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잣대를 버린 뒤에 찾아오는 진정한 얻음
모든 사람들은 제각각 나름대로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치관들을 토대로 생활 속에서 '나의 생각'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네 중생들의 삶일 것입이다. 그러나 가만히 한 번 생각을 다그쳐 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만들어지는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이라 규정지은 것들은 진정 나의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이라 규정지은 것들은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온 내 주위 환경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관도 사람들 나름대로의 각기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산물인 것입니다. 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관도 제각각 서로 다른 것입니다. 이 평범한 사실을 깊이 사유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옳다 그르다 하는 '나의 생각' 에 대한 고집 때문에 갈등하게 되고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일이 참 많기도 합니다. 서로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만 있어도 사람들의 분별 망상 번뇌는 훨씬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모습을 대할 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내 생각이나 가치관에 대한 고집을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대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갈등도 싸울 일도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상대방의 '잘못된 모습'이란 사실 절대적이게 잘못된 것으로 정해진 모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잘 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어느 한 쪽으로만 생각이나 가치관을 고정시킨다면 그것은 내 생각이나 가치관에 대한 고집과 집착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직장 상사의 잔소리, 잔심부름에 화부터 나는 마음을 버리고 '내가 상사였더라도 잔소리 하고 잔심부름 시켰을 거다...'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친구들에게 답답하고 얄미운 마음이 있더라도 그 답답하고 얄미운 마음을 표현하기 전에 내 마음을 돌리는 연습을 해 보는건 어떻겠습니까? '내가 저 친구의 입장이었다면...' 하고 말입니다. 언제라도 분노를 일으키기 전에 '저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연습을 해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하면 상대방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옳고 그름이란 없습니다. 내 생각이 옳을 수 있다면 상대방의 생각도 옳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가치관이 옳다'라는 고집은 내가 지금까지 성장해 온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 자신의 잣대를 꽉 움켜쥐고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잣대를 붙잡고 사는 삶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잣대를 놓으라고 하면 큰일 나는 일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단 자신의 모든 잣대를 다 놓아봅시다. 일단 다 버려봅시다. 옳고 그른 것을 가려서 그른 것만 버리는 것이 아니고 옳고 그른 것 전부를 몽땅 버려야 합니다.
무소유(無所有), 무집착(無執着, 그 밝은 정신(精神) 위에 맑고 향기로운 진리(眞理)의 가치가 새록새록 빛나게 될 것입니다. 온갖 분별심(分別心)을 모든 잣대를 모두 버렸을 때 본래 가지고 있던 지혜(智慧)의 등불은 밝게 환히 빛날 것입니다.
- 글쓴이 :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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