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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전, 아니 44년째 고통" 5·18 성폭력 증언에 모두 울었다

장백산-1 2024. 10. 1. 00:32

"44년 전, 아니 44년째 고통" 5·18 성폭력 증언에 모두 울었다

박수림입력 2024. 9. 30. 20:00수정 2024. 9. 30. 20:15

 

[현장]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첫차 타고 국회 온 피해자들 "모두가 알아야"

 

 

 

 
▲ 5.18 성폭력 피해 증언하는 최경숙씨 5.18 성폭력 피해자 최경숙씨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
언대회 '용기와 응답'에서 증언하며 오열하고 있다.
ⓒ 남소연

 

 

"연행되어 조사받던 중 상의를 올리고 바지를 내려야 했습니다. 너무나 수치스러워 울면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저를 화장실까지 인솔한 병사가 제 입을 막으면서 그곳에서 성폭행했습니다. 사실 또 어딘가에서 지금도 5·18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고요. 이런 분들의 고통, 이제는 국가가 보듬어줘야 할 때입니다." - 5·18 성폭력 피해자 김복희씨 증언 일부

"2018년 TV로 서지현 검사의 미투(MeToo)를 봤습니다. 5·18 때에도 성폭행이 있었는데 (피해자인 제가 사건을 말하지 않으면) 이대로 영원히 묻혀버릴 것 같았습니다. 이후 여러 언론과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인터뷰를했습니다.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제가 쏘아 올린 공은 묻히지 않았고, 제가 이 자리에 서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니 저 용기 있게 애썼다고 한 번만 안아주세요." - 5·18 성폭력 피해자 김선옥씨 증언 일부

"운전을 하고 가는 저를 멈춰 세우고는 '뒤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뒷좌석으로 가니 군인 아저씨들이 밖에 세 사람, 제 옆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군인 둘이 뒷좌석에서 저한테 (차례로) 그런 행위(성폭행)를 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또 제가 그때 임신 3개월이었거든요. 병원에 가니 유산됐다고..." - 5·18 성폭력 피해자 최경숙씨 증언 일부

"장갑차에서 군인들이 뛰어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골목으로 도망을 갔는데 막다른 길이었습니다. 군인 5명 중 2명이 저를 벽으로 끌고 가서 양쪽 어깨를 잡았고, 3명이 가슴과 엉덩이, 배, 허리 등을 추행했습니다. 이후 대검으로 제 양쪽 어깨를 찌르고 가버렸습니다. 5·18 역사 왜곡, 성폭력 피해자 비난 등 2차 피해는 현재까지 지속 중입니다. 5·18 성폭력은 '피해자만 아는 사실'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 되어야 하기에 큰맘 먹고 증언대회에 나왔습니다." - 5·18 성폭력 피해자 최미자씨 증언 일부
 

같은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국회에 모인 여성들. 이들은 "광주, 전주, 목포 등 지역에서 새벽 첫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국민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적은 종이를 여러 번 읽어보기도 하고, "너무 떨린다"고 말하는 옆 사람의 어깨를 서로서로 쓰다듬기도 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를 앞둔 30일 오전 국회에서의 모습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대강당을 찾아 처음으로 집단 증언에 나섰다. 국가를 향해서는 '책임 있는 조치'를, 국회를 향해서는 '피해 회복을 위한 입법'을 요구했다.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채 증언에 나선 피해자들은 당시 겪은 피해를 소상히 설명하면서 "44년 전 고통이 아니라 44년째 계속되는 고통"이라고 강조했다. 증언을 듣기 위해 모인 260여 명의 참석자들은 눈물과 박수로 답했다.

 

 
 
"진상규명에도 아무런 변화 없어"
 
 
 
▲ 5.18 성폭력 피해 증언한 최미자씨 5.18 성폭력 피해자 최미자씨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
회 '용기와 응답'에서 증언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남소연
 
 
이날 증언대회는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가 주관했고, 국회의원 29명이 공동주최했다. 열매 간사를 맡는 윤경회 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조사4과 팀장이 행사의 시작을 알리자 참석자들은 묵념했다.
 

