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은 부처님이라 저절로 염불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냥 이름만 부르면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여태까지 익히고 배우고
습관성을 붙여 놔서 자꾸만 잡스러운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렇기에 우리 마음의 소재를 어디다가 둘 것인가?
그것이 중요한데, 아미타불은 사람같은 모양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소박한 단계에서는 부처님 상호를 관찰해도 무방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모양 상호는 만덕을 갖춘 32상 80수형호라,
부처님 얼굴은 조금도 흠절이 없습니다.
지혜로 보나 덕으로 보나 또는 능력으로 보나,
만능의 상징으로 부처님의 상호가 나왔습니다.
불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3아승지겁이라는 무수한 세월 동안
몇 천 번도 넘게 자기 몸을 일반 중생한테 희생하고 순교했습니다.
한 겁도 무량세월인데 백 겁 동안 32상 80수형호라는
그런 근본 상호를 이루기 위해 모든 복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가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 상호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닮아야 하겠구나 하고
염불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직 상을 덜 떠난 염불인 것이고,
부처님의 참다운 법신은 우주 어디에나 언제나 무엇이나
충만해 있는 하나의 생명의 광명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무량광명 아닙니까?
아미타불 별명 가운데 무량광불도 있습니다.
또 아미타불은 바로 낳지 않고 죽지 않는 우주의 생명 자체,
영생의 생명이기 때문에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합니다.
그런 부처님의 이름은 한도 끝도 없는 부처님의 공덕을 다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이름 가운데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름과 더불어서 부처님 공덕을 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선 한도 끝도 없이 잘 생긴 얼굴을
관상하면서 나도 닮아야 되겠구나,
나도 만덕을 다 갖추기 위해서는 모든 중생을 위해서시시때때로
자기라는 관념을 줄이고 정말로 공평무사한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나 한도 끝도 없이 빛나는 아미타불을 외우시면 좋습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말하면 우주의 참다운 모습을 담아서
하는 염불이기 때문에 실다운 실(實)자 모습 상(相)자, 실상염불입니다.
또는 법신염불(法身念佛)이나 진여염불(眞如念佛)이라고 하는데,
실상염불과 다 같은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철학적으로 염불을 하는 것이 됩니다.
우주의 도리 그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상호를 관찰하는 것은 아직 상을 두어서
철학적인 염불은 못 되고 하나의 방편염불입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이 모아져서 하나로 통일되면
그 때는 깊은 염불삼매라, 오직 부처님만 생각하고
다른 것은 거기에 낄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소박하니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부처님 이름만
외다가 우리 마음이 오직 하나로 통일되는 게 염불삼매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으로 부처님의 원만 덕상을 상상하면서
염불삼매에 들어도 좋습니다.
여러 가지 교학도 많이 배우시고 ‘조금 철학적으로 정말로
우주의 실상에 맞게끔 염불해야 되겠구나’ 그런 분들은 실상염불,
법신염불, 진여염불을 하면서, ‘우주의 끝도 갓〔邊〕도 없이
만덕을 갖춘 진리가 어디에나 충만해 있구나,
다만 우리 중생이 어두워서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하면, 이것이 이른바 가장 고도의 철학적인 염불이 됩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할 때는 얼마나 공부를 해야 그렇게 될 것인가,
그런 의심을 품으시겠지요. 사실은 그것이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염불은 할수록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다른 작업은 너무 지나치게 하면
몸도 무거워지고 마음도 피로해지지요.
그러나 염불이라는 것은 꼭 소리를 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니까,
소리를 내도 좋고 안 내도 좋고, 또는 가만히 앉아서
가부좌를 해도 좋고 걸으면서 해도 좋고, 또는 반쯤 앉아서 하든
반쯤 서서 하든 어떻게 하나 좋습니다. 조금도 제한이 없습니다.
또는 누워서 해도 무방합니다.
염불은 조금도 피로함이 없습니다.
우리 건강 상황에 따라서 편리한 대로 하면 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염념상속(念念相續)이라 생각생각
거기에 다른 잡념이 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통일되어서 삼매에 들어갑니다.
꼭 염불삼매에 들어가야 공덕이 나옵니다.
염불삼매에 안 들어가면 참다운 공덕은 미처 못 나옵니다.
한 번 하면 한 번 한 만큼 공덕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삼매에 들어가야 무위진인이라,
참다웁게 견성오도한 그러한 성자가 됩니다.
그것이 항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자가 안 되고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금생에 안 되어도 본래가 부처인지라, 우리는 꼭 성자가 되고 맙니다.
꼭 부처가 됩니다.
부처가 이 사바 현상세계에 나투었다가 다시 부처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갈 길이고, 모든 존재가 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아까 말한 테오리아,
모든 존재가 중심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무나 흙, 하나의 원자 모두가 다 가장 중심적인 그 에너지,
우주 기(氣)에서 다 나오고 있습니다.
우주의 기가 천차만별로 형성되었다가,
다시 우주의 기 하나로 돌아갑니다.
하나에서 와서 모두가 되었다가,
모두가 다 하나로 되는 것이 영겁으로 되풀이되는 우주의 원리입니다.
염불은 한 번 하면 한 만큼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맑아지고
동시에 자기 집안도 맑아지고 우리 주변을 정화시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을 외우는 것같이
우주를 정화시키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도 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 번 외우면
그것이 바로 자기 마음도 몸도
자기 주변도 가정도 우주도 정화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저런 세간적인 공덕을 위해서 하는 염불은
하나의 기초에 불과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삼매에 든다는 것입니다.
삼매에 들어야 우리 범부심을 녹이고서 성자가 됩니다.
