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名)과 상(相)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기
내가 만나는 대상에 '이름(名)'을 붙이지 않고 그 대상을 마주할 수는 없을까요? 하늘을 볼 때 그것을 하늘이라거나, 구름을 볼 때 그것을 구름이라거나, 맑은 날을 볼 때 그것을 맑은 날이라거나, 흐린 날을 볼 때 그것을 흐린날이라는 등의 이름(名)을 붙이지 않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를 그냥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을까요?
이름이 붙으면 벌써 이름이 붙은 그것의 진짜 모습이 아닌, 내가 그것을 이름으로 해석하고, 과거에 배운 이름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내가 듣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매미소리'가 들린다고 하지 말고, 그저 들려오는 그 소리를 그저 그냥 들을 뿐! 이렇게 해 보는 것이지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에 대해 이름을 붙이지 말고 보고 듣고 느껴보는 것입니다. 대상에 붙인 이름을 빼면, 모양도 함께 빠져나가기가 쉬워집니다. 내 의식은 특정한 이름(名)과 특정한 모양(相)을 합쳐놓고 그것을 '무엇'이라고 기억하거든요.
그런데 이름을 빼고, 모양도 빼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를 볼 뿐, 들리는 그대로를 들을 뿐입니다. 아니 보이는 그대로 보여질 뿐이고, 들리는 그대로 들려올 뿐이지, 거기에 듣는 나, 보는 나는 없습니다. 그저 순수한 봄, 순수한 들음 그 자체만 그렇게 있을 뿐입니다.
이름(名)과 모양(色) 이것을 불교교리로 '명색(名色)'이라고 합니다. 의식(意識)의 대상이 바로 명색(名色)입니다. 이처럼 의식은 대상에 이름 붙여서 '명(名)'으로 기억하고, 그 이름 붙여진 대상을 특정한 모양(色)과 연결지어 분별(分別)을 합니다. 이처럼 대상을 명색으로 분별을 하지만 그러나 십이연기, 십팔계에서 설했듯이, 의식도 실체가 없어 허망하고, 명색도 실체가 없어 허망합니다. 의식도 명색도 그저 그냥 인연따라 생겨난 것일 뿐, 실체가 있는 무언가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거기에 실체성을 부여하게 되고 거기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름 붙이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허용해 줄 때, 그것이 바로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2020.09.27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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