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국 선언 ] 6월 30일
함께 밤을 지새운 우리에게는 길고, 험난한 밤이었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6월이 될 듯합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여리디 여린 여학생이 또다시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둘러싸여 무참히 짓밟히고, 매서운 곤봉질로 마구잡이로 구타당하고, 하염없이 피 흘리는 광경을 가슴을 움켜잡고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비록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였지만, 현행법률을 위반하는 선언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것이 법과 양심 상호 간에, 적대적이고 모순적인 충돌이 일어나는 2008년 6월의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이제껏 힘써왔던 촛불 시위, 바로 그다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라 믿습니다. 법은 일시적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을 이미 우리가 알았기에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음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제껏 스스로를 온순하다고 여기며, 비교적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희망해왔던 평범한 청년입니다. 그러나 저는 국민 건강권과 검역권 그리고 국민의견 수렴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요구하던 국민적 염원이 철저히 짓밟혀진 오늘,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임을 확인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이유를 기억하십니까? 명확한 이유를 기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은 단순히 <측근비리>라는 불확실하고 간접적인 혐의와 <공무원 선거 중립 위반> 혐의가 그 이유였습니다. 그것도 어떠한 제도적이나 권위적인 실력행사로서의 중립 위반이 아닌 단순한 "언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 "언어" 때문에 그들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 들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봅니다.
저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말을 기억합니다.
"저는 조선일보 사장님 회장님처럼 그렇게 고상한 말만 쓰고 살지 않는지 모르지만, 그분들처럼 천황폐하를 모시고 일제에 아부하고, 군사독재 정권에 결탁해서 알랑거리고, 특혜받아 가지고 뒷돈 챙겨서 부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회주의적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 땅에 가난하고 힘없고 정직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말을 고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시대 기회주의와 편의주의에 절은 그들의 사고방식은 결코 고칠 수 없습니다."
이는 근현대사를 조금만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들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조선총독부산하_친일세력 -> 이승만_자유당 -> 박정희_민주공화당 -> 전두환_민주정의당 -> 노태우_민주자유당 -> 김영삼_신한국당 -> 이회창, 박근혜, 이명박_한나라당 >
그들은 당명만을 끊임없이 바꿔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길고 긴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자락에 피묻은 권력의 행보를 써왔습니다. 멀지 않았던 그들의 시대에는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는 모든 의로운 젊은이들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극단적 반공사상에 색깔공세를 당하며, 누명을 쓰고 철저하게 탄압받아야만 했습니다. 오랜 세월 대한민국의 정의는 소수 강권세력의 권력을 의미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모순, 사회적 갈등, 정치적 비리, 문화적 타락은 지난날의 거대한 폭력적 압제에서 배태하고 발전하여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들입니다.
그들은 냉전과 분단의 유산인 극단적 매카시즘, 개발 독재가 초래한 왜곡된 금권, 부정선거가 시발점인 지역주의, 장기독재의 잔재인 4부 기관의 정치적 독립성 결여를 철저히 활용하여 시시때때로 국민을 탄압하고, 분열을 조장하며 달콤한 국민의 피에 취해 긴 긴 세월을 연명해 왔습니다. 수구 언론이 이들에 편승하여 역사의 매 순간순간마다 독사와 같이 얼마나 피묻은 국민의 순결한 속살을 파먹어 왔었는지를 이제 우리는 또 한 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50년간 쏟아낸 수많은 국민의 피와 희생으로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어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보수"로 칭하기를 요구하는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와 경제 문화적 창달을 위해 첫걸음을 내딛으려던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에 그들은 비록 정권에서 잠시 자리를 비켰어도 권력의 심층부 - 입법, 사법, 행정, 언론, 기업 곳곳에 깊이 뿌리 내린 모든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정권을 할퀴어 내고, 흠집을 내고, 뒤흔들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언론개혁법을 통해 개혁하려 했던 개혁대상들은 자신을 개혁하려 했던 집권세력을 집요하게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언사와 논조에서 간명히 비춰지는 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이상의 증오, 살기마저 느껴지는 분노는 그가 우리 역사의 잊고 싶은 역린을 끊임없이 들추면서 괴롭혀 온 데 기인했던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여러 가지 제도적 수단과 언어를 통하여 집권 5년 동안 보기 싫은 진실, 이른바 '불편한 진실'을 끊임없이 들추어 왔습니다. 그것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친일 청산과 군사쿠데타 문제이고, 그것에 기생하고 있는 대한민국 지배계층의 정통성 문제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의식의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쉬쉬하는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집권으로 그 카르텔에 금이 가면서 대한민국의 '앙시앵 레짐'의 기원과 본질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보수세력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감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노무현은 고립됐고, 여당조차도 더 이상 아군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어코 노무현을 주저앉힙니다.
2004년, 탄핵.
그러나 국민은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그 기적은 누군가의 손에 들려진 하나의 촛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처투성이 절름발이가 된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끌어안은 채로 임기를 마치고, 결국에는 탈법과 편법을 아우르는 모든 수단을 통한 합법적이고 형식적인 절차로써 달성된 권력 찬탈과도 같은 - 권력 이양을 하고 물러서게 됩니다.
