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교수의 첨단과학과 불교] 14. 바람직한 노령화사회
역량있는 젊은 후학들에 일 넘겨야
자비심바탕 복지 질적개선 서둘때
첨단과학의 발달로 의학분야도 첨단의료장비를 갖추게 되면서 인간의 수명이 점차 연장, 지구촌은 점점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도 65세 이상의 노년층이 전체 인구의 7.3%로서 지난 5년 사이에 27.7% 늘어난 반면, 생산연령(15~64세)인 청장년층의 증가율은 13%에서 4.1%로 줄어들며 급속하게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직에서 물러난 노년층의 전문적인 노동력을 대사회봉사와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제도나 편안한 노후를 보장하는 복지 제도는 전무한 상태이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보건복지부에서 노령수당 등과 같은 노후생활 안정대책이나, 노인건강 관리대책, 그리고 노인을 위한 무료시설, 자원봉사 및 사회참여 기회 확대 등과 같은 사업과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인복지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불교계에서도 노령화 사회에 발맞추어 두 가지 노력을 경주할 시기라 생각된다. 첫 번째는 불교계 내부의 문제로 불교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층의 노령화 문제이다. 태고보우(1301~1382) 선사는 19세에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를 타파했으며 몇 차례의 오도(悟道) 후, 46세에 석옥청공 선사의 법을 이었다.
그리고 근세사를 살펴보면 경허성우(1846~1912) 선사는 31세에 오도 후 37세부터 59세까지 전법을 하다 59세 때 강계 지방으로 은거하였으며, 곧바로 그 뒤를 이어 34세의 만공월면(1871~1946) 선사가 선풍(禪風)을 휘날렸다. 그밖에 23세에 오도하신 용성진종(1864~1940) 선사를 포함해 대부분의 선사들이 30대와 40대에 대활약을 펼치며 한국 선종을 이끌어 왔으나,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돌이켜 보면 총림의 방장 스님들과 선원의 조실 스님들이 대부분 연로하셔서 옛날과 같은 활기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필자의 견해로는 지금이, 만공 스님의 기량이 무르익던 34세에 모든 것을 넘기시고 은거하셨던 경허 스님의 이 점을 깊이 살펴 다시 활로를 모색해야할 중요한 시점이라 판단된다. 사실 불교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계신 총림이나 선원의 어른들이 기력이 다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역량 있는 후학에게 자리를 넘기면 공석이 되는 일없이 총림이나 선원이 단절 없이 지속적으로 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방장’에 해당하는 ‘관장(해당 종파의 최고 어른)’이란 직제가 있는데 종신직이 아니고 임기제이기 때문에 역량 있는 후학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넘기도록 되어 있다. 사실 선의 세계에서 입실 지도는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인데, 아무리 첨단과학이 발달한다하더라도 입실지도는 조실 스님이 강건한 체력과 선체험을 바탕으로 직접 해야만 한다.
몇 해 전 어느 문중의 젊은 수좌 스님을 만날 기회가 있어 문중의 조실 스님께 입실 지도는 받고 계신지 물었더니 일년에 한 번 정도 부축 받고 대중에 모습을 보이시기 때문에 입실 지도를 받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이 어른들이 공식적으로 은퇴한다고 해도, 아직도 활발한 활동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한국 가톨릭의 전 수장이셨던 김수환 추기경처럼, 하셔야할 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불교계 외부의 문제로 무기력한 정부 정책과는 별개로 노령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고통에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할 때이다. 어떻게 보면 타종교들과 선의의 경쟁을 벌리고 있는 분야이다. 솔직히 가톨릭과 개신교는 이 분야에서 특히 불교보다 많이 앞서 가고 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자비 정신을 바탕으로 타종교계의 좋은 점은 배우면서 불교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면, 양적인 실적 위주보다 깊이 있는 질적인 개선 여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젊어진 불교계의 어른들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 발 벗고 나서신다면 더욱 가속도를 가지고 일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필자가 35세(1990년)부터 지도법사로 있는 선도회(禪道會)의 장래 핵심 계획을 하나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바람직한 청소년 육성과 노인 복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작은 계획이다. 현재 선도회의 대부분 법사들이 정년퇴임할 시기는 15~20년 후이다. 이때를 맞추어 수도권 근처에 다목적 선도회 선원을 건립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선도회 법사들이 교대로 상주하며 365일 입실지도가 가능한 선원의 건립이다. 두 번째는 방학을 이용해 정기적인 청소년 수련회를 개최하여 바람직한 청소년 문화 정착에 일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양한 전문직에 종사하다 퇴직한 선도회 회원들이 단지 죽는 날만을 기다리며 죽음만을 평온하게 맞이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도반들과 함께 머물며, 지속적인 참선 수행과 전문직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지역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박영재 박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선도회 지도법사/1955년 11월11일 출생 / 1978 년 2월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 1987년 9월부터 1988년 8월까지 뉴욕 주립대(스토니부룩) 이론물리연구소 연구원 / 1989년 9월부터 현재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저서:1994년 <죽음을 초월하는 마음의 과학>(전파과학사) 번역 / 1996년 <두문을 동시에 투과한다>(불광출판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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