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을 대하는 대통령의 뻔뻔한 두 얼굴
(양정철닷컴 / 양정철 / 201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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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에 항의해 울부짖는 노점상. 이들은 이벤트대상이 아닙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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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한 처지에 놓인 인사동의 풀빵장사 부부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종로구가 추진하는 ‘차 없는 거리 사업’으로 인사동 노점상들이 특화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고 그 때문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편지 한 장 보냈을 뿐인데 이 사연이 어찌 언론에 알려지게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보도가 난 다음 날 청와대가 즉시 나섰습니다. 청와대 관계자가 춘추관으로 가 자신들이 해결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지금은 서민이 참 어렵고 힘든 시기다. 노점상 실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해당 자치단체에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
참으로 웃기는 청와대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동기가 순수하지 못합니다. 청와대엔 딱한 사연을 호소하는
편지나 이메일이나 전화가 수도 없이 옵니다. 1주일에도 수십 건이 밀려듭니다. 밤에 청와대에서 숙직을 하다 보면 심야에도 전화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왜 청와대가 유독 인사동 풀빵장사 부부 일에만 나설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 대통령이 과거 시장 시절 그 부부 노점에서 풀빵을 굽는 이벤트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도 풀빵 장사를 해 봐서 안다며…. 그 인연으로 지난해 9월 대통령 내외가 출연한 KBS 1TV ‘아침마당’ 추석 특집에 그들이 함께 나오기도 했습니다.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챙기고 그런 인연이 없다면 안 나서는 게 옳은 방식일까요. 전국의 국밥집이 다 어려운데 대통령이 대선 CF 찍은 국밥집 할머니만 챙기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그러면 대통령과 옷깃조차 스치지 못한 전국의 수많은 노점상들은 누구에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겉으로 보기엔 불우한 사람을 따뜻이 챙기는 모습 같지만 본질은 인연이 있는 사람, 그래서 홍보효과가 날 수 있는 사람 일에만 관심을 갖는 꼴입니다.
적어도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이런 일에 나선다면 전국적인 노점상 실태와 가로 정비 사업에 따른 종합적 대책 정도는 살펴보는 수준이 돼야 하는 것 아닐까요.
둘째, 처리과정이 온당치 못합니다. 방법이 뭐든 부부의 문제를 풀어줄 책임주체는 종로구청입니다. 청와대가 끼어들 일도 아니고 권한도 없습니다. 청와대 관계자가 구청에 뭔 얘기를 한들 해결방안이 곧 나오는 게 아닙니다. 청와대는 생색만 낸 겁니다. 그리고 종로구청엔 결례를 한 꼴입니다. 종로구가 대책 없이 쫓아내는 것도 아니고 특화지역으로 자리를 옮기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구청에 망신을 준 겁니다. 야박한 구청, 따뜻한 청와대…. 생색은 혼자 다 내는 것이죠.
제대로 된 일 처리는 이겁니다. 비공식으로 연락을 합니다. 이렇게 정중하게 협조요청을 합니다. “이런 딱한 사연이 청와대에 민원으로 접수됐다. 더 좋은 방법은 없겠느냐. 있으면 찾아봐 달라.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지원책이 있으면 돕겠다. 서울 전역의 유사한 문제라면 서울시와 각 구청이 논의하는 테이블을 만들어 보자. 필요하면 청와대가 주선해 지혜를 찾는 노력을 같이하겠다.” 이게 예의이고 순서입니다.
그런 예의와 절차도 없이 혼자 언론 플레이를 합니다. 청와대는 다음 주께나 종로구청 관계자를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랍니다. 무례하고 독선적인 이벤트식 전시행정의 전형입니다.
셋째, 이 대통령이 아무리 아는 노점상이라고 해도 노점상의 아픔을 대하는 태도가 언제부터 이토록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변하게 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최대 업적은 청계천 복원공사입니다. 그것 하나로 유능하고 추진력 강한 CEO형 지도자로 일약 떠올랐습니다. 한 마디로 개천(청계천)에서 용(龍) 난 셈입니다.
청계천의 뚜껑은 열었지만 주변에서 생활하던 많은 노점상들은 처절한 눈물과 고통과 한으로 덮였습니다.
오갈 데 없어진 많은 노점상들이 생존권을 마련해 달라며 애타게 호소하고 격렬하게 저항도 했지만 서울시는 그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습니다. 인사동 풀빵장사의 경우처럼 노점상들을 특화지역으로 옮겨준 건 한참 뒤였습니다. 그것도 일부입니다. 많은 노점상들이 오갈 곳을 잃었습니다.
이명박 시장과 서울시는 노점상들을 잔혹하게 대했습니다. 청계천 상가 상인이나 소상공인, 중소기업에는 특별융자와 세금감면 등 각종 혜택을 베풀었지만 청계천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3천여 명의 노점상과 수만 명으로 추산되는 일용노동자들에겐 별 대책을 세워주지 않았습니다. 고가 철거작업에 들어가기 하루 전까지도 이들에게 어떤 통보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점 자체가 불법이므로 청계천 공사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해서 생계 대책을 마련해 주기는 어렵다.”
2003년 11월 서울시는 공무원 및 용역업체 직원 3500여 명과 지게차 굴착기 등 작업차량 400여 대를 투입해 노점 철거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무자비했습니다. 심지어 서울시가 동원한 철거반원에는 서울역에서 급히 모집한 노숙자 250여 명과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끼어 있었습니다.
시의 노점상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노점상 수백 명은 청계7가 등에서 폐타이어와 쓰레기더미에 불을 지르고 불붙은 가스통을 굴리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도심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서울 도심이 사실상 ‘불바다’가 됐습니다. 많은 노점상들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날 이명박 시장은 뭐 하고 있었을까요. 자신이 벌인 일로 시내가 불바다가 되고 곳곳에선 중장비와 사람, 사람과 사람이 참혹하게 부딪히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남산 실내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황제테니스’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한 노점상은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시가 청계천 복원을 명목으로 수천 명의 전경과 살수차를 앞세워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할 때도 ‘황제 테니스’를 쳤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노점상도 시민인데 시장으로서 그럴 수 있냐.”
어떤 모습이 이 대통령의 참모습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노점상들을 대하는 마음이 바꿨으면 다행입니다. 그게 아니면 서민들을 내세운 거짓 쇼 좀 그만 하시지요.
양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