삼매에 들기 전에도 염불을 오래 하면 그냥 보통 재미가 아닙니다.
나중에는 자기가 안 하려고 해도 저절로 속으로 하고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소리를 내서 하지만, 오랫동안 하다 보면
나중에는 가만히 있으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속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속에서 하는 소리가 그냥 보통 소리가 아니라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습니다.
불자님들 그런 공덕이나 행복을 꼭 맛보시길 바랍니다.
돈 주고서 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애쓰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참 간단합니다. 우리가 안 하려고 해도 우러나오는
염불이 얼마나 행복스러운지 모릅니다.
머리도 맑아지고 가슴도 시원하고 말입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동시에 피도 맑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최적의 법입니다.
그리고 드디어는 그 부처님의 광명, 빛나는 부처님이 앞에 훤히 보이게 됩니다.
미신도 아니고 맹신도 아닙니다.
부처님은 우주의 진리이고 그 자리는 만물의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 중생이 부처님 같은 그런 광명이 빛나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우리 마음이 청정해짐에 따라서 꼭 앞에 나옵니다.
그것 보고 불교말로는 부처 불(佛)자 설 립(立)자
부처가 앞에서 보이는 불립삼매(佛立三昧)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의심이 다 풀리고 마음에 막힘이 없게 됩니다.
책 가운데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이라는 책이 있어요.
거기에 나오는 법문인데, 우리 중생은 본래로 마음이 부처이기 때문에
그 마음 확실히 붙들고, 그 마음 놓치지 않고서
그 마음으로 마음을 닦는 공부, 형식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마음을 닦는 그런 공부는 일자무식도 무방합니다.
일곱 살 먹은 사람도 전생에 많이 닦았기에
금생에 조금 순수한 환경 만나서 그냥 금방 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언제 어느 때나 우리가 도인이 못 되라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형무소에 있으나 어디에 있으나, 어느 때나 마음에 사무치게
정말 내 마음이 석가모니 마음 또는 모든 성자 마음과
하나의 마음이라, 내 마음은 본래로 오염시킬 수가 없다.
따라서 ‘내 마음 자체는 어느 공덕이나 능력이나
다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100%로 딱 믿고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 이름을 외운다고 생각할 때 모두가 성불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는 기왕이면
그런 식의 쉬운 문으로 공부를 해야 하겠지요.
그렇다고 어려운 공부를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가 제대로 알아먹지 못해서 그렇지,
어느 경전이나 모두가 다 쉬운 쪽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대 마음이 바로 부처인 것을 믿고서
그대로 공부하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도 ‘불립문자(不立文字)라,
문자를 세우지 않고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아라.’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선도 원래 의미는 그래요.
아미타불이 저 밖에 계신다고 하면 방편염불이지만,
그러나 자기 마음이 바로 자성불이라 생각하고서 화두를 들고
염불을 하고 주문을 할 때는 모두가 참선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기왕이면 참선하고 싶겠지요.
지금 사람들은 염불이라는 것을 잘 몰라서,
염불은 그냥 누구나 하는 것이고
참선은 더 고도의 수행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화두를 든다고 하더라도
자기 마음이 부처인 줄을 모르면 그때는 참선이 못 됩니다.
그러나 염불을 하건 주문을 외우건 간에
‘우리 마음이 바로 만능을 갖춘 부처님이다.’ 생각하고
염불이나 주문을 외운다면, 그것이 바로 염불선이 되고
또는 염불주문이 됩니다.
가령 우리가 하나님으로 보더라도,
하나님이라는 개념 내용이 우리 부처님의 법신불과 똑같다면
‘오 주여’ 한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참선이 됩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화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도래하는 문화는 세계적인 진리가 다 융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연히 종교 때문에 서로 싸우고 전쟁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은 종교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느 도둑놈이나 누구나 다
부처님 자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참다웁게 불교의 진리를 믿는 것이고,
동시에 가장 쉬운 공부고 행복해지기 쉽습니다.
염불 한 번 하고 나면 귀신이나 신장이나 다 좋아합니다.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그런 존재가 굉장히 많은데,
그런 나쁜 귀신들도 좋아하고 두려워합니다.
더구나 중생염불불환억(衆生念佛佛還憶)이라,
원래 우리가 부처거니 우리가 부처를 부르면
부처도 역시 우리를 굽어본단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피가 분명히 있습니다.
거기다가 염념상속(念念相續)이라 생각생각에 끊임없이
염불을 한다고 생각할 때는 염불삼매에 들고,
염불삼매까지는 미처 못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 마음은 부처님이라 염불을 안 해도 저절로 염불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느끼시면 정말로 매일매일 신묘한 멜로디를 들으면서
공부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꼭 금생에 염불삼매에 들어서
우리 본래의 고향땅에, 본래 들어가야 할
그 자리에 금생에 꼭 가셔야 하겠습니다.
오늘 초대를 받으시는 영가들도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을
명심하셔서 그 어두운 저승, 저승길은 굉장히 어두운 세계인데,
저승길에 헤매이지 마시고 극락세계, 극락세계는 번뇌를
다 없애버린 청정한 존재가 들어가는 세계,
즉 성자가 들어가는 극락세계에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극락세계는 꼭 금생에 성자가 되어야만 가는 것도 아닙니다.
금생에 갖은 나쁜 일을 많이 했더라도,
영가들은 지금 몸이 없으니 마음으로 부처님을 100% 믿고
100% 믿는 그 마음으로 우리 인간과 우주의 참다운 생명 자체인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히 외운다면,
그 공덕으로 해서 성자가 미처 못된 영가도 본래 마음은
오염이 안 되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가 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본사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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