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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의 경제 및 사회 개혁

장백산-1 2020. 7. 3. 10:48

경제

[창간20주년 특별기획]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및 사회 개혁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㊲ 마지막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발행 2020-07-03 08:08:23

수정 2020-07-03 08:19:56

 

편집자주 : 2000년 5월 15일 첫걸음을 뗀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와 후원인들의 성원과 격려로 민중의소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며 자주평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진보언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 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는 유례 없는 경제·사회 전반의 위기를 가져왔다. 자본주의 250년 역사에 있어서 이번 위기와 비할 수 있는 위기는 1929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세계를 휩쓸었던 대공황 뿐이다. 세계경제가 아직 대공황 때만큼 수축하지는 않았고, 대공황 때 없었던 복지국가, 고용유지 보조금, 재난지원금 등의 덕분에 민중의 생계가 받은 타격은 그 때보다 훨씬 덜하지만 영국, 미국,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페루, 브라질 등 최소한 15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인구 100만명당 200명 이상이 죽어나가는 건강 재난이 위기의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에(대한민국은 100만명 당 5명 수준), 어떤 면에서는 대공황 때보다 더 큰 재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필자 제공

 

코로나19 위기가 언제까지 갈지, 그 위기 이후에 경제와 사회 질서가 어떻게 재조직될지 아직 예측하기 힘들지만, 이번 위기 이후 많은 것이 변할 것은 분명하다. 우선, 대면 서비스나 의류, 식품 가공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은 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한다. 또, 이번 위기를 계기로 극도의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국제적 생산망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생산기지와 수입원을 다변화하여 예기치 못한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려 하는 노력이 여러 나라, 여러 산업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위기를 통해서 투명하고 결단력 있는 정부의 개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 드러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현재 지배적인 경제·사회체제 내에서도 가능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진보적인 세력이 결속하여 쟁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런 변화 중에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세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첫째, 이번 위기는 인간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 하에서 인간의 노동의 가치와 사회적 공헌은 그들이 노동시장에서 받는 보수에 비례한다는 것이 당연시 된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통해 우리는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에 전혀 보수를 받지 않는(거의 대부분 여성들이 행하는) 가사 및 육아 노동, 그리고 주로 저임 노동자들이 종사하는 의료(의사는 제외), 양로, 교육, 식자재 생산과 판매, 배달 등을 포함하는, 소위 ‘재생산 경제’(reproductive economy), 혹은 ‘돌봄이 경제’ (care economy)가 사회의 존재와 경제활동의 지속을 위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것인가를 보았다. 요즈음 이런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영국에서는 주축 노동자 (key workers), 미국에서는 필수 직원(essential employees)이라고 부르면서 대우를 해주고 있는데, 이는 시장주의 경제학의 시각에서는 말도 안되는 개념들이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우리는 시장주의적 사고를 넘어서서 재생산 경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떻게 정당한 대우를 해줄 것인가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의 안전관리요원 3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가운데 지난달 17일 오후 시청역에서 관계자들이 긴급방역을 실시하고 있다.ⓒnews1

 

둘째, 이번 위기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돌았을 때, 모든 사회성원들의 기본 생활과 기초 건강을 보호하지 않으면, 아무도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미국같이 복지가 잘 안 되어있고 노동권이 약한 나라에서, 유급병가를 낼수가 없는 하층 노동자들이나 매일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리기가 힘든 플랫폼 노동자들이 아파도 일을 나가면서 코로나19를 많이 퍼뜨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질병 통제를 잘 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위기에서 이런 노동자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이 제일 고생했다. 이렇게, 이번 위기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고,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전국민의 복지, 의료, 노동권 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턱도 없이 복지가 빈약하고 노동권이 약한 우리나라에서는 복지, 노동 개혁이 시급하다. 다행히 이번 위기를 계기로 정부가 전국민 고용보험의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대단히 긍정적인 신호이다.


시장주의적 사고 넘어 ‘재생산 경제’ 중요성 부각
개도국의 서구에 대한 환상과 열등감 깨져
우리나라는 세계경제 질서를 더 공평하게 개혁하는
선도적인 나라로 거듭나야


셋째, 이번 위기는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들, 특히 미국과 서구 국가들에 가지고 있던 열등감을 극복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몇 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하면서 자신들의 경제 시스템, 사회 제도, 정치 문화가 세계최고라고 뻐겨오던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의 나라들이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쩔쩔매면서 수만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이 나라들에 대한 환상들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가를 깨달았다. 도리어 베트남, 이티오피아, 인도 남부의 케랄라(Kerala) 주 등 일부 가난한 사회들이 코로나19에 훨씬 더 잘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 나라 사람들뿐이 아니라 다른 개발도상국 국민들도 자긍심을 얻었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 수백년에 걸친 침략, 노예 경제, 식민지 지배, 그리고 탈식민지화 이후에도 계속되어온 경제적 군림을 통해 형성되어 온,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백인들에 대한 두려움과 유럽 문화에 대한 경외감이 봄에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의 회복은 개발도상국들이 앞으로 새로운 세계 경제·정치 질서를 요구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이런 열등감에 눌려지냈지만, 이번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있어 세계 최고라고 할 만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많은 나라들, 특히 개발도상국들이 우리 나라를 전범으로 삼을 만한 나라로 여기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를 기회로 삼아서, 세계경제 질서를 더 공평하게 개혁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나라로 거듭나야 한다.

 

지난 4월 15일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키트를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화물을 적재하고 있다.ⓒ외교부

 

재생산 경제에 종사하는 노동의 사회적인 가치의 재정립, 복지국가와 노동권의 확대, 새로운 국제질서의 건설 등의 변화는 기존의 경제-사회 질서의 큰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을 이루려면 국민 사이의 연대의식의 확대와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세월호의 비극을 승화하여 국민행동으로 박근혜 정부의 탄핵을 이루어내고, 세계에서 손꼽히게 효과적이면서도 투명한 방식으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우리 국민이라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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