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진 교수의 과학과 불교사상] 29. 공가중 삼제원융(空假中 三諦圓融)
-파도가 바다 떠나 존재하지 못하듯-
-空 假 中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 -
인간은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반성적 사유가 가능한 생물의 종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나는 과연 무엇인가?'하는 것을 물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한 물음을 자기 자신에게 던질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이 인간을 참으로 인간이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불성의 자각 곧 해탈에 이르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반성적 사유에 의해 나 자신을 포함하여 우주의 모든 사물을 면밀히 고찰하여 보면, 그 크기가 아주 작은 양성자나 중성자에서부터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크기가 대단히 큰 천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불변하는 고정된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자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연기(緣起)에 의하여 즉 서로의 연관에 의하여 존재할 뿐이므로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한다. 오직 연기에 의할 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으므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이는 지금 존재하는 그 어느 것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다시 말하면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원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좋은 예가 밤하늘의 별이다.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천체들도 시작과 끝이 없이 오직 인연법에 의하여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여 가다가 마침내 소멸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렇게만 이야기한다면 아주 중요한 점을 놓칠 수도 있다.
가령 지금 밤하늘에 있는 별은 성주괴공의 주(住)의 단계에 있는 것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다가 괴멸하여 공(空)의 단계에 이르며, 또한 이 공의 단계에 있는 이를테면 성간물질과 같은 것들은 공의 상태에 있다가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지면 주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면, 주와공을 단순히 시간상의 변이로만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색과 공은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지만 색이 변화하여 이윽고 공이 되고 또한 공이 변화하여 이윽고 색이 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는 색성공(色性空)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간물질의 상태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있는 듯 하기도 하고 없는 듯 하기도 한 상태이다.
또한 별의 상태는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성이 없이 쉼없이 변화하여 가는 인연 화합의 상태일 뿐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시간이 경과하면 색이 변하여 공이 되고 공이 변하여 색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색과 공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색이 바로 공이고 공이 바로 색이라는 것이다. 색성공이라는 것은 색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이니, 공이란 색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지 색이 있는 자리를 떠나서 따로 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색은 공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공은 색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좋은 예를 현대물리학의 상대론적 양자역학에서 찾는다. 상대론적 양자역학이 이해하는 진공의 개념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완벽하게 차 있는 상태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의 자리가 바로 색의 세계이며, 색의 그 자리가 바로 공의 세계이다. 따라서 색과 공은 분리해 낼 수 있는 두 세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세계이다. 그 하나의 세계를 이르되, 연기하여 머무름이 있으므로 색 혹은 가(假)라고 하고 그러나 일체의 모든 사물은 오직 무아여서 자성이 없으므로 공(空)이라고 하며 또한 그 둘의 양변을 떠나면서 그 양변을 포용하여 중(中)이라고 한다. 공가중 그것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이다.
그러므로 가라 하면 공과 중이 따라 오고 공이라 하면 가와 중이 따라 오며 중이라 하면 가과 공이 따라 온다. 이렇듯 공과 가와 중이 거칠 것이 없이 원융무애하니 이를 이르러 공가중 삼제원융(空假中 三諦圓融) 이라 한다. 마치 바다와 파도의 비유와 같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파도의 흰 거품 뿐이지만 이는 바다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의 세계이다.
이러한 하나의 세계는 비단 색과 공, 진공과 묘유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와 보리에 대하여 생사와 열반에 대하여 마음과 중생과 부처에 대하여 다 성립하여야 할 것이다.
글: 양형진<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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