윤 간사는 "5·18 성폭력은 (정부 차원에서 조사한) 최초의 국가 폭력 인정 사건이고 오늘 이 자리는 그다음을 준비하기 위한 자리"라며 "조사위는 40여 년 전 피해를 본 분들의 치유와 명예 회복, 그리고 배·보상을 위해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권고사항을 내놓았고, 이를 종합보고서에 담아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보고한 뒤) 3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 국회에 역할을 요구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엔 민형배·박균택·박지원·서미화·서영교·안도걸·이기헌·이재정·전진숙·정준호·정진욱·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은정·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참석했다. 이들이 무대에 오른 뒤 피해자 13명이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무대로 향했다. 피해자들은 스카프를, 국회의원들은 장미 꽃다발을 서로에게 선물했다.

 

추미애 의원은 "피해자들에게는 성폭력 피해를 다시 거론하는 것이 트라우마지만 우리가 용기를 내어야 앞으로의 성폭력 범죄를 막을 수 있다. 여러분의 용기가 다음 세대의 희망"이라며 "진상규명과 함께 제대로 된 배·보상을 위해 국회가 제 할 일을 하겠다. 오늘 증언대회는 이를 약속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광주 지역 의원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더 일찍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국가가 얼마나 잔인한 폭력을 자행했는지 알고 대처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자리를 마련해 정말 죄송하다"면서 "현재 광주 지역 국회의원들과 함께 5.18유공자법에 성폭력 피해자를 포함하도록 하는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작은 위로라도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스카프 · 장미꽃 주고 받은 피해자와 국회의원
 
 
 
▲ 응원 속
입장하는 피해자 김복희씨 5.18 성폭력 피해자 김복희씨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 입장하며 참석자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 남소연
 
이날 증언대회는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한 교수는 "피해자들이 고통과 트라우마에 그치지 않고 이를 증언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또 그 용기에 우리가 응답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무대에 놓인 의자에 열매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복희씨와 최미자·김선옥·최경숙씨가 나란히 앉았다. 김복희씨는 18세였던 1980년 5월 27일 도청에서 연행된 이후 상무대에서 수사관에게 당한 성고문과 화장실에서 군인에게 당한 성폭행, 광산경찰서에서 당한 성적 모욕과 학대를 증언했다.

 

김씨는 "그해 5월 22일 교제를 하던 남자 친구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이후 정신이 반 정도 나가 전남도청으로 향했다"라며 "(5·18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게 머리를 맞으며 끌려 나왔고 '빨갱이' 소리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군홧발과 곤봉으로 맞으면서 상무대로 연행됐는데 조사를 받는 중 상의를 올리고 바지를 내려야 했다"며 "너무나 수치스러워 울면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저를 화장실까지 인솔한 병사가 제 입을 막으면서 그곳에서 성폭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 지금도 마음이 몹시 아프고 (피해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너무나 두렵지만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며 "또 어딘가에서 지금도 5·18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다. 이런 분들의 고통을 이제는 국가가 보듬어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5.18 성
폭력 피해 증언에 '눈물'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남소연
 
대학생이었던 김선옥씨는 5·18 당시 전남도청 학생수습대책위원회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80년 7월 3일 교생실습 도중 연행돼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증언했다. 그는 "교장실로 불려 가 문을 여는 순간 건장한 남자 3명이 앉아 있었고 창밖에 있던 까만 세단을 타고 계엄사령부 수사본부가 있는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면서 "얼마나 맞았는지 이마에서 피가 흘렀고 3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이어 "화장실을 간다고 하면 젊은 군인이 저에게 화장실 문을 연 채로 볼일을 보게 했고 총을 겨누기도 했다"며 "또 조사가 끝나갈 무렵엔 나를 수사하던 수사관이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을 한 그릇 사준 뒤 인근 여관으로 끌고 가 요 위에 눕히고 성폭행했다"며 울먹었다.

 

그러면서 "2018년 TV에서 서지현 검사의 미투(Me Too)를 보고 '(내가 가만히 있으면) 5·18 때의 성폭행이 이대로 영원히 묻혀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했지만 제가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사람들의 반응이) 공포로 다가왔다"며 "2001년 유방암 이후 지난해에는 난소암이 찾아왔다. 울고 통곡했다"라고 털어놨다. 더해 "제게 조금이라도 시간이 남아 있다면 제가 쏘아 올린 5·18 성폭력 사건의 열매를 보고 싶다"라며 "그러니 저 용기 있게 애썼다고 한 번만 안아달라"고 호소했다.

