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무엇을 ‘나’라고 하는가? : 오온(五蘊)과 무아(無我) ③

장백산-1 2021. 6. 1. 19:18

무엇을 ‘나’라고 하는가? : 오온(五蘊)과 무아(無我) ③

 

오온(五蘊 :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중  ‘수(受)=느낌’이라는 이해는 부정확, ‘수(受)=감수 작용’이 옳다

 

불교의 인식론(認識論은 지각(知覺)의 대상(對相)에 따라 각기 다른 인식(認識)의 영역(領域)을 구분(區分)한다.

오온(五蘊) 중 식(識)을 감관과 대상에 따라 나눠 (認識)의 영역(領域)이 가진 독립성을 인정한다.

경험 배후에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자아 또는 주체는 없어…무아설(無我說)과 관련 

 

지난 연재에 이어 오늘은 ‘나’를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온(五蘊)의 두 번째 요소인 수온(受蘊)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불교 개론서에서는 수(受)온에 대해 ‘느낌’(feeling)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각과 판단’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생각할 때 수(受)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느낌이 아니라 ‘감수(感受) 작용’을 뜻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합니다. 감수(感受, sensation)란 “외부 세계로부터의 자극을 6근(根)이 받아들이는 일”을 뜻하는 말로 통상적 의미의 ‘느낌’과는 다릅니다. 느낌은 “몸의 감각이나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기운이나 감정”을 뜻하는 것으로 감수(感受)된 것에 대한 인지적(認知的) 작용을 의미합니다. 

 

수(受)는 오온의 상(想, ideation, perception 혹은 conceptuali zation)과 식(識, consciousness)에 선행하는 요소로서 ‘좋다’ ‘나쁘다’ 등 의식적·인지적 판단에 속하는 ‘느낌’이 아닙니다. 12연기(緣起)에서 말하는 수(受)의 위치를 감안하더라도 오온의 수(受)는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일종의 전의식(前意識, sub-consciousness) 수준에서의 ‘감수(感受) 작용’을 의미합니다. 또한 오온의 수(受)는 감각주체의 능동적인(active) 과정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 지각되면-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의 여섯 감각기관, 즉 육근(六根)과 대상(육경/六境)이 만나면 -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수동적인(passive) 과정입니다.

 

오온에서의 수(受)는 일반적인 감각 작용 이론과는 구별되며, 이 점은 인간의 인지과정(認知過程)을 이해하는데 있어 불교전통의 중요한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감각작용(感覺作用)은 ‘감각 된 것’에 대한 인간의 반응(反應) 즉, ‘좋다’ ‘싫다’ 등의 분별을 하는 느낌이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며 따라서 모든 감각작용(感覺作用)은 원칙적으로 ‘의식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온의 수(受)는 ‘의식되기 이전’의 전의식(前意識, sub-consciousness)에서 일어나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을 뜻하는 것으로 통상적 의미의 감각작용(感覺作用)을 가리키는 ‘느낌’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오온의 수(受)가 ‘의식되기 이전’에 일어나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이라는 뜻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흔히 수(受)의 세 종류로서 언급하고 있는 고(苦), 락(樂), 불고불락(不苦不樂)에서의 고(苦) · 락(樂)은 일상적으로 인지되는 고락의 느낌이 아니라 선정(禪定)에서라야 감지될 수 있는 ‘예민한’ 마음의 상태입니다. 요컨대 육근(六根)의 대상에 대한 분별적 사유 이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성리학에서 말하는 미발(未發), 즉 희로애락의 정감이 발동하기 이전의 상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경험을 해체하여 무아(無我)를 설명하고 있는 오온설은 철학적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선정(禪定) 상태에서의 체험입니다. 오온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선정과 같은 수행 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오온에 대한 설명들이 선정 경험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은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오온 중 수온(受蘊)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상온(想蘊)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상(想)이란 앞서의 고(苦), 락(樂), 불고불락(不苦不樂)의 감수(感受)를 ‘개념화’(conceptualization)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푸름’이라는 ‘직접 경험’(불교적으로 말하면 현량)을 ‘푸른색’ 이라고 하는 개념(槪念)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푸름이라는 경험 그 자체와 그 경험을 ‘푸른색’이라고 개념화(槪念化)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따라서 가장 좁은 의미로서의 ‘지각작용’이란 바로 상온(想蘊)에서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개념화의 과정은 불교적 관점으로 말하자면 ‘이미 알고 있는 것과의 관련성’을 맺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상(想)이란 ‘지금의 경험’을 ‘과거의 경험’과 관련맺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의 반응(反應)을 하게끔 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다음으로 행온(行蘊)의 행(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잠복되어 있는 업(業)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지각대상에 대한 심리적 반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업(業)의 인과율에 따르면 현재의 심리적 반응이란 항상 ‘과거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실제적 의미에 있어 잠복되어 있는 업(業)과 지각대상에 대한 심리적 반응 이 두 가지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교학 체계나 혹은 수행의 과정에 있어 가장 중시 되는 것이 바로 이 행(行)인데 그 이유는 바로 행(行)이 과거에 지은 업(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의 존재를 결정짓는 현재의 ‘마음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경전상의 맥락에 따라서는 행(行)이 ‘현상적 경험’ 일반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 경우 지각 대상에 대한 일련의 감수 작용(受)과 개념화 작용(想)을 다 함께 행(行)이라 하기도 합니다. 삼법인(三法印)의 하나인 ‘제행무상(諸行無常)’에서의 ‘행(行)’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다섯 번째 식온(識薀)의 식(識)이란 지각된 대상에 대한 ‘판단’ ‘요별’ 작용을 하는 인지적(cognitive) 작용을 의미합니다. 의식(consciousness) 등의 의미로서 ‘인식하는’(能識·cognizing)하는 인식작용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며, 또한 인식된 것(所識, cognized)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컨대 오온의 식(識)은 앞서 언급한 다른 나머지 4온(색온 ·수온 ·상온 ·행온)의 지각활동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 작용입니다.

 

이상으로 지각(知覺)과 판단작용(判斷作用)이라는 인식론(認識論)의 관점에서 오온(五蘊)의 각각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한편 불교 인식론(認識論)의 특징은 지각 대상에 따라 각기 다른 여섯 개의 ‘인식 영역’(āyatana)을 구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눈과 그 대상인 색이 만나서 안식(眼識)을 이루고, 귀와 그 대상인 소리가 만나서 이식(耳識)을 이루고, 코와 그 대상인 냄새가 만나서 비식(鼻식)을 이루고, 혀와 그 대상인 맛이 만나서 설식(舌識)을 이루고,, 피부와 그 대상인 감촉이 만나서 신식 (身識)을 이루는 다섯 가지의 감관식(感觀識)과 마음의 영역인 의식(意識 : 마음과 그 대상인 생각이 만나서 의식/意識을 이룸)을 합쳐 인간의 인식(認識)의 영역(領域)을 6가지의 식(識), 즉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식), 설식(舌識), 신식 (身識), 의식(意識)(識)으로 나누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교에서 이처럼 식(識)을 감관 및 그 대상에 따라 여섯 영역으로 나누는 것은 무아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자아 혹은 경험의 주체라든지 인식 과정에서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자아라든지 혹은 경험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감관(과 그 대상)에 따라 각각 독립적인 영역의 인식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혹은 그 반대로 독립적인 인식 영역을 인정하기 때문에 경험의 배후에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자아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하나의 경험을 예로 들어 오온설에 따른 지각의 과정을 살펴볼 것이며 이 지각의 과정이 수행과 어떻게 결부될 수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stcho@korea.ac.kr

 

[1587호 / 2021년 6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