노무현 그는 실제로 실패한 대통령일지 모릅니다. 실질적 국민주권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회복과 경제 성장, 부패 청산을 향한 국민적 염원을 그는 모두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의 원칙 있는 경제정책을 내세웠으며 기만적이고, 인위적인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부패의 청산을 위해 꺼내 든 칼은 비록 자기 자신의 다리에 박혔지만 그는 참여형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목표를 버리지 않고, 기득권과 권위주의를 버림으로써 국민과의 몇 가지 약속만은 지켜내었습니다.
각 분야의 특권은 줄어들었고,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산되었고, 대통령의 권위가 타파되어지는 순간에 약속대로 권언유착을 포기함으로써 국민에게 온갖 비난과 수모를 받는 바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권위주의 청산과 금권정치 퇴출, 권력기관의 제자리 찾기라는 조그만 성과를 이루고 내려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이 대한민국에서 이룬 것은 아직 설익은 열매를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후대의 다른 국민이 알찬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거름을 주고, 가꾸고 보살피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한민족의 칠흑 같고 비참했던 암흑기에 만주 벌판의 혹한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며 흘린 피의 씨앗이 있었음을 상기합니다. 그 씨앗은 피의 화요일 4.19, 유신독재의 마수, 5.18 민주화 운동의 참혹했던 학살, 6월 항쟁, IMF, 탄핵, 그리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회한을 끌어안고 그 흘린 피를 양분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008년 6월의 오늘, 다시 그들을 향해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당당하게 정의를 말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외칠 수 있습니다. 고환율 정책으로 고물가 경제 기조를 유지하여 국민의 등골로 배를 채우고, 소수집단 편향의 온갖 부정한 정책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방치하고, 제2의 국가부도를 개의치않으며 끊임없이 자신들만의 권력, 자신들만의 사익을 추구하는 그들… 기어코 우리 국민의 건강권, 생명권, 주권마저도 팔아넘기려는 그들의 정체성에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지금, 대한민국은 이제 고결한 피로 성숙되어진 민주주의의 열매를 수확할 계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룩한 단단한 토대 위에서 열린 사회, 열린 정보, 고도의 전문성과 법률 지식, 소비자 권리를 가진 개개인의 국민은 우리의 과일이 탐스럽게 농익은 것을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약속의 과일은 아무런 대가가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울의 봄과 서울역 회군이 우리에게 안겨주었던 인고의 세월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역사의 굴곡된, 한탄의 굴레를 오늘 이 자리에서 벗어낼 것인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씌워줄 것인지를 다시 한번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에 우리에게 위협이 없지 않습니다. 부정한 시대에는 늘 그랬듯이 누군가는 감옥에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류의 진보는 필연의 수레바퀴가 굴러 가다 보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진보는 기꺼이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귀중한 것을 아직 찾지 못한 국민은 대단히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정신은 무기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고 위대한 영혼에 의해서 정복됩니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서 일어서길 거부한 그 순간에 죽게 됩니다. 진리를 위해 일어서길 거부한 순간에 죽게 됩니다. 공정을 위해 일어서길 거부한 순간에 죽는 것입니다.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이제 마지막 걸음입니다.
우리가 분별력 없고, 비정한 세력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애국심, 책임감, 도덕적 신념과 같은 전통적 미덕을 바탕으로 직접행동을 펼침으로써 개개인은 물론, 모두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간명한 대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안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입니다. 우리의 대안은 민주주의가 외연적이고 형식적인 절차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직접 이 사회-법제도의 형성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형성 틀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며 불만을 용인할 수 있는 실질적 의미로서의 사회계약론적 국민주권,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저는 여태껏 이곳 아고라와 청계 광장, 시청 앞 광장, 광화문,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보여주신 국민들의 현명함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살아야 나라도 살 수 있습니다. 이토록 현명한 국민들의 목소리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온전히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 위대한 국가로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냅시다.
어르신들께서 물대포에 혼절하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같은 젊은이들의 곤봉과 방패에 쓰러지고,
여린 여학생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오늘,
선량한 국민들이 수 없이 구급차에 실려가고,
구타당하고, 다치고, 연행되고, 구속된 오늘,
연행되었던 한 시민의 손에 꼭 쥐어졌던 태극기가
더러운 땅바닥에 오물과 같이 굴러다니던 오늘,
수 없는 국민의 비명소리와 눈물이 수도 서울의 중심에 쏟아져 내린 오늘,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또다시 슬픔과 노여움을 끌어안고
기꺼이 그들에 맞서 일어서려 합니다.
우리 국민은 도덕적으로 이미 파산한 이들에 대항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나려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격언을 기억합니다.
우리 국민이 희망을 가지고 현실적인 변화를 쟁취해 낼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우리 국민의 목소리가 생명을 가지고 온 국토에 울려 퍼질 것을 선언합니다.
2008년 6월 30일
시청 앞 광장시국 선언
천주교정의사회구현단과 동참 할 수 있습니다.
아 대한민국 우리 국민은
인고의 세월 수많은 피와
고결한 희생으로 맺은
타는 목마름의 그 이름
농익은 민주주의의 과실을
이제 수확하려 합니다.
※ 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146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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