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일본 쓰레기장에서 주인 없는 돈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군마현의 한 쓰레기 처리회사는 

혼자 살다가 죽은 노인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 더미에서 검은 봉지에 담긴 현금 4억 원을 발견했다.

버려진 유품 속에 섞여 나온 돈이 지난해에만 약 1,900억 원에 달할 정도라고 하니 쓰레기장만 잘 

뒤져도 돈벌이가 될 것 같다.

외롭고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죽음 직전까지 돈을 생명 줄처럼 움켜쥐고 있던 노년의 강박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고 1인 가구 비중이 급증하는 우리에게 이웃 

나라 일본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발견되는 현금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다.

한국사회는 재벌총수부터 중산층까지 돈을 쌓아놓고도 웬일인지 돈이 부족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50대 이상의 중년.노년 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가계자산이 두둑하다. 1950년대 전쟁 후유증을 겪고

1960년대 이후 고도의 경제발전으로 인한 경제성장의 과실을 고스란히 누렸다.

돈은 죽기 전에 살아있을 때 쓴 돈이 내 돈이다. 죽고 나서 남긴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내가 벌어논

돈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쓰지 않고 죽으면 결국 남의 돈일수밖에 없다.

일본인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싶다' 라는 책에서 돈이 다 떨어지면 최후에는 

길에 쓰러져 죽을 각오로 마음 편히 돈을 쓰라고 조언한다. 노인들이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식이나 

사회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최후에 의지할 곳은 돈밖에 없다는 아주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지만, 그럴

정도로 비참한 경우를 당하게 되면 많은 돈이 있더라도 별 뽀족한 수가 없다. 작가 소노 아야코는 

차라리 살아 생전에 돈을 실컷 쓰다가 무일푼이 되어 세상을 떠나라고 권유한다. 인생의 황혼 무렵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피켓시위라도 하다 죽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라고 주장한다.

이같은 말은 평생 돈 걱정해야 할 수명 100세 시대를 맞아 황당하게 들릴 법도 하지만, 곰곰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가 죽고 나면 돈도 소용없고, 자식에게 상속한다고 자식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재산을 쌓아놓기 보다 벌어들인 재산과 수입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관심을 두는 게 훨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지난9월 코미디계의 황제라 불리던 이주일 선생의 묘가 사라졌고, 묘비는 뽑힌 채 버러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한참 밤무대를 뛸 때는 자고 일어나면 현금 자루가 머리맡에 놓여있었다고 회고했을 

정도로 큰 부를 거머쥐었던 그가 말이다. 보유부동산을 지금 가치로 따지면 500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금연광고 모델로 나와 흡연율을 뚝 떨어뜨릴 만큼 선하게 살았고 세상

떠난 뒤 공익재단과 금연재단 설립까지 꿈꿨던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유족들은 기껏해야 1년에 100만 원 안팎인 묘지 관리비를 체납했을 정도로 유산을 탕진했다고 한다.

추모모임조차 열 공간이 사라진 이주일 선생의 처지가 안타깝고 딱하기만 하다.

잘못된 재산상속은 상속인들에게 독이 든 독주를 물려주는 꼴이다. 국내 재벌치고 상속에 관한 분쟁이 

없는 가문이 거의 없다. 재벌뿐 아니라 평범한 가정에서도 유산 상속을 놓고 전쟁을 벌이다시피 한다.

유산 상속을 놓고 싸움질하는 자식들보다 아무 대책없이 재산을 물려주고 떠나는 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돈을 물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후손들이 화목하게 잘 살 수 있도록 가풍을 조성하고, 삶의 기틀을 마련해주라는 얘기다.

내 자식이나 형제는 다른 집안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다. 인생은 살아잇을 때나 

사후에나 언제나 비관론을 바닥에 깔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돈을 남겨주고 떠나기보다는 살아있을 때 

함께 가족여행을 가거나 자녀의 자기계발을 위한 자금을 도와주면 훨씬 나을 것이다.

'장의사에게 지불할 돈만 남겨두고 다 쓰라'는 말은 미래 걱정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삶에 충실 하라는 뜻이다. yolo(you only live once) 라는 말 그대로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아일랜드 사회에 이런 금언이 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우주자연이 준 물질적인 축복을 마음껏 누리고, 마지막엔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는 게 순리다.

-작가 윤영걸 -  무진장 - 행운의 집 cafe.daum.net/yourhappy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