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옮길 수 있을까[소제끝]
앞의 설명은 공간이동이 여하튼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 되므로 다소 마음의 위안을 준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컴퓨터로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상상하더라도 정말로 인간이 기대하는 공간이동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는 학자들이 있다.
공간이동 장치가 성공한다는 것은 인간이란 결국 원자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뜻인데 외피나 형식은 몰라도 본질은 절대 바꾸거나 이동시킬 수 없는 존재이므로 공간이동장치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소 어려운 설명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극단적인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인간은 보통 동물과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의 물리화학적인 상태를 철저히 분석하여 동일한 원자의 집합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동된 생명체가 공간이동 되기 전의 사람이 갖고 있는 기억과 희망, 꿈, 정신 등을 똑같이 갖고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물질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비한 면이 있다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학자들이 신비하게 꼽는 것은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종종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내 마음이야’,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마음(정신)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이런 의문을 품어 왔다.
학자들은 인간의 특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특이한 지능이 다른 동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침팬지에게도 다소나마 있다고 인정한다. 그것은 인간이 침팬지로부터 가지 쳐 나왔기 때문에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예를 들면 침팬지는 다른 침팬지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볼 수 없는지를 안다. 특히 침팬지는 장애물이 있으면 볼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학자들은 침팬지들이 인간처럼 눈으로 들어오는 영상을 처리하는 ‘마음’이 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이런 예를 볼 때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은 아마 다른 개체들처럼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학자들은 대체로 인간의 조상인 호미니드가 약 500만 년 전(700만 년 전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음)에 침팬지로부터 갈려 나온 뒤부터 언어 이론과 함께 마음 이론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고 믿는다.
앤드루 위튼과 로빈 던바는 호미니드가 원숭이와는 달리 나무에서 내려와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게 된 이후부터 마음 이론을 진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초원으로 나오면서 호미니드는 사자나 표범처럼 덩치가 크고 무서운 포식자들과 마주친다. 그런데 초원에서는 위험을 피해 뛰어올라갈 나무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호미니드들은 조상보다 더 많은 개체가 모여 집단을 이루었다. 무리가 커지면 사회적 지능이 더 잘 발달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남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호미니드의 눈 속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이어서 신체언어도 이해하게 되었고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한 행동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이런 과정을 통해 호미니드는 서로 속이거나 동맹을 맺거나 남의 행동을 추적하는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
일단 마음 이론이 호미니드에게 자리 잡기 시작하자 진화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다. 더 뛰어난 마음 이론을 갖고 태어난 호미니드는 집단 구성원들을 더 잘 속일 수 있었고 적극적으로 번식에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 위튼은 이렇게 말했다.
“진화가 진행되자 호미니드는 거짓말을 알아내는 능력을 모든 개체들이 개발하는 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호미니드의 머리 속에 마음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서열이 낮은 개체들도 매우 영리해졌기 때문에 우두머리 수컷은 구성원들에게 위계질서에 복종할 것을 강요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호미니드의 사회는 침팬지식의 서열 사회에서 좀 더 평등한 구조로 바뀐다. 호미니드의 사회가 평등사회로 변하자 진정한 수렵채취 생활의 이익을 누리기 시작한다.
위튼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마음 이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고 따라서 숭고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지구상의 어떤 종보다도 더 야비한 동물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