 

 

"2차피해 지속 중, 아픔 덜어달라"
 
 
 
▲ 5.18 성폭력 피해 증언하는 최경숙씨 5.18 성폭력 피해자 최경숙씨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서 증언하며 오열하고 있다.
ⓒ 남소연
 
 
당시 27살이었던 최경숙씨는 5월 19일(또는 20일)에 전남여고 후문 인근에서 겪은 성폭행 피해를 증언했다. 최씨는 "저는 당시 가진 게 운전면허뿐이라 차량 운행 일을 했다"면서 "시댁에 맡겨둔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운전을 하고 가는 저를 계엄군이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저에게 '뒤로 가라'고 해 뒷좌석으로 갔다"고 떠올렸다.
 
이어 "군인 아저씨들이 차량 밖에 세 사람, 제 옆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군인 둘이 뒷좌석에서 저한테 (차례로) 그런 행위(성폭행)를 했다"며 "너무 힘들었다. 또 제가 그때 임신 3개월이었는데 병원에 가니 유산됐다고 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당시 그 군인에게서 나던 술 냄새, 입냄새, 땀 냄새가 (기억이 나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토를 한다"라며 "밖에서 (지나가는) 군인들 옷만 봐도 그 계엄군이 생각나고 너무 힘이 들어 쌍둥이 아들을 의경에 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 다리에 남은 상처 보여주는 최미자씨 5.18 성폭력 피해자 최미자씨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서 증언 도중 다리에 남은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 남소연
당시 18세였던 최미자씨는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으로부터 겪은 강제추행과 구타, 대검에 의한 자상 피해를 설명했다. 그는 "장갑차에서 군인들이 뛰어내리고 있어 남광주시장 쪽으로 도망갔다. 대우병원과 여인숙 사이로 뛰어갔는데 막다른 골목이 나왔고 (그곳에 고립된) 한 아저씨와 저에게 군인들이 다가와 군홧발과 총으로 때렸다"며 "또 군인 5명 중 2명이 저를 벽으로 끌고 가 양쪽 어깨를 잡았고, 3명이 가슴과 엉덩이, 배, 허리 등을 추행했다. 이후 대검으로 제 양쪽 어깨를 찌르고 가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18 역사 왜곡, 성폭력 피해자 비난 등 2차 피해는 현재까지 지속 중"이라며 "5·18 성폭력은 '피해자만 아는 사실'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 되어야 하기에 큰맘 먹고 증언대회에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날 무대에 올라 증언하지는 않았지만 증언서를 준비해 온 피해자 가족은 "국가가 국민을 짓밟고 성폭행까지 저지르는 비정상적인 행위, 비극적 피해를 증언하고자 우리는 국회에 모였다"며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원분들께 알리고 외친다. 피해자의 남은 삶은 어루만지는 것이 참된 역할이고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배·보상을 통한 아픔을 덜어주는 것이 본질"이라고 전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객석에선 울음이 터져 나왔다. 무대에 오르진 않았지만 현장에 참석했던 또 다른 피해자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손수건과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던 참석자들은 증언이 끝나자 긴 박수갈채를 보냈다.

 

 

서지현 "44년 버틴 용기, 국가 응답하라"
 
 
 
▲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참석한 서지현 서지현 전 디지털성범죄대응TF 팀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서 증언을 마친 피해자들을 껴안고 있다.
ⓒ 남소연
 
 
열매의 법률 지원을 맡은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오늘 증언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입법을 통해 해결해달라"고 요청했다. 하 변호사는 "그간의 과거사 사건을 보면 피해자들이 소송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일일이 해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라고 물으며 "이를 국회의원 여러분이 입법적으로 해결해 주면 좋겠다. 증언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이들의 피해를 온전히 위자(慰藉)해야 한다. 5·18 보상법을 개정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이 증언의 동력으로 언급한 서지현 전 검사는 "일본군 위안부 성폭력, 5·18 성폭력, 그리고 지금의 딥페이크 성폭력 등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는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 언제나 계속되어 왔다"며 "국가의 역할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조처를 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고, 재발 방지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너무나 오랫동안 제대로 된 국가의 역할을 하지 않은 대한민국에 요청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서로의 용기였다"며 "이제 국가가 우리의 용기가 되어달라. 44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내고 이 자리에 선 피해자들의 용기에 응답하라"고 강조했다.

증언대회를 마친 후 피해자들과 참석자들은 모두 함께 무대에 올라 "나는 너다, 국가는 응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이들은 한참 동안 서로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참석자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 참석자들과 함께 "나는 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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