 미리 점검
[한겨레]
박근혜 정부 첫해이자 검찰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가 한창이던 2013년, 당시 국정원에 파견된 검사들은 이명박 전 정권에서 불법행위를 벌인 국정원의 ‘변호인’을 자처하며 한 편의 ‘불법 시나리오’를 썼다.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짜 사무실을 만들고 전날 ‘사전 점검’까지 마쳤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 때는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변호인 질문과 예상되는 검찰의 반대신문까지 만들어 ‘리허설’을 했다. 현직 검사가 “검찰 수사의 불법성을 강조하라”는 지침을 주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우리는 로펌” 원세훈 변호인 자처
2017년 10월 30일 <한겨레> 취재 결과, 박근혜 전 정권 국정원은 2013년 4월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을 팀장으로 한 ‘간부 티에프(TF)’를 만들었고, 그해 2013년 10월 이제영 파견검사를 팀장으로 한 ‘실무 티에프’를 그 아래 만들었다. 이제영 파견검사는 당시 국정원 팀원들에게 “여기를 로펌으로 생각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변호인을 자처했다고 한다. 실제 업무도 로펌처럼 국정원 팀원들이 이제영 부장의 지시에 따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 속기록을 챙기고, 의견서와 참고자료를 작성하는 데 매달렸다. 실무 티에프가 원세훈 변호인 이름으로 이를 대신 작성하면, 그대로 재판부에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재판 대응 기조도 실무 티에프에서 정해졌다. 실무 티에프가 작성한 ‘증인신문 대응방안’에는 “‘이게 결과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거 같다’는 진술 절대 불가”, “다른 직원 증언 숙지해 균형을 맞출 필요” 등 구체적인 지침이 담겨 있다.
검찰 조사의 불법성을 강조하라는 지침도 있었다. 2013년 9월 작성된 ‘증인신문 참고사항’에서는 “검사의 강요에 의해 진술하고, 서명날인을 강요했다며 검찰 조사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검찰 조서 진정성성립을 부인하라”고 강조했다. 이런 내용은 간부 티에프에도 그대로 보고됐다. 2014년 8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쪽이 낸 최종 의견서까지도 모두 실무 · 간부 티에프를 거쳐 재판부에 전달됐다고 한다.
■국정원 직원들과 ‘리허설’도 진행
재판에 대비한 ‘리허설’도 열렸다. 실무 티에프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는 국정원 직원들을 위해 변호인 질문과 검찰의 예상 반대신문 사항을 만들었고, 일부 증인에 대해선 답변까지 미리 준비해줬다. 리허설에서는 이 자료를 보고 변호사 혹은 검찰 역할을 하는 이가 국정원 직원을 상대로 질문을 하며 내용을 숙지시켰다. 예를 들어, 티에프가 작성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기동씨의 증인신문 사항에는 “증인은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검찰 수사로 충격을 받아서 기억력이 감퇴한 것”이냐는 질문이 포함됐다. 실제 2014년 3월 법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변호인이 이 질문을 그대로 읽자, 당시 방청석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당시 국정원 ‘간부·실무 티에프’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이날 <한겨레>와 만나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지시 없이 티에프는 절대 꾸려질 수 없다. 당시 국정원 내부에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혐의가 유죄로 나오면 대한민국이 끝장난다는 얘기가 있어 이걸 무죄로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그래서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당시 검찰 출신인 변창훈 법률보좌관 등에게 상당히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가짜 사무실 공사 뒤 압색 장소 미리 점검
장호중, 이제영, 변창훈 파견검사 이들의 사법 방해는 검찰 수사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3년 4월 만들어진 국정원 간부 티에프는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꾸려지던 날(2013년 4월18일)에 맞춰 검찰 요구사항, 압수수색 시 고려사항, 댓글사건 쟁점 등을 검토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최근까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장호중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검찰 수사 대비를 주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압수수색 전날인 2013년 4월29일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외형적으로는 (압수수색 대비를) 김진홍 심리전단장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감찰실장이 주도한다”고 돼 있으며, 이와 함께 서버기록물 대응 방법 등도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국정원도 자체 조사를 통해 장호중 전 국정원 감찰실장이 서천호 2차장 등과 함께 압수수색 전날 검찰이 압수수색할 ‘가짜 사무실’을 시찰 점검한 사실을 파악했다. 또 당시 국정원은 기존 사무실을 쪼개 칸막이를 설치하고, 이미 언론 등에 공개된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3팀 중 ‘5파트’만 노출하기로 했다. 압수수색 당일 검찰 동선은 통제하고, 이미 공개된 직원인 이아무개 안보3팀장과 김하영씨 등만 등장시키기로 사전에 모의하기도 했다.
이후 남재준 전 국정원장 국정원은 내부적으로 “검찰의 압수수색 결과에 만족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대부분 (국정)원에서 사전 검토한 자료를 압수하고, 종료했다. 영장에 명시된 장소의 압수수색을 대부분 하지 못해 검찰이 불만을 토로했다”며 “직원들이 처음에 긴장했으나 지휘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원만하게 종료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사 등 법률가들이 나서 검찰 수사를 막고는 이를 헌신적인 노력이라고 말한 것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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