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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붓다로 행위하는 ‘붓다로 살자’ 도법스님의 서원(誓願)

장백산-1 2020. 12. 27. 23:46

지금 여기서 붓다로 행위하는 ‘붓다로 살자’ 도법스님의 서원(誓願)

 

인드라망 세계관에 입각해 서로 돕는 길을 걷는 생명사상 발현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창립, 실상사 중심의 생명평화운동 전개

세계도 인간도 본래 공동체이니 공동체적 생각‧ 말. 행동 필요 강조

 

도법 스님은 지금 여기서 붓다로 행동하는 것이 불자의 삶이라며 ‘붓다로 살기’를 서원하고 생명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몸의 중심이 어디인가? 하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뇌다, 혹은 심장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 몸의 중심은 그때그때 아픈 곳입니다. 발가락 하나를 다쳐도 사람은 다친 발가락을 치료하기 위해서 온몸과 마음으로 다친 발가락 치료에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렇듯이 공동체의 중심도 아픈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이 공동체의 중심입니다.”(‘붓다, 중도로 살다’)   

 

아픈 곳이 중심이라 하며 세상의 아픈 곳을 향하여 그 상처를 어루만져 생명을 움트게 하고 권력구조를 벗어난 공동체를 이 땅에 심어내고자 인생 화두를 간직하며 실존의 칼날 위를 중도로 균형 잡으며 걸어가는 스님이 있다. 그는 20~30년에 걸쳐 승가공동체, 사부대중 공동체, 마을공동체를 일구어 왔다. 바로 도법(道法) 스님이다.

 

도법은 1949년 4·3사건으로 아버지를 여읜 아픔을 간직하고 제주도 한림읍에서 태어났다. 홀어머니 품에서 자라다가 17세 때 어머니의 인도로 자의반 타의반 금산사로 출가한다. 스무살 즈음 모친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죽음의 문제가 강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나는 무엇인가’ ‘왜 죽는가’ ‘왜 사는가’ 등의 인간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 그의 마음에 사무쳐왔다. 아마 도법은 이때부터 인생 화두에 몰입했던 거 같다. 그는 1969년 해인사 강원을 나와 22세쯤 도인이 될 요량으로 선방으로 간다. 1970년 송광사 수선사 선방에서 진행한 3년 결사를 비롯해 제방선원에서 수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선방생활은 그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도인도 안 되고, 당시의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선방문화에 실망한 것이었다. 이후 그는 ‘화엄경’과 만난다. 화엄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생명평화의 큰 바다에 눈을 뜬다. 우주를 하나의 큰 그물로 보는 인드라망 세계관에 입각하여 산천초목, 유정과 무정,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주의 온갖 생명이 서로 어우러지고 서로 돕는 그의 생명평화사상이 움터 나오게 된 것이다.

 

도법은 1990년 개혁승가결사체인 선우도량(善友道場)을 만들고 종권 다툼으로 얼룩진 종단을 개혁종단으로 만드는 데 앞장선다. 그는 아픔과 비난 속에서 종단을 안정화시킨다. 지리산 실상사 주지였던 그는 1998년 국내 유일의 ‘귀농전문학교’를 만들고 실상사 농지를 이들에게 제공한다. 1999년에는 불교 대안운동 단체인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창립한다. 지리산 실상사를 중심으로 공동체운동, 생명평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게 된 것이다. 

 

도법은 지리산에 살면서 지리산 품 안에서 벌어진 좌우대립으로 갈린 민족의 아픔, 이념대립, 환경파괴 등과 접하며 종교계를 비롯한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생명살림운동에 앞장선다. 2004년부터 5년 동안 수경 스님 등과 생명평화 탁발순례에 나선다. 이때 만든 경전이 ‘생명평화경’이다. 기독교와 불교, 진보와 보수가 함께 어우러져 온갖 대립, 편가름을 넘어 과거를 묻지 말고 생명평화로 함께 가자는 것이다. 여기서 탄생한 공동의 기도문이 ‘생명평화경’과 ‘생명평화 100대 절 명상’이다.

