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들통난 영남 남인의 흉계--과대평가된 광해군과 정조--그리고 박정희

장백산-1 2009. 2. 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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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통난 영남남인의 흉계
번호 18362  글쓴이 김동렬펌  조회 1051  누리 142 (204/62)  등록일 2009-2-12 16:54 대문 11 추천


들통난 영남 남인의 흉계  
 - 과대평가된 광해군과 정조

(구조론닷컴 / 김동렬 / 2009-02-11)


정조의 어찰이 공개되면서 일찍이 필자가 비판한 바 있는 퇴계의 무리들, 역사 날조를 서슴지 않았던 영남 남인의 후손 이인화가 창피를 당하고 있다. 이인화에 이문열, 다 똑같은 뿌리와 정서에 수구 본류다.


그들이 정조독살설을 퍼뜨린 거다. 왜? 정말 모르겠는가? 뻔한 거 아닌가. 척 보면 아는 거지, 구태여 말이 필요한가?(퇴계를 비판한 필자의 이전 글(118. 퇴계를 묻어야 나라가 산다 119. 왜 퇴계가 문제인가? 123. 영남정서, 무엇이 문제인가?)과 연관시켜 읽어야 의미가 전달될 것.)


조선왕조의 역대 군주 중에서 근래에 과대평가 된 인물이 광해군과 정조임금이다. 둘 다 박정희의 세뇌공작과 관련이 있다. 박정희가 친일하면서 지어낸 변절논리가 광해군의 실용주의다. 속임수다.


조선왕조의 정신은 선비 정치에 공론정치다. 광해군의 비밀정치는 선비 정치의 근본을 허물어뜨린 것. 조선왕조의 그 어떤 선비도 광해군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근래에 엉뚱한 해석이 나오는가?


명백히 저의가 있다. 영남우월주의에 중독된 일부 남인세력의 의도적인 술책이다. 왜 거기에 놀아나는가? 그렇게도 모르겠는가? 박정희의 유신(?)과 정조의 실학(?)이 무관하다고 믿는가?


‘유신’이 뭐지? 필자가 열 살일 때 유신이 나왔을 거다. 그땐 정말 유신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금도 모르겠다. 이름이 유신일 뿐 실체가 없다. 실학도 마찬가지다. 그런 학문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무릇 학(學)자를 붙이려면 그에 상당하는 뭔가 실체가 있어야 한다. 실학이란 하나의 경향이나 유행이었을지언정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학풍은 몰라도 학문은 아니다. 이 말은 김용옥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학=유신’.. 박정희 세뇌공작에 놀아난 거다. 물론 실학의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용학자들의 교묘한 뻥튀기가 없었다고 말할 자 누구인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역사의 평가는 그 시대의 시대정신에 맞추어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인가’ 하는 논의들이 있다. 평가기준이 뭔데? 영삼은 본질에서 실패다. 왜?


영삼은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주장해서 뜬 인물이다. 그가 지금 박정희 본류와 한패가 되었다. 영삼은 오직 박정희의 반대편에서 독재와 싸울 때에 한해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독재자의 개가 된 영삼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다. 존재 자체가 실패다. 영삼이 실패인 것은 정권 재창출을 못해서도 아니고 IMF 때문도 아니다. 그건 본질이 아니다. 실패는 역사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영삼은 역사의 미션을 수행하지 못해서 실패다. 역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 역사의 미션을 충실히 수행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조선왕조 임금들의 평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왕조의 기본 컨셉은 선비 정치다. 선비 정치의 이상에 접근한 인물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고, 그 이상을 배반한 독재자는 비판되어야 한다. 국수 정승 잡채 정승으로 놀아난 사이코 광해군이 선비 정치의 기반을 붕괴시켰다.


영삼과 같다. 스스로 자신의 존립을 부정한 거다. 자살과도 같다. 영삼은 정치적으로 자살한 거다. 3당 합당 문서에 서명하는 순간 그는 역사적 맥락에서 일체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그는 없는 것이 나았다.


조선왕조 역대 제왕의 컨셉은 선비 정치에 있고 유교이상주의에 있다. 그 기준으로 해석해야 바르다. 정도전이 씨를 뿌렸고 조광조가 싹을 길렀고 화담과 율곡이 꽃을 피웠으며 다산과 추사가 그 결실을 수확했다.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미학이다. 인디언풍이 있고, 아프리카풍이 있고, 중국풍이 있고, 일본풍이 있고, 인도풍이 있고, 한국풍이 있다면, 한국인다운 생활양식이 완성된 것은 조선왕조 후반기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거기에서 나와주는 거다. 모든 한국인들의 아이디어의 고향이자 창발성의 자궁이다. 그것은 조선왕조 5백년에 걸친 대역사다. 무수히 많은 선비가 힘을 합쳐 이루어낸 집단지능 시스템이다.


