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가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생일이 언제인가요?"
하지만 이보다 더 재미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게도 한번 물어볼까요.
"구름아, 너는 생일이 언제니? 태어나기 전 어디에 있었니?"
구름에게 깊이 귀를 기울이면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 구름이 태어나는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구름은 태어나기 전에 바다 표면의 물이었습니다.
혹은 강물이었다가 수증기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수증기를 만드는 것은 태양이기에, 구름은 태양이기도 했습니다.
바람도 함께 있어서 물이 구름이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구름은 이처럼 무無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형태의 변화만이 있을 뿐입니다. 무에서 유有가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머지않아 구름은 비나 눈이나 얼음으로 변할 것입니다.
비를 깊이 바라보면 구름이 보입니다. 구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비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입니다.
비는 다시 풀로 모습을 바꾸고,
풀은 소의 몸속으로 들어가 우유가 되고,
세상으로 나와 우리가 먹은 아이스크림이 됩니다.
그러나 만일 아이스크림을 먹게 된다면
그 아이스크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십시오.
"안녕, 구름아! 바로 너로구나!"
이로써 여러분은 아이스크림과
구름의 참된 본성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은 아이스크림 속에서
바다를, 강을, 더위를, 태양을, 풀을, 소를 볼 수도 있습니다.
깊이 바라보면, 구
름이 태어난 날자나 죽은 날짜는 보이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다만 구름이 비나 눈으로 모습을 바꾼다는 사실만이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죽음은 없습니다.
언제나 이어짐만이 있습니다.
구름은 바다가, 강이, 태양의 열기가 이어진 것이고,
비는 구름이 이어진 것입니다.
구름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한 잔의 우유를 마실 때,
한 잔의 차를 마실 때,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호흡에 집중해보세요.
차를 마시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그것들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구름에게 인사하십시오.
붓다가 모든 것을 멈추고 깊이 바라보았듯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삶의 고苦 안에 있었지만
수행을 통해 그를 극복했습니다.
그리하여 깊은 지혜와 자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스승으로,
형제로 부르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진정으로 죽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붓다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참이 아닙니다.
붓다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붓다가 수많은 모습으로 살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깊이 바라보면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으며
아무것도 죽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붓다의 새로운 모습이자
또 다른 연속체, 이어짐, 드러남입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붓다의 이어짐이 어디에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틱낫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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