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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성의 차별을 넘어

장백산-1 2023. 4. 10. 15:14

이원성의 차별을 넘어


생각, 느낌, 감정, 욕망,욕구, 반응을 관찰해 보면 그같은 생각, 느낌, 감정, 욕망, 욕구, 반응 뒤에는 특정한 신념(信念)이 있고,
또한 조금 더 깊이 관찰하면 특정한 그 신념(信念)이 원인이 되어 둘로 나뉜 이분법적인 마음, 즉 차별심(差別心), 분별심(分別心)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생각이나 하나의 느낌 감정 속에도 그 이면을 깊이 관찰하면 관념의 구조물이 거대하고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관념의 그 구조물은 언제나 사람들을 이원성의 나뉨으로 몰고간다.

매 순간의 생각, 느낌, 감정, 욕망, 욕구, 반응 마다 그 이면에 드러난 신념과 이원성의 나뉨을 살펴보라.
바로 이 둘로 나누는 생각이 모든 무명의 씨앗이며 우리들을 중생계의 고통에 가두는 주범이다.
너와 나 둘로 나누는 것이 범부의 특징이고 둘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바라보는 것이 깨달은 자의 방식이다.

그렇기에 범부는 항상 너와 나로 나누어 놓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모든 행위를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아상이요 에고다. 반면에 성인은 너와 나로 나누지 않기에 동체적 견지에서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모든 행위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자. 후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를 향해 다소 건방진 태도를 보인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건방진 태도를 보는 그 순간 나는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는 이 감정과 거기에 반응의 배경에는 '후배나 나이 어린 사람은 선배에게 공손해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신념(信念)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신념은 곧장 사람들을 선배 후배, 높고 낮음 등의 이원성으로 유인한다. 너와 나 둘로 나누는 차별심이 생긴 것이다이것이 바로 우리들 사고와 행동의 기본적인 패턴이다.

이런 이분법적 차별심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 느낌, 감정, 욕망, 욕구, 반응이 일어날 때마다 그 이면에 버티고 있는 신념의 구조물과 그것이 어떻게 이원성의 나뉨으로 몰고 가는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이원성의 차별심을 넘어 둘이 아닌 깨달음으로 향해 가는 명상수행이요 마음공부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