그것은 중국인들이 어디에 만리장성 따위를 쌓았다거나 혹은 미국인들이 남아도는 돈으로 달에 로켓 따위를 쏘아 보냈다거나 혹은 이집트인들이 쓸데없이 피라미드를 올렸다거나 하는 이상의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그 관점으로 평가해야 한다. 누가 그 프로젝트를 바르게 수행했는가?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 백범이 토대를 다졌고 장준하가 씨앗을 뿌렸고 김대중이 싹을 틔웠다. 노무현도 그 맥락에서 의미를 가진다.


백범≫장준하≫김대중≫노무현으로 면면히 이어온 것, 또 앞으로 무궁하게 이어갈 것, 그 가치와 그 혼이 정녕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노무현 혼자 작업이 아니다. 그러므로 혼자 실패 이런 건 없는 거다.


정도전은 실패했는가? 그는 공연히 이성계를 도와서 어리석게도 남 좋은 일 하고 말았는가? 천만에! 정도전의 이상은 꺾였지만 조광조로 해서 살아났고 조광조의 이상은 꺾였지만 화담과 율곡에 의해 되살아났다.


그렇게 면면히 이어져서 다산과 추사에 가닿아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누가 정도전을, 조광조를, 율곡을 감히 실패했다고 말하겠는가? 권력을 잡아야 성공인가? 천만에! 역사의 맥락을, 그 호흡을 이어가야 진짜다.


다음에 올 누군가에 의해 백범은, 장준하는, 김대중은, 노무현은 화려하게 부활한다. 우리 아직 죽지 않았다. 만약 그대에게 조선왕조 선비들의 오백년짜리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눈이 있다면 말귀가 통할 거다.


광해군과 정조임금은 그 기준으로 볼 때 과대평가된 인물이다. 여기에는 명백히 권력 측의 의도가 개입해 있다. 박정희가 독재하면서 지어낸 논리가 실학 군주(?) 정조의 개혁정치다.


‘실용광해 실학정조’.. 실실.. 실(實)이 뭔가? 돈이다. 돈만 벌면 장땡이라는 논리. 그 얄팍한 세뇌술수를 정녕 꿰뚫어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돈만 벌면 친일해도 좋고 돈만 벌면 독재해도 좋고? 천만에!


물론 정조가 개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확실히 정조가 있기에 다산이 있고 추사가 있다고 말할 측면도 있다. 그러나 과대평가다. 정조를 띄우는 이면에는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자리하고 있는 거다.


당쟁은 너무 복잡하게 전개되어서 전부 이원론으로 환원시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본질은 ‘선비 정치의 이상’이다. 선비집단의 공론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독재자 임금을 따를 것인가다.


노론 벽파(僻派)가 왜 벽파인가? 벽파인 이유는 강경해서다. 무엇이 강경하다는 말인가? 선비 정치의 의리에 강경하다는 말이다. 정조의 어찰에도 그에 대한 칭찬이 나와있다지 않는가?


시파(時派)가 시파인 이유는 시시각각 임금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결국 선비의 공론이냐 임금의 독재냐다. 정조 띄우기는 독재옹호다. 정조가 신임한 심환지에 악당의 이미지를 덧씌워 왜곡한 자가 누구인가?


무덤 속의 정조가 벌떡 일어나 꾸짖을 이인화들의 왜곡된 정조 띄우기는 혼란스런 선비 정치보다는 독재자의 명쾌한 해결이 낫다는 속임수를 숨긴 거다. 결국 민주주의는 혼란이고 독재는 속 시원해서 좋다는 거다.


이게 본질이다. 왜 속아 넘어가는가?


무슨 무협지라도 되는 양 수구 본산인 영남 남인을 정파(正派), 노론 벽파를 사파(邪波)로 분류하는 이분법은 박정희 우상화에 동원된 궁정 나팔수들의 속임수였던 것이다. 그 앞잡이가 이인화, 그 뒤꼬리가 이문열이다.



※ 출처 - http://www.gujoron.comhttp://cafe.daum.net/gujoron

 

ⓒ 김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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