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수부대 출신 장군이 한국의 영웅?
(서프라이즈 / 아이엠피터 / 2011-06-14)
KBS에서는 6월23일과 24일 ‘6.25 특별다큐 전쟁과 군인’이라는 방송에서 백선엽을 주인공으로 한 특집방송을 방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KBS가 방송 계획을 발표하자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83개 시민단체는 이 방송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백선엽이라는 사람을, 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이며 한국전의 영웅이나 미군이 인정한 군인이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의 전쟁사에 뛰어난 장군이기 이전에 일본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일본 괴뢰국 만주군 장교였습니다.
백선엽이라는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 친일청산의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백선엽이라는 인물을 검색하면 네이버에서는 학력사항에 군사영어학교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백선엽이 만주국군이라는 표기와 복무기간이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백선엽의 학력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네이버와 만주국군이라고 표기한 일본판 위키피디아 어느 것이 제대로 표기했는지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 일본과 만주국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백선엽 칭송주의자를 위하여
만주국은 일본이 소련을 비롯한 서방세계를 침략하기 위해 병참기지로 건설한 국가이며, 특히 만주국은 조선 독립세력이 만주에 근거지를 확보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는 작전을 토벌하기 위해 만든 형식적인 독립국가였습니다. 만주국은 관동군이라는 일본군이 거주하며 통치했으며, 만주국의 모든 교육기관과 군관학교는 철저한 친일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만주국과 일본은 동일하다고 보는 견해는 일본 역사학자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일본은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 사관학교 형태의 군관훈련소를 설립합니다. 이곳이 바로 봉천군관학교이며, 백선엽은 9기생으로 입학을 합니다. 봉천군관학교는 나중에 신경군관학교로 바뀌고, 신경군관학교는 4년제 정식 사관학교입니다.
만주국의 모든 군사 훈련과 군인은 일본에 의해 양성되고 교육됐습니다. 그래서 만주국 군인과 군관학교 생도를 만주국군이라고 통칭하지만, 실제 일본군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합니다. 백선엽은 이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장교로 임관합니다.
백선엽은 만주국 중위로 복무하였기 때문에 일본군 소위 이상 계급으로 복무한 자에 해당하는 친일파입니다. 어떤 이는 그가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는데, 박정희가 신경군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경군관학교는 백선엽이 나온 봉천군관학교의 후신이며,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입학한 곳입니다.
[韓國/정치] - 독도 폭파를 제시한 친일파 박정희의 딸
백선엽이 만주군관학교를 나왔어도 그의 친일 정도가 극악하지 않았다면 그의 군인으로 공적을 인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같은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서는 백선엽이 1942년 가을 간도특설대에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백선엽의 회고록에는 1943년 2월에 전입되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몇 개월의 차이지만 백선엽이 간도특설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는 사실은 진실입니다. 문제는 이 간도특설대라는 부대에 있습니다.
간도특설대는 부대장은 일본군이고 소대장을 비롯한 장교와 사병은 대부분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간도특설대의 주요 임무는, (백선엽은 게릴라로 표현한) 항일무장독립군을 토벌하는 특수부대였습니다.
■ 간도특설대 설립 제안자 이범익
간도특설대는, 만주국 참의원을 지냈던 친일파 이범익이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 사람을 통치해야 한다’는 이론과 ‘항일운동을 하는 조선 사람은 조선 사람이 토벌해야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일본군이 만주에 있는 항일단체를 토벌하기 위해 한국인을 차출하여 만든 간도특설대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항일무장독립군에게는 뼈아픈 패배와 죽음을 준 부대였습니다.
백선엽이 아무리 6.25 한국전쟁에서 전과를 세운 장군이라고 해도, 그가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같은 민족을 토벌한 특수부대의 장교였기 때문입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에서 활약하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 중국 구국군(中國救國軍),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등 항일무장단체를 토벌하기 위해 조직된 특수부대였습니다. 이들은 많은 전과를 누리면서, 특히 잔혹한 토벌 진압으로 만주 일대에서는 인간도 아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자비한 작전을 전개해서 일본군으로부터 훈장과 포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연변 작가 류연산 씨가 쓴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다’에는 간도특설대의 만행이 나옵니다.
○ 야간 토벌 작정 중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불태워 죽임
○ 간도특설대의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전사한 항일부대원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냄
○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의 머리를 일본도로 자르고 잘린 머리를 들고 기념촬영
○ 항일부대원 중 여성을 포로로 생포하고 강간 시도 후 실패하자 모두 살해
○ 항일부대원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살해 후 그의 머리를 삶은 후 두개골을 장식품으로 만듦
간도특설대를 한국인으로 조직하고, 그들의 성과를 왜 일본군이 칭찬하고 훈장을 주었겠습니까? 일본군에게 충성을 다하려면 인간 이하의 짓을 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은 출세와 부를 누렸습니다. 이런 부대에서 백선엽이 중위로 근무했다는 사실은 고의적이며, 생계 수단이 아닌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일본에 충성했다는 명백한 친일의 증거입니다.
