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과 신화 : 지역주의의 이용과 청산
(서프라이즈 / 자전과공전 / 2008-9-27)
미신은 비과학적이고 종교적으로 망령되다고 판단되는 신앙. 또는 그런 신앙을 가지는 것 등을 말하고, 신화는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들로서 우주의 기원, 신이나 영웅의 행적, 민족의 태고 때의 역사나 설화 등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에 의해서 미신은 추방되어야 할 미개문명의 소산으로 간주되나, 신화는 추앙받아야 할 대상이나 업적 등을 일컬을 때 흔히 사용되곤 한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나 개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 보다 더 정확하게는 정치적 권력이 이동함에 따라 신성불가침이었던 신화가 미신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천대받던 미신이 많은 사람들이 따라야 할 신화로 추앙받기도 한다.
미신과 신화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어서 비과학적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므로 미신과 신화를 구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신과 신화를 구분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미신 속에는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음흉한 계략이 숨어있지만 신화 속에는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미신 하나 : 정치는 지역과 조직이다.
지난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정동영은 노무현대통령을 열린우리당에서 내�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소위 친노세력의 힘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는, 한나라당에서 건너온 손학규와 손잡고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였다. 그는 경선 과정 중 조직을 활용한 불법선거운동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박스동영”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대선후보가 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그 조직은 본 게임인 대선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조직이 경선 과정 중에서 행하였던 짓거리에 실망하여 깨끗한 정치를 바라는 지지세력들이 등을 돌림으로써 역대 최대표차 낙선이라는 오명을 그에게 짊어지게 하였다.
한편 전북 출신인 정동영으로서는 전남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보고 대통합민주신당 내의 모든 세력이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 이미 사망 선고가 내려진 민주당과 합당을 한다. 손학규와 손을 잡고 문국현과의 후보 단일화에 목을 메는 등 성향이 다른 집단과의 통합에 올인하여 영남을 고립시키려고 하였다.
그의 그러한 행태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전략에는 적합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동영이라는 정치인이 어떤 철학과 전망을 갖고 있는 인물인지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이다. 지금은 그가 정체성이 있었는지 조차 의심받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무엇을 어떻게 했을까? 지금도 무척 궁금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그의 명쾌한 말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는 말과 행동으로 노무현대통령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그 자신의 원칙과 철학마저도 부정함으로써 알맹이 없는 껍데기 신세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지역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정동영 또한 지역주의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현존하는 지역주의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동영은 지역주의를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대선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지역주의를 이용하면 지금의 한나라당처럼 집권에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집권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집권 후에는 국가의 안위보다는 측근이나 자신을 지지해준 지역을 먼저 챙기기 위해 국가권력의 사용이 왜곡됨으로써 정치에서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작금의 정치 현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신화 하나 : 한국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역구도를 깨야 한다.
지금은 아무도 한국정치의 폐해가 지역주의에 있으므로 지역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진심으로 말하지 않는다. 모두들 지역주의를 잘 이용하는 것만이 정치세계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지역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면 모든 정치인들로부터 몰매를 맞는다. 최근에 노무현전대통령의 지역정당에 대한 발언에 대해서 현정치인들이 보인 반응에서 우리는 그러한 미신이 얼마나 견고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오로지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정치생명을 건 유일한 정치인이 있었으니 그가 노무현전대통령이다.
그는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서 민주당 간판으로 그 당시 영남세력의 중심이었던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두 번, 부산시장에 한 번 출마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는 지역주의의 최대의 정치적 희생자였다. 그가 지역주의의 무지막지한 힘에 그냥 주저앉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지역주의라는 정치적 신화가 미신이라는 것을 체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노무현전대통령이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 보여준 정치적 희생은 지난 16대 대선(2002년)과 그 후에 치러진 17대 총선(2004년)에서 호남인들이 보여준 전폭적인 지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로써 호남 사람들은 지역구도의 신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호남 시민들이 보여준 그러한 열망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서 지역구도의 신화가 다시 부활하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주의에 맞서기 위해서 대구에서 출마한 유시민의 실패를 보면 영남지역에서의 지역주의 신화가 얼마나 견고함을 뼈져리게 확인할 수 있다. 지역주의 신화가 우리나라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날이 올 수나 있을 런지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노무현전대통령으로 인해 우리나라 정치에 있어서 지역주의가 신화가 아니라 단지 미신일 뿐이라는 것을 체험하였다.
잘못 알려진 신화가 미신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 우리나라는 또 한 번의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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