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큰-집님의 글과 그 용기에 대해 감탄하고 있는 애독자입니다.
제 자신 모스크바를 참 좋아합니다.
유럽에 갈 일이 있으면 주로 아에로플로트를 탑니다.
승객 머리 위 짐칸도 없고,
심지어 좌석에 접이 테이블도 없는 군용 비행기같은 일류신.
너무나 위태해보이는 구식 비행기이기에
그 무거운 몸체가 공항에 착지하는 순간 터져나오는
러시아 승객들의 어린이와 같은 박수와 환호.
위험한 직업을 한 때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비행기 이착륙의 그 짜릿한 순간들이 주는 정밀한 쾌감과 함께
조종사의 기술에 대해 진심으로 찬탄하게 되지요.
MS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게임이라도 해 본 사람들은
아마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촌스러운 식사를 대접하는 우람한 스튜어디스 아줌마.
낡은 공항에서 들려오는 예쁜 여자경찰들의 거센 억양.
그러나 그 뒤에 가려 있는 인간적인 순수함.
소비에트적인지 러시아적인지 그런 단순함이 좋더군요.
서울 동대문 운동장역 5번 출구인가로 나가면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광희동 러시아 골목도 저는 좋아합니다.
아직도 있나 모르겠네요...
고향마을인지 고향집인지 라는 뜻의 "크라이노드노이" 식당.
정말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오십대의 뚱뚱한 우즈벡 고려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의 아늑한 고향집 같은 그 곳.
독한 싸구려 보드카와 금방 토하고 싶도록 느끼한 양고기 샤슬릭.
어느 룸싸롱일까 밤일 나가기 전 금발벽안의 아리따운 접대부들이
옆 테이블에 몇몇 모여 앉아서 이국의 한을 풀고 있는 모습.
시커먼 비닐봉투를 힘겹게 들고 들어오는 저 러시아인 보따리장사.
"크라이노드노이"에서는 누구나 정처없는 떠돌이가 되지요.
그래서 그런 곳을 마음의 고향이라고 또 부른답니다.
그런 선술집에서 마시는 한 잔의 독주가 더럽고 차가운 도시
서울의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겠지요.
한국 사람이 정많다는 건 솔직히 개도 웃는 자화자찬이지요.
이 세상에서 서울 만큼이나 추악하고 냉혹한 도시가 또 있을까요...
하기야! 글로벌 경쟁시장이 시베리아 강제노동보다
더 "인권적"이라고 떠드는 저 잘나빠진 신자유주의 수전노들에게
"크라이노드노이"가 무슨 작은 의미라도 있을까만.
그러니까... 결국 돈의 영광 할렐루야를 위하여
용산에서 한강에서 사람을 죽게 하고 죽이고서도
저렇게 가증스러울 정도로 뻔뻔할 수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그토록 정많다는 우리 국민의 철저한 방관과 침묵...
제가 제일 존경하는 현대 철학자는 구소련의 영원한 망명자
지노비에프(Aleksandr Zinovyev, 1922–2006) 입니다.
소련의 공산독재를 피해 서방으로 망명왔다가,
소비에트 붕괴 이후 소위 자유 자본주의의 전제정치를 피해서
다시 고향 러시아로 망명한 사람이지요.
대적할 공산주의가 없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극심한 수탈체제인지,
오늘날 자유주의란 것이
결국 사상의 독점에 기반한 간악한 유일사상체제임을
명확히 보여준 현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지요.
그냥 그렇다는 말입니다...
큰-집님께서 모스크바에 사신다니 괜히 반가워서요.
존경하는 큰-집님의 묻는 뜻이 무엇인지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옛 친구 K가 누구인지 밝혀드릴 수 없습니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의 허락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의 허락도 없이 K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밝혔던 것은
경망한 저의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
권력에 좌우되는 "정보당국"이나
금력에 좌우되는 "증권가 핵심인물"들 외에도
이미 많이 있다는 사실을 "정부"에 알림으로써
"정부"가 미네르바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기를
경고하려는 했던 것이 저의 순수한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더군요.
동네 어린이 한테 꼬집힘을 당하면,
왜 당했는지 스스로 뉘우치기에 앞서
그 어린이와 그 부모와 주위에서 맞장구 쳐주는 이웃 모두에게
가장 악랄한 보복을 행하는 무차별 생떼 폭력으로써
동네 사람들의 복종을 요구하는 치사한 양아치 정권이더군요.
양아치들과 맞설 수 있는 것은
그네들이 감히 넘 볼 수 없는 힘 뿐입니다.
양아치들은 태생적으로 비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마 큰-집님과 다른 아고리언들께는
제 글이 현학적이고 오만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제 글 모두는 건방 쳐빠진 쥐새끼 양아치들에 대해
강력한 지적(知的) 무력시위를 하려고 이미 의도된 것입니다.
누구는 사이버 테러라고도 부르고들 있겠지요.
저는 사이버 레지스탕스라고 부르겠습니다.
수구꼴통 매판언론과 매국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민주토론의 성지 아고라의 진정한 힘은
오직 지적 우월성과 도덕적 우월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에게는 권력도 무력도 금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집단지성이란 가장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아고라의 힘은 지성과 도덕성 즉 상식과 양심에서 나온다는 사실.
아고라는 시민의 지성과 도덕성 즉 정의의 함양을 위해 있다는 사실.
저는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지성은 학교에 있지도 않고 더더구나 학위 졸업장에 있지 않습니다.
도덕성은 고시 합격증이나 대기업 임명장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수구언론 조중동의 거짓 지식주의 거짓 권위주의에 대한 찬양은
오직 기회주의 기득권자의 영구지배를 위한 음모일 뿐입니다.
아고라 민주시민은 가장 똑똑하고 가장 착하다는 사실,
아고라 민주시민은 가장 똑똑하고 가장 착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알아야 합니다.
왜?
아고라는 가장 여론에, 가장 진실에
그러므로 가장 정의에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구차스러운 변명을 늘어 놓았군요.
용서하세요.
이것이 큰-집님의 의문에 대한 약간의 해갈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모스크바의 볼쇼이하우스에서 뵐 수 있겠지요.
Vladimir Vysotsky - 뒷걸음 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