일본 위키피디아와 제가 조사한 자료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백선엽 본인이 작성한 회고록에 나온 문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 포스팅 참고 문헌 및 자료
일본 위키피디아, 한국 위키피디아
백선엽 회고록 "군과 나"
정운현 http://blog.ohmynews.com/jeongwh5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사업회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백선엽 편
신주백 만주국군속의 조선인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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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출처 : 백선엽 회고록 군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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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은 회고록에서도 자신의 했던 일을 기술하면서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과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그가 표현한 게릴라는 항일무장독립군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같은 조선인을 토벌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동포를 토벌하고 죽이면서 그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일본군의 책략에 빠져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던 모습으로 미화했습니다.
▶ 우리가 배반하고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백선엽은 자신이 항일무장독립군을 계속 게릴라로 표현하면서 자신이 항일활동을 했어도 독립은 빨라지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자신을 또다시 변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우리가 독립운동을 했던지, 하지 않았던지 독립은 남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 땅에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고귀한 희생이 얼마나 많은데, 어찌 이런 망언을 서슴없이 자신의 회고록에 적어 놓았고, 이런 자를 어떻게 구국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백선엽이 얼마나 골수 친일 분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의 최종 피날레입니다. 항일무장독립군을 토벌하는 일이 민중을 위한 일이고 평화롭게 사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의 관점에서 항일 투쟁을 벌이는 사람은 질서를 파괴하고, 일제강점기의 평화로움을 깨뜨리는 범법자였습니다.
그의 가치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의병과 독립군들은 반란분자이며, 불법, 폭력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회고록에서조차 백선엽은 자신의 친일행각을 사죄하지 않았고, 정당하다고 외칩니다. 백선엽이 왜 친일파이고 그를 절대로 한국의 영웅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백선엽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일행적 때문에 그의 명예원수 서훈은 취소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친일파이지만 공과가 있기에 당연하게 영웅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궤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백선엽이 그토록 당당한 사람이라면, 네이버를 비롯한 온라인에 당당하게 만주군관학교(봉천) 출신이며 항일무장독립군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라는 사실을 왜 표기하지 않았을까요?
네이버의 잘못이지, 백선엽은 회고록에 당당하게 밝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지난날 자신의 간도특설대 출신을 반성하는 대목 한마디 없이, 자신은 민중의 질서와 평화로운 생활을 위해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인물을 어떻게 공과를 균등하게 논할 수 있습니까?
백선엽이 눈물로 자신의 친일행적을 회개했다면 모르지만, 그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명령에 따라 독립군을 토벌하는 일이 당연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백선엽을 옹호하려면 공과에서 과를 인정하거나, 그의 진심 어린 사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기회주의자이며 민족의 반역자를 영웅이라 칭송하는 이들에게 프랑스 사례를 알려 주겠습니다.
모리스 파퐁은 프랑스 경찰국장, 하원의원, 장관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1,690명의 유대인을 나치강제수용소로 보낸 사실이 발각되어 87세 나이에 ‘반인도 범죄’ 죄목으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도망쳤다가 체포되고 복역했습니다. 병보석으로 3년간의 죗값을 치른 그는 프랑스 훈장도 박탈당하고 사망했습니다.
그의 나이 87세에도 프랑스는 모리스 파퐁의 나치 부역 증거자료가 나오자 그를 심판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나치 부역을 철저히 심판했고, 그 심판은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백선엽이 한국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자 중에는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고 하지만,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유능한 조선 독립군 무장 출신이 왜 없었습니까? 단지, 이승만은 친일파를 모두 등용하고 광복군과 독립군은 절대로 요직에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묻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질서를 파괴하는 독립군이 범법자이고, 그들을 토벌하는 행위가 조선의 평화를 위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독립운동을 할 필요도 없었고, 독립운동을 했어도 우리의 독립은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백선엽은 뛰어난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충성하고 일본의 평화를 위해 조선인을 토벌했던 뛰어난 군인이었습니다.
일본의 질서 유지를 위해 같은 민족을 토벌한 군인이 한국의 영웅이라면 다시금 일본에 의해 한국이 점령당한다면 백선엽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올 것입니다.
친일을 하고 같은 민족을 죽였던 자는 나이가 90세가 되어도, 영웅대접이 아닌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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