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상상(想像)과 실재(實在)

장백산-1 2020. 12. 27. 17:14

상상(想像)과 실재(實在)

자신의 의식(意識)을 상상적인 의식으로부터 실재적인 의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항상 실재적인 의식에 귀를 기울여라. 각별하게 실재적인 의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대는 상상의 덫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러 이유로 인해서 상상이 매우 만족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그대가 상상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신의 상상에 개입할 수 있다. 그대는 자신이 생각하고 싶픈 대로 생각할 수 있다. 아무도 그대의 생각을 방해하거나, 그대의 상상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그대는 전적으로 자유롭다. 그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그릴 수 있다. 그대는 자신이 기대하고 원하는 만큼 자신을 상상할 수 있다. 모든 생각이나 상상은 그대의 자유이다. 에고는 그대의 상상이나 생각을 너무 즐거워한다.

그래서 스승이 죽으면 스승이 살아있을 때보다 더 많은 제자가 생기는 법이다. 죽은 스승에 대해서 제자들은 완전히 편하게 스승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살아있는 스승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낀다. 붓다는 2천5백 년이 지난 지금에 붓다가 살아 생전 당시보다 훨씬 많은 제자를 갖고 있다. 예수에게는 초기에 열두 명의 제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지구상의 인구 절반이 예수의 제자다. 

스승이 부재한 결과를 보라. 이제 예수는 그대의 손아귀에 있다. 그대는 예수를 그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예수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으며, 예수는 그대의 꿈과 상상을 파괴할 수도 없다. 이른바 기독교인들이 실제의 예수를 보았다면, 기독교인들의 심장은 당장 펄떡거림을 멈추었을 것이다. 왜일까?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상상으로 만든 예수가  있다. 그런데 예수는 실재(實在)했던 인간(人間)이다. 그대는 예수가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제 예수 이 녀석은 ‘독생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평범해 보인다. 예수는 목수인 요셉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예수가 사라지면, 예수는 그대의 상상이나 생각을 방해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대는 그대가 좋아하는 상상이나 생각대로 예수의 모습을 그리고 색칠하고 만들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쉬워진다. 상상이 전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대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나에 대한 그대의 상상력은 점차 힘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대가 자신의 상상을 내던져버리지 않는 한 그대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모든 쾌락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오쇼의 <기적의 차크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