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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중도는 곧 연기

장백산-1 2025. 2. 12. 22:23

중도는 곧 연기

 

“세존이시여, 바른 견해(正見)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바른 견해를 펼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세간에는 두 가지 의지하는 것이 있으니 있음(有)과 없음(無)이다. 무언가에 집착하면 신경 쓰이고 그럼으로 있음과 없음에 의지하게 된다. 집착이 없으면 경계에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다. 괴로움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내버려 두고, 괴로움이 멸하면 멸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 괴로움의 생멸에 대해 의심하거나 미혹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괴로움의 생멸을 스스로 알게 되니 이를 바른 견해 (正見) 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생(生)을 올바로 알면 세상이 없다는 사람은 있을 수 없고, 멸(滅)을 바로 알면 생이 있다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치우침을 여읜 중도(中道)다. 중도란 바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곧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行)이 있고… 나아가 괴로움의 큰 무더기가 모이며, 무명이 멸하기에 행이 멸하고... 나아가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는 것이다.”

 

✔ ‘나’라는 존재는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이 세상과 우주의 삼라만상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바른 견해로 본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있다’거나, ‘없다’고 할 수 없다. ‘있다’고 하면 있음에 의지하고, 집착하게 되고, ‘없다’고 하면 없음에 의지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결정적으로 있다거나 없다라고 보지 않고 중도적으로 본다.

 

중도적으로 본다는 것은 ‘있다’거나, ‘없다’라고 결정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으로 보는 것이다.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가합(因緣假合)으로 인해 있다는 것이다. 저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에 의해 존재하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도 멸한다’는 연기법에 의해 소멸된다. 그러니 인연 따라 모인 것을 인연가합 (因緣假合) 이라고 해서 가짜로 합쳐졌을 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인연 따라 모인 것은 실체가 아니다. 나와 세상은 독자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있으니 세상이 있고, 세상이 있으니 내가 있을 뿐, 나도 세상도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세상은 다만 무아(無我)이며 비실체로써 인연 따라 잠시 존재하는 것같은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인연가합으로는 ‘있다’, 그러나 실체로써는 ‘없다’ 그러니 있다고 해도 맞지 않고 없다고 해도 맞지 않아, 중도로써 설할 뿐이다. 연기는 곧 중도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