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직 ‘이명박’이 필요하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여당의 유력 후보는 ‘성공 시대’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리고 국민은 그를 통해 성공하고 싶어 그를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시켜 주었다. 그 후에 일어난 온갖 재난과 참상은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지만, 국민들은 그의 통치 3년으로 그가 말한 ‘성공’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만큼은 뼈저리게 알게 됐을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그가 거의 유일하게 이룬 ‘성공’일 텐데, 그러나 그건 참으로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 배워야 했던, 너무도 가혹한 수업이었다.
아직도 그의 임기가 2년 가까이나 남은 지금, 그러나 요새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마치 다음 달에라도 퇴임하는 것 같은 임기 말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배가 난파하려는 징후를 쥐들이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배를 버리듯이 ‘주군(主君)’을 부인하고, 유기(遺棄)하고, 물어뜯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이 그의 측근을 향해 칼을 빼들고 있는 듯하니, 그 것 만큼 ‘죽어가는 권력’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는 떠나는가. 한 때 세계에 우뚝 선 탁월한 지도자로 추앙받던 그가 이렇듯 속절없이 뒤안길로 사라지고야 마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를 이렇게 쉽게 보내서는 안 된다. 그의 집안에서 아무리 추악한 이전투구와 배신극이 연출되더라도, 그의 추종자들이 아무리 그를 헌신짝처럼 버리더라도 오히려 우리는 그를 결코 쉽게 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혹독한 이별식을 치르고서야 그를 보낼 수 있다. 우리는 깊은 반성과 참회의 이별 의식을 먼저 치러야 한다. 그건 그가 바로 우리 자신이었고, 우리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대변해 준 것이며, 그는 우리의 ‘성공’ 욕망의 정치적 인격이었던 것이니, 결국 이명박을 부른 건 우리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비난은 우리 자신에 대한 자성과 통렬한 참회와 함께할 때만이 우리는 그를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이명박 아닌 또다른 이명박에게 또다시 홀리지 않을 것이며, 이명박 이후의 미래에 진짜 미래가 열릴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명박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겐 이명박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과거 총독부 건물의 존치가 필요했었다고 한다면 그건 우리의 반면교사로서 필요했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 우리가 이명박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극복해야 한다면 우리에겐 우리 안의 허물의 거울이자 살아있는 기념비로서 이명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죄와 과오를 뉘우치고 그를 넘어서고자 할 때 나는 그 하나의 길은 그의 언어에 대한 반성에 있다고 본다. 바로 그에 의한 언어의 왜곡과 오염, 아니 우리가 공범으로 참여하고 방관했던 언어의 오염을 바로잡는 것에서 우리의 반성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처럼 ‘생태’를 얘기할 때 ‘반(反) 생태’를 가리키고, ‘진실’을 말할 때 온전히 ‘거짓’을 의미하는 경우가 또 없었거니와 그러나 그의 많은 말들이 결국 우리의 욕망과 위선의 대변은 아니었는지, 우리가 피해자이면서 또한 공범이 아니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공’의 신화에 취해 그의 ‘성공’을 따랐던 것을 반성한다면 그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하나의 모습은 오염된 언어의 정화를 통해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건 언어의 정화를 넘어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정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성공’이 무슨 짓을 하든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그의 속삭임에 우리가 새로운 가르침에 이끌리듯 스스로 따른 것을 반성하는 것이요, 수지가 맞느냐 아니냐를 따질 뿐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은 사치라는 믿음으로 그의 요설(夭說)에 환호를 보낸 것을 뉘우치는 것이며, 나와 내 가족의 성공을 얻는 일이라면 이웃의 처지를 헤아리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앞만 보고 질주한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과 진정으로 대면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이 ‘성공’인지를 ‘이명박식 성공’이라는 왜곡된 언어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국어 ‘정화(淨化)’운동은 또한 국어 ‘정화(正化)’ 운동이어야 될 것이다. 표준말을 쓰고 외래어를 제한해 순 우리말을 지키고자 하는 ‘정화(淨化)’가 아닌, 언어를 원래의 바른 뜻으로, 바른 마음으로 쓰도록 하는 의미의 ‘정화(正化)’야말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리라. 그런 정화가 이뤄질 때 우리는 ‘성공’과 같은 피를 나눈 말, 이명박을 낳고 그와 함께 더욱 번성한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을 나누는 것에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며, 대신 좀더 염치 있는 인사말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그래야 우리는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도 제대로 쓸 수 있게 된다. 착한 일을 해야 복을 받는 것이며, 나쁜 일을 하면 화를 당하는 것이 바른 이치인 것을 스스로 깨치는 말로 바르게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명박을 넘어서는 건 쉽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것은 어렵다. 우리 안의 천박성, 물신주의, (가짜) 성공 지상주의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지난 3년여의 시간에서 배우고자 한다면 그건 죽어가는 권력에 대한 비난에서가 아니라 그의 ‘호시절’을 우리가 만들어주고, 우리가 그와 한데 어울려 춤판을 벌인 것에 대해 교훈과 반성을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난 3년간의 비극에서 배우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금새 건망증에 빠져 또다른 이명박을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건 비극이 아니라 소극(笑劇)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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