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頓悟)와 점수(漸修) - 육조혜능 육조단경
법은 본래 하나의 종지(宗旨)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남쪽과 북쪽이 있다. 법은 한 종류 밖에 없지만, 법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빠르고 느림이 있다.
무엇을 돈(頓)이라 하고 무엇을 점(漸)이라고 하는가? 법에는 돈이나 점이 없지만, 사람의 근기에는 영특함 (頓) 과 우둔함 (漸) 이 있기에 돈점이라고 한다.
✔ 법은 이미 드러나 있다. 완성되어 있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법을 다만 중생들은 자신의 분별심으로 인해 확인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 법은 수행이나 특정한 방법을 통해 완성시켜 나가는 공부가 아니다.
만약 깨달음이 본래부터 나에게 없기 때문에 만들어 내야 한다면, 그것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법이니 생사법(生死法), 생멸법(生滅法)일 뿐이다. 이 법은 불생불멸법(不生不滅法)이다.
이처럼 본래부터 있던 것이라면 점차적으로 만들어 갈 필요가 없다. 모르고 있다가 그저 문득 확인될 뿐이다. 문득 확인되는 것은 점차가 아니라 몰록이다. 점교(漸敎)가 아니라 돈교(頓敎)이며, 점차가 아니라 단박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니, 어느 한 쪽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고집할 것은 없다. 깨닫고 나면 단박이니, 점차니 하는 말들이 전혀 관심사항이 아닐 것이다. 그것 또한 하나의 분별 아닌가?
법에는 본래 하나의 근본이 있을 뿐, 단박이니 점차니 하여 둘로 나뉠 것이 없다. 다만 사람의 근기에 영리함과 둔함이 있으니, 돈점이라 했을 뿐이다.
견성에 이르기 까지도 단박과 점차의 방편을 말할 수 있고, 견성 이후의 보임 또한 단박과 점차를 말할 수 있다.
견성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발심을 하고 꾸준히 이 법에 관심을 기울이며, 법문을 들으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목말라 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지만 도저히 알 수는 없다. 오로지 모르고 모르는 ‘모를 뿐’의 긴긴 터널 같은 시간을 오직 이 법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버텨내야 한다.
바로 이 시간이 분별심의 습관을 조금씩 버려가는 시간이며, 이러한 기간을 방편으로 점차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어디까지나 중생의 입장에서 본 방편일 뿐, 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시간은 여전히 법을 모르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법이 드러나게 되면, 그것은 몰록이다. 문득 확인된다. 그러니 점차라고는 하지만, 법이 드러나는 것은 몰록이고 단박이다. 법의 입장에서는 문득 확인되니 돈오(頓悟)이고, 중생의 입장에서는 그 오랜 시간을 꽉 막힌 채 있어야 하니 그 시간을 점차(漸次)라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견성 이후의 보임도 마찬가지다. 견성이라는 것은 곧 자기 성품을 확인한 것이기에, 견성이 곧 성불이다. 법의 입장에서는 견성하는 순간 공부는 끝난다. 즉, 더 이상 확인해야 할 또 다른 ‘더 높은 법’ 같은 것은 없다.
그런 면에서는 돈오이고, 돈교다. 그러나 중생들은 견성을 했다고 할지라도, 오랜 습(習) 때문에 자기의 본성을 확인하고서도 본성에 익숙하지 못하고 오히려 중생의 분별심에 더욱 익숙하다.
그래서 훗날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스님께서도 ‘견성 이후의 공부는 낯선 곳에 익숙해지고, 익숙한 곳에는 낯설어지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낯선 곳은 자기 성품이며 무분별이고, 익숙한 곳은 중생의 성품인 분별이다. 자기 성품에 점차적으로 익숙해지고 뿌리내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시기를 방편으로 말하자면, 점차요, 점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일 뿐, 진실의 자리는 점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견성의 순간 이미 문득 드러났고 그것으로 모든 확인은 끝난다. 그 이후의 공부는 자기 성품을 갈고 닦는 공부가 아니라, 중생의 습기를 조복 받는 공부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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