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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業障)이 해소되기 위해 삶이 있다.

장백산-1 2020. 9. 1. 16:17

업장(業障)이 해소되기 위해 삶이 있다.   - -  법상스님

사람들의 인생에서 다양하게 일어나는 좋고 나쁜 일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업(業) 때문이다.
업(業)이란 내가 한 행위,즉 생각(意業), 말(口業), 행동(身業))이라는 3가지 업(業)인 3가지 행위이고
그런 행위는 그런 행위에 따르는 결과(結果)를 끌어온다. 3가지 행위에 따르는 결과가 업보(業報)다.

사실 과거에 행한 행위는 이미 지나갔다. 대부분의 행위는 흔적이나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즉 
무위행(無爲行)은 행위를 했지만, 그 행위가 찌꺼기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행위이다. 그래서 하되 
함이 없는 행을 무위행 이라고 한다. 무위행에는 결과 즉, 업보(業報)가 따르지 않는다. 아픔, 상처, 
괴로움 같은 기억이나 원한, 분노 같은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특정한 업(業)은 업보(業報)를 불러온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 해소되지 않은 찌꺼기, 화와 증오, 
원한 같은 업보(業報)를 남긴다. 누군가가 나에게 욕을 했거나, 무시했거나, 빼앗아 가는 행위를 했을 
때 당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복수심이 남는다. 그 복수심이 바로 훗날의 복수라는 업보(業報)를 불러온다.
그같은 복수심이 바로 찌꺼기요 흕적이요 업장(業障)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일어났다가 사라져버린다. 사람들 또한 생각, 말, 행동이라는 행위를 하고 나서 
그것들이 왔다가 간 뒤에 흔적 없이 흘려보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 의식, 
분별심을 가지고 그 행위에 대해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고, 집착하고, 화를 내고, 증오를 하는 
등의 어리석은 마음으로 찌꺼기를 양산해 낸다.

본래 아무 문제 없이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것들에 대해, 붙잡고, 사로잡히고, 화내고, 
원한을 품고, 집착하는 등의 마음으로 괴로운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 속에 
문제, 업장, 찌꺼기가 만들어지면, 그것은 반드시 풀려야 하고 해소되어야만 한다. 이처럼 과거에 행한
특정한 업이 해소되지 않고 쌓여 있는 것을 업장이라고 하고, 그 업장의 찌꺼기들 때문에 사람들의 
삶에는 다양한 삶의 경험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업장(業障)이 해소되기 위해, 해결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주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으면, 내 안에서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해소되지 않은 복수심이나 원한심은 내 몸에 병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무시당한 경험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해소되기 위해 찾아오는 모든 경험을 해소되도록 허용해 주어야 하는 
이유다. 나를 찾아온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게 되면, 해소되기 위해 올라온 것이 해소되지 못한 
채 또 다른 찌꺼기를 남기며 억눌릴 뿐이다. 억눌러 놓기만 하면 훗날 더 큰 화가 되어 폭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괴로움이 오든, 역경이 오든, 아픔과 슬픔이 찾아오든, 나를 찾아 온 그 모든 괴로운 것들이 
풀려나가도록, 해결되도록, 해소되도록 마땅히 허용해 주라. 온전히 그것을 경험해 주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여 살아주는 것이다. 아플 때 충분히 아파해 주고, 괴로울 때 그 괴로움 속으로 뛰어들어 
흠뻑 괴로워해 주기를 선택해 보라.

그것이 바로 직접적인 마음치유다. 그것이 곧 불이중도(不二中道)의 실천이다. 불이(不二)란 곧 그것과 
내가 둘이 아님을 깨달아, 그것과 하나가 되어 허용되는 경험이다. 하나가 되어 그것을 살아주게 될 때, 
그것은 잠시 해소되며 올라오겠지만, 빠르게 해소되었기에 빨리 지나가게 될 것이다.

괴로움을 피해 도망칠 때, 괴로움은 더욱 나를 옭아맨다. 괴로움 속으로 뛰어들어 하나되어 경험할 때, 
괴로움은 금방 흡수된 뒤 사라져 간다. 업장이 해소가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업장 소멸이다.

지금 여기 내게 주어진 삶이야말로 진실이다. 진리이기에 지금 여기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 진리와 하나되어 그저 경험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