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공식홈페이지였던 '사람사는 세상'의 '봉하사진관'과 '봉하영상관'에는 2008년 12월 5일 방문객 인사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마지막 영상의 제목은 "따뜻해지면 인사 드리러 나오겠습니다"였다. 하지만 그날 대중과의 만남은 당분간 이별을 고하는 의식이었을뿐 그의 생각과 철학을 밝힌 강연은 아니었다.
◇"길게 보자. 포기하지 말자" =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한 것은 그보다 2개월쯤 앞선 10월 12일 진영공설운동장에서 열린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을운동회' 격려사가 마지막 영상기록이다.
경남노사모가 주관했던 그날의 운동회는 노사모 외에도 시민광장, 국민의 힘, 라디오21, 서프라이즈, 커널뉴스 등 많은 단체가 함께 했다. 그날 노 전 대통령은 약 30분에 걸쳐 노사모의 역사를 회고하고, 의미를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 스스로 시민의 활동 속에서 어떤 미래 진보의 가능성을 찾아보자 하다가, 시민활동만 갖고는 안되겠다 정치를 한 번 해보자, 정치를 그냥 해선 안되겠다, 권력을 한 번 잡아보자, 이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돌아왔습니다. 지금 다시 제 결론은, 그거 다 중요하고, 그러나 그것만 갖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돌아와 보니까, 다 헛것이고, 역시 시민이다. 제 결론은 그렇습니다. 권력은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권력은 하늘에서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 권력의 성격은 여전히 시민의 규정을 받게 돼 있습니다."
이렇게 그는 '시민의 힘'을 강조했다. 당장 선거에서 누가 되었느냐를 놓고 쉽게 좌절하지 말자고도 했다. 길게 보자고 했다.
"매 시기의 정권에 목을 매달면 계속 좌절하고, 좌절한 사람은 포기하거나 변절합니다. 탐욕이 있거나 야심만만한 사람은 좌절했을 때 되는 쪽으로 넘어갑니다. 그런 탐욕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좌절했을 때 포기해버립니다. 좌절이라는 것은 작은 목표, 짧은 목표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자고 했다. 실제로 그는 포기하기 않기 위해 '길게 보자'는 목표를 설정했던 것 같다. 그가 과연 '길게 보기로 한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또하나의 강의 기록 = 여기서 우리는 '사람사는 세상'의 영상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또다른 강연내용을 소개하려 한다.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실제 그의 생각과 철학을 밝힌 강연이 한 번 더 있었던 것이다.
앞의 격려사보다 한 달 하고도 열흘 뒤에 있었던 경남지역 YMCA 이사와 위원 60여명 앞에서 했던 강연과 대화가 그것이다. 강연이 있었던 2008년 11월 22일은 검찰이 세종캐피탈을 압수수색하고 홍기옥 사장을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노건평 씨 쪽으로 수사의 화살을 정조준해오던 시기였다.
당시 강연은 YMCA 유지지도자 연수를 주최한 김해YMCA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당초 봉하마을 회관에서 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인원이 많아 강연 장소를 사저 뒤편 부엉이바위가 바라보이는 저수지 둑의 잔디밭으로 옮겼다.
그 때의 강연은 공교롭게도 영상촬영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만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강연을 들었던 이들 중 그의 강연내용을 숨가쁘게 받아 적은 사람이 있었다. 경남대 유장근 교수(사학·마산YMCA 시민사업위원)였다. 따라서 여기서 공개하는 내용은 유 교수의 기록정신이 없었다면 그날 함께 있었던 60여 명의 기억 속에만 남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유 교수는 "그날 비서진 중 한 명도 받아 적는 걸 봤는데, 왜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봉하마을 사저 김경수 비서관은 "그날의 대화가 공식적인 강연은 아니었고, 그날 이후 충청지역을 방문할 때도 몇 번 더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비공식 자료들은 지금 정리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유 교수의 기록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시민 속에서 민주주의를 확대·발전·심화시켜 나가는 일을 희망과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낙향 △정치 △봉하마을 △시민사회 등 네 가지 주제로 이야기했는데,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시민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유장근 교수의 기록이다.
