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머물기
식사를 하면서 입안의 음식물이 씹히는 행동에 머무는 것, 상점에 물건을 사러갈 때 걷는 행동을 그대로 주시하는 것, 대화하면서 자신의 손과 발의 위치를 자각하는 것, 이런 모든 행위가 현재에 머물기로서 집중명상입니다. 그러면 좀 더 여유가 생겨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낍니다. 이것을 조사선에서는 '평상심'이 그대로 도이다고 말한 바이고, 영적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영원한 현재'입니다. 지금 여기의 맥락에 그 자체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일상에서 집중이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축구경기를 하거나 아니면 학교공부나 일상의 업무에서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집중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때의 집중에는 무엇인가를 이루고 성취하기 위한 어떤 강한 갈망, 동기나 의도가 있습니다. 어떤 대상에 마음이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가 집중인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입니다.
일상에서 말하는 집중이 명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곳에 이완반응이 존재해야 합니다. 이완이 없는 집중은 근육의 긴장과 심리적인 압박감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얻고자하는 과도한 열망이 역설적으로 그 무엇도 얻지 못하게 만듭니다. 운동선수들도 명상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명상을 이완반응으로 설명하는 심리치료의 관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명상에서 말하는 이완은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긴장과 압박감으로부터 떠남을 의미합니다. 걷는 행동은 다른 어떤 동기를 가지고 상점까지 가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명상이 되면 걷는 행위가 그 자체로 목적을 이룹니다. 걷는 현재에 접촉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 걷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입니다. 집중명상에서 말하는 첫 번째 선정[初禪]은 바로 갈망이나 산만함과 같은 장애로부터 벗어남에서 오는 기쁨(piti)과 행복감(sukha)을 경험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기준점입니다.
걸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걷을 때 긴장과 압박감이 있는가?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바로 과도한 성취에 대한 갈망이 그 주된 원인입니다. 그래서 집중명상에서 우선적으로 무엇인가 챙기고 얻고자 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한 요점입니다.
잠깐 앉아 있어보면,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리저리 흘러가는 흰 구름처럼, 아니면 이 나뭇가지 저 나뭇가지로 옮겨 다니는 원숭이와 같습니다. 이들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마음은 과거에 경험한 패턴을 반복하거나, 아니면 닥쳐올 미래에 대한 기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 상처들이 문득 찾아옵니다. 이들은 반복적으로 내 의지와는 관계가 없는 듯이, 통제할 수 없는 강도를 가지고 제멋대로 마구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런 불편한 경험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즐거운 일들을 기획하고 없던 일도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마음은 룰러게임처럼 자꾸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합니다.
이것을 멈추는 유용한 전략이 바로 '현재에 머물기'입니다. 알아차림은 손쉬운데 현재를 존재하는 그대로 경험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이것은 현재의 경험에 주관적이고 개념적인 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명상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언어적인 판단을 멈추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현재에 그대로 머물기를 한다는 것은 판단을 멈추고 그 자체로 현재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걷는 명상은 걷는 그 경험을 분별하고 판단하고 해석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걷는 행위는 다른 목적에 대한 봉사나 도구가 아니고, 그것은 그 자체로 완결된 도착점입니다.
- 인경스님 -
출처 : 생활속의 명상도량 광주자비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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