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를 굶겨라
이제 막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수행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다.
수행은 그대가 번뇌에 맞서고 해묵은 습관들에
먹이를 주지 않으려 할 때 시작된다.
마찰과 어려움이 일어나는 곳,
그곳이 바로 그대가 일해야 할 곳이다.
식용 버섯을 딸 때는 아무 버섯이나 무턱대고 따지 않는다.
무엇은 먹을 수 있는 버섯이고, 무엇은 독버섯인지를 알아야 한다.
수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위험한 것들, 독사처럼 물어뜯는 번뇌들을 잘 알아야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고통의 이기심 뿌리에는 탐욕, 미움, 망상과 같은 번뇌가 있다.
우리는 번뇌를 극복하는 법, 번뇌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법, 마음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부처님께서 그대에게 둘도 없는 죽마고우와
헤어지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번뇌는 호랑이와 같다.
우리는 알아차림, 에너지, 끈기, 인내심으로
잘 지어진 튼튼한 우리에 호랑이를 가두어야 한다.
그 뒤 습관적인 욕망들에 먹이를 주지 않음으로써 굶어 죽게 할 수 있다.
굳이 칼을 휘두르며 죽이려 애쓸 필요가 없다.
번뇌는 고양이와도 같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 계속해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먹이를 주지마라.
그러면 결국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처음 수행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괴로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오직 번뇌만이 괴로워한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전에는 이런 문제들이 없었어. 대체 뭐가 잘못됐지?”
이전에는 우리가 욕망들에 먹이를 주었으므로
그것들과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속에 병이 들었는데 바깥 상처에만 연고를 바르는 사람처럼.
번뇌에 맞서라. 번뇌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번뇌를 잠재우지 말라.
지나치게 자기를 학대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면적으로 강해지려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보라.
마음을 쉼 없이 지켜보다 보면, 자신이 결과만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있다.
자녀가 갈수록 속을 썩이면, 부모는 아이의 행동에 실망하여
“대체 어디에서 이런 아이가 나온 거지?”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우리의 고통은 마음의 행위에 대한 집착,
진리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나온다.
물소를 길들이듯 마음을 길들이는 것은 수행이다.
마음을 길들이면 진실을 볼 수 있다.
자아의 원인과 끝, 모든 고통의 끝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복잡한 일이 아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번뇌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번뇌가 올라올 때 부딪쳐 나아가며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생각으로 어찌할 일이 아니라 직접 해야 하는 일이다.
‘나’ 혹은 ‘나의 것’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할 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놓을 수 있다.
"아잔차 스님의 오두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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