"시민사회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기본 철학은 민주주의의 발전이었다. 이 사상과 역사를 정리하는 것, 그리고 이를 가능하면 초·중등생에게 학습하는 일, 특히 봉하를 찾는 어린이들에게 그 의식을 심어주는 일, 이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의 최후 희망은 '어린이' = 시민사회 속에서 민주주의의 발전, 특히 그 중에서도 그의 희망은 '어린이'였다. 그가 12월 5일을 마지막으로 사저 방문객들을 만날 때마다 어린이들을 특별히 챙긴 까닭을 알 수 있다. 그는 또한 권위주의의 벽을 허무는 데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주로 정서적인 범주였는데, 그것은 지도자와 시민 사이의 정서적 벽 혹은 거리감을 허무는 것이 중요한 일이며, 이것이 민주주의 지도자의 역할이라는 데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확보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하며, 지금도 봉하를 찾는 관람객들과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이 작업의 일환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한테 더 관심을 갖는 이유도 대통령이 먼 구름 속의 볼 수 없는 허상체가 아니라 실체로서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에서 해야 할 작업 중의 하나는 한국의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기자는 이 기록을 읽으면서 노 전 대통령의 그런 생각이 공교롭게도 최근(6월 5일) 강유원 박사(철학)가 마산YMCA 촛불대학 강의에서 했던 이야기와 어쩜 그리도 같을까 하고 놀랐다. 강 박사는 강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은 '대통령도 시민 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준 것"이라면서 "민주주의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며, 노무현의 죽음으로써 이걸 알게 되고, 이걸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지도자와 시민, 특히 어린이에게 정서적 벽을 허물어 민주시민으로 자라나도록 하려던 그의 소박한 목표는 이미 그 때쯤부터 좌절로 다가서고 있었던 것 같다. '낙향'과 '정치'에 대한 강연 기록에서 그의 이런 심정을 엿볼 수 있다.
"낙향하는 것으로 싸움판이 끝난 줄 알았으나,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와 면식이 있는 사람이면 무조건 '최측근'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자신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에서 발을 뺄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5년 동안 두 번 정도 만난 사람을 '최측근'으로 부르면서 죄를 캐고 있는데 대한 불만이었다. 또 기록관리 문제를 끊임없이 정쟁거리로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권은 여하튼 계속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지금 현실 정치세력은 형 문제로, 직불금과 관련된 대통령 기록물 공개로, 그 때보다 훨씬 더 깊이 정치권에 그를 끌어들였다.)"
그는 강연이 끝난 후 이어진 청중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지방분권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방분권과 자치에 관련된 답변은 좀 길었다. 확실히 위기다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예컨대 경기도가 수도권 완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그렇게 될 경우 경기도는 김해와 유사한 상황이 될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김해는 사실상 부산의 오염처리장 같은 입장에 빠져있다. 곳곳에 공장이며, 그래서 농촌환경이나 주거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익이 증대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수도권의 이익을 거론하면서 그간의 각종 규제를 풀자고 하지만. 그 실체도 애매모호할 뿐이다. 누가 어떤 이익을 올리는가?
상황이 이 쯤 되면 지자체의 장이나 주민들이 저항해야 하지만, 이들 역시 이해관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연대하기 어렵고, 종부세 개정으로 인해 경남의 경우 1000억 정도가 깎일 것이지만, 그에 대한 대안은 없는 실정이라고 한탄하였다. 지방에 사람이 이주해서 살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하며, 혁신도시는 바로 이를 목표로 삼았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말한다."
◇처음도, 마지막도 민주주의·지방분권 = 이처럼 그는 1981년 서른 다섯 살 때부터 평생 민주주의와 지방분권을 위해 싸웠고 대통령까지 지냈지만, 마지막까지 안타까워하고 목표를 삼았던 것 역시 민주주의와 지방분권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길게 보기 위해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걸었지만, 끝까지 발목을 잡고 싸움을 걸어온 현실 권력으로 인해 좌절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의 말대로 탐욕과 야심이 남아 있었다면 되는 쪽으로 넘어갔을 텐데, 그런 탐욕이 없다보니 끝내 포기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유장근 교수는 기록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적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똑똑한데, 5년 동안 머 했노?' 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고 자문자답하는 것으로 말끝을 맺었다. 예컨대 일하여야 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는데 2년이 더 걸리더라는 것이다. 좀 우스개 소리 같았지만, 사실은 국가 체제가 대통령 개인의 뜻 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중략…) 간담회가 끝난 뒤 각 지역 YMCA 사람들과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그와의 간담회는 끝났다. 나 역시 그 틈에 끼어 기념사진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끝난 시간은 6시가 다 되어 있을 만큼 이미 어두웠다. 날씨도 으슬으슬하게 추워서 혀를 데일 정도로 뜨거운 오뎅국물과 봉하 국밥이 아니었다면, 몸을 녹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유장근 교수의 강의기록 전문을 보시려면 http://blog.naver.com/yufei21/6005848476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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