 

“생명평화의 벗들이여!/ 서로 의지하고 변화하며 존재하는 생명의 진리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길이니, 지금 진리의 길에 눈뜨는 달관과 진리의 길에 어울리는 자족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명의 고향인 자연을 병들게 하는 진리를 외면한 인간 중심의 이기적 삶을 버리고, 우주 자연을 뭇 생명의 붓다로 대하는 달관과 자족의 삶을 사십시오.”(‘화엄생명평화경’)

 

도법의 진정한 서원은 ‘공동체로 살아가기’와 ‘붓다로 살자’이다. 그는 인간의 본래 모습이 공동체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도 인간 자체도 본래 공동체의 모습이기에 공동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며 깨어 있는 정신으로 전력투구하는 수행이다. 인드라망 공동체, 실상사 산내마을 공동체, 실상사 사부대중 공동체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그 결과 산내면에는 2000명이나 되는 마을 식구들이 실상사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대안적 삶을 추구한다. 실상사 뜨락에는 산내면 아이들이 와서 마음 놓고 뛰논다. 산내면에는 작은 대안학교를 비롯한 7개 단체가 ‘한 생명’을 통해 실상사와 연결된다. 10명의 스님이 실상사에 상주하고, 이들이 사부대중 공동체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 매일, 매주, 매달 승속의 차별을 떠나 공동체 활동을 한다. 사부대중 공동체는 도법이 바라보는 불교 공동체의 원형이다. 공동체는 인드라망 그물코로 연결되어 있기에 상대의 아픔은 나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동체대비다.

 

이 공동체 활동의 한 가운데는 ‘붓다로 살자’가 숨 쉬고 있다, 생명평화의 인드라망 세계도 붓다로 사는 것이다. 붓다로 사는 삶이란 지금, 여기서 붓다로 행동하는 것이다. 붓다로 행동하는 나는 존엄한 존재로서 인생의 주인공이며 삶의 창조자이다. 그것은 연기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중도적 삶의 실천이다. 중도란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매이지 않고 현장에 직면하여 사실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일상의 현장을 팔정도로 살아내는 것이다.

 

붓다는 저 멀리 있는 신화적 존재로서 아픔도 없었던 인물은 아니다. 인류 역사 속의 붓다는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삶의 현장에서 시련, 음모, 아픔, 굶주림, 비난 속에서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간 인물이다. 나눔, 연민, 비움, 평정, 평등, 전법, 단순 소박한 삶을 실천하면서. 우리 자신도 여러 가지 아픔과 고통에 직면해서 붓다로 살아가면 붓다다. 시민 붓다, 농부 붓다, 노동자 붓다, 사장 붓다, 붓다 당신이다. 깨달음 또한 신비체험이 아니라 편견과 두려움을 걷어내고 연기의 실상을 똑바로 알아차리고 내 삶으로 실현해 내는 것이다. 사실 정신 차려 보면 평범한 일상적인 삶이 신비요, 기적이요, 떨림이다. 다음은 ‘붓다로 살자’ 발원문 일부이다.

 

“신기하고 신기하도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보니/ 사람이 그대로 오롯한 붓다이네./ 안타깝고 안타깝도다./ 어리석음과 착각에 빠져 붓다인 사람이 중생노릇하고 있네./ 한심하고 한심하도다./ 언제나 분주하고 고달프게/ 소를 타고 소를 찾고 있네.(중략) 천지를 진동시킨 붓다의 한 말씀 한 말씀을/ 간절히 두 손 모아 가슴에 새깁니다./ 뭇 생명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겨/ 한 생명 빠짐없이 평화와 행복의 길로 이끌었던/ 붓다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따라/ 저희들 또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거룩한 붓다로 살겠습니다.…”

 

도법은 자신의 참모습이 본래 이미 완성된 붓다라는 자각 속에서 붓다의 행위로 그 어떤 조건도 없이 그 무엇도 구함이 없는 마음으로 기꺼이 짓는 복은 퍼 쓰고 또 퍼 써도 다함이 없는 영원한 무루복(無漏福)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다시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전환을 통하여 인류에게 닥친 문명사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21세기 약사경’을 바탕으로 공동체 구성원들과 약사기도 천일결제에 들어 기도 발원을 올리고 있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66호 / 2020년 1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