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면
2017년 정유년의 태양이 뉘엿뉘엿 저물고 있습니다. 다사다난했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오고 갔던 한 해였습니다. 시대의 파고가 대한민국을 출렁이게 만들었고, 구성원인 국민들 역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역동적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 발걸음의 끝은 어디인지, 희망이 될 것인지 절망이
될 것인지는 아직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내일 피게 될 꽃의 씨앗이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 어제까지 해
왔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오늘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유구한 흐름 속에서 단
한 순간의 오차 없이 이어져왔던 인과율의 작동 원리입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때와 곳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입니다. 여기 이 순간은 사람들이
가진 유일한 한 가지 보물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무엇을 보고 있든, 무엇을 듣고
있든 ,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그 행동, 보고 있는 그 광경, 듣고 잇는 그 소리는 우주 전체 입니다.
그것들이 이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그것들이 모여 삶을 이루고, 사회를 만들고 ,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분명하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분명해집니다. 반대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흐리멍텅 하다면 이 세상 모든 것 또한 흐리멍텅해집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정진(精進)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정진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온전히 살아간다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생각을 하는 모든 행위가 명확해집니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푸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眞理)입니다.
그러나 세상엔 지나간 어제를 후회하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느라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살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헛되이 낭비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불교에서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살지못하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허비하는 삶, 그것을 욕생(欲生)
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욕생은 보통 중생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인과의 흐름을 명확히 보지 못한 채,
업력(業力)에 이끌려 業(까르마)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욕생(欲生)을 다른 말로는 업생(業生)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대다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업생(業生)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욕생을 사는 사람은 탐진치만의(貪嗔癡慢疑)에 사로잡혀 늘 탐욕스럽고, 화내고, 어리석고, 오만하고 ,
의심합니다. 어디에 있든 원망하고 시비하느라 사람들에게 주어진 단 한가지인 동시에 모든 것인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온전하게 살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평생을 고통 받고 괴로워하다 죽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을 맞이
하시겠습니까. 다행인 것은 지금껏 업생(業生)을 살아왔다 하더라도, 내 선택(選澤) 여하에 따라 업생(業
生)이 아닌 내 의지대로 사는 원생(願生)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의지대로 원생을 살아가는 삶, 즉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진리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이미 그 길을 보여
주셨고, 수많은 성현들, 선인들 역시 스스로 그 길을 걸어 갔으며 오늘날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
니다. 정진의 삶은 곧 원력의 삶이요 대광명의 밑거름입니다. 정진은 마음을 밝히는 일이고, 분별과 망상,
번뇌, 탐진치만의를 벗어버리는 일입니다.
마음이 밝아지는 순간 영원한 자유라는 보물, 즉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이제 며칠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한 해의 시작에 앞서 몇 가지
계획들을 세우며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키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다짐을 위해 얼마간
노력하다 이내 나태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좌절해버립니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한 해가 오고 감은
미혹에 빠진 채 부질없이 경계를 짓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한 해를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까. "나는 올해
이렇게 살겠다"고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에 앞서 스스로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배제하고 외부환경이 변화하기만을 바라는 기도는 허망할 뿐입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가운데서도 새해의 일출은 우리에게 특별한 감흥을 선사합니다. 환희
의 빛으로 물든 하늘에 저마다의 희망들을 각인시킵니다. 꿈을 좇는 행위는 그 자체가 희망이 되어 삶의
어둠을 거둬내는 빛이 되어줍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까지 스스로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운동력이 되어줍니다.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땀흘리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설령 이뤼지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로 희망이 되어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치유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그것은 곧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명확히 살아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굳이 새해 첫날을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서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
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감으로써 인과를 깨달을 수 있고 광명을 목격할 수 있으며 눈부신 진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면 지금껏 행복해왔고 앞으로도 행복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행복하다면 온 우주가 행복한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매일
매일의 오늘이고 새로운 새해의 첫날입니다. 뭇생명의 평화를 기원하며 정진 그리고 또 정진합시다.
-백양산 삼광사에서 주지 세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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