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眞理) 9

바로 그곳에 마음(진리, 당처, 낙처)가 있다.

바로 그곳에 마음(진리, 당처, 낙처)가 있다. 달을 보라고, 즉 진리(眞理)를 보라고 달(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 즉 모든 말(언어)와 모든 글(모든 경전)은 어디까지나 방편(方便)일 뿐이다. 방편(方便)은 진리(眞理)가 아니다. 그래서 방편일 뿐일 말과 글에만 매달리면 진리(달)을 보지 못한다. 말의 길과 글의 길이 끊어진 그곳에 마음, 즉 진리(眞理), 당처(當處), 낙처(落處)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달(眞理))를 가리키는 손가락(방편)을 볼 것이 아니라 손가락(방편)이 가리는 그곳, 즉 말의 길과 글의 길이 끊어진 그곳, 당처(當處), 낙처(落處), 진리(眞理),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때...

◈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때...◈ - - 우룡스님 불가(佛家)의 가르침(敎), 즉 불교(佛敎)는 절 법당에 모셔진 불상으로서의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 스스로가 본래 이미 완벽한 부처님임을 확인하는 가르침입니다. 만약 우리들 스스로가 부처님임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가슴에 맺혀있는 응어리가 떨어져나가야 합니다. 기슴에 맺혀있는 응어리는 두고 두고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때까지 응어리를 갖고 가서 내생까지도 그릇되게 만들어버립니다. 죽음(死)과 내생(來生)! 불교에서도 가장 문제로 삼는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 우리에게는 죽음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다음의 ..

말은 적을수록 좋다.

말은 적을수록 좋다.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 목적은 삶의 태도를 개선하고 그릇된 생활습관을 고쳐 청정한 본래의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신앙의 목적이 이와같은데도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렵다.’는 올바른 가르침을 만나고서도 자기개조가 없다면 그는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명색이 불자라고 말하면서 불자 아닌 사람보다도 훨씬 옹졸하게 처신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목격 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남의 일에 그토록 참견하기를 좋아하는가? 소인배들의 속성인 시기와 질투는 열등감의 소산임을 심리학을 들출 것도 없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자기는 남들 처럼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그런 처지에 놓여있지 못하니까 배 아파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적인 결점은 너나없이 누구한테나 있다. 청정한 생활..

진리(眞理), 도(道), 부처(佛), 하나님, 깨달음,

진리(眞理), 도(道), 부처(佛), 하나님, 깨달음, 지도무난 유혐간택 (至道無難 唯嫌揀擇), 신심명(信心銘)의 첫 구절이다. 지극한 도(道)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직 '가려서 간택하는'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다만 매 순간 있는 지금 여기에 그대로 존재(현전, 現前)하기만 하면 된다. 기쁠 땐 기뻐하고, 슬플 땐 슬퍼하며, 우울할 땐 우울해하고, 무료할 땐 무료해하며, 즐거울 땐 즐거워하고, 배고프면 밥 찾아 먹고, 졸리우면 잠자고, 똥 마려우면 똥 누고, 오줌 마려우면 오줌 누며, 피곤하면 드러눕고,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 진리, 깨달음, 도(道)다. 불법, 진리, 깨달음, 도(道)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현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양나라 때의 승려인 부대사(傅大士)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