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진보-개혁 버젼의 성장담론을 준비하자

장백산-1 2011. 6. 30. 01:00

[김병준 특강2 ] 진보ㆍ개혁 버전의 성장담론을 준비하자
번호 57346 글쓴이 김대호(dwdhkim) 조회 1446 등록일 2011-6-27 09:48 누리93
원문주소: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57346


진보·개혁 버전의 성장담론을 준비하자
기업이 돈을 벌면 투자도, 일자리도 늘어난다?

(사회디자인연구소 / 김병준 / 2011-06-23)


※ 이 강의록은 라디오21이 주최한 ‘고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모’ 강연의 제2강(2011년 5월 18일)을 녹취하여 읽기 편한 문장으로 재정리한 것입니다. 재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첨삭과 일부 내용의 전후 이동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왜 ‘성장’인가?

반갑습니다. 세월이 빨리 갑니다. 오늘이 5.18이지요.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때 저는 유학생으로 미국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러 나이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좀 더 경건한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사실, 어떤 면에서 예민한 문제를 이야기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중언부언해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 그리고 정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요. 이 당연한 이야기를 서거하신 대통령까지 팔아가며 이야기 드렸습니다. 당신께서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셨는지, 그리고 끊임없이 당신이 가졌던 지식에 대해 의심을 갖는 자세를 가졌다는 이야기까지 해가며 말이죠.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이 예민한 문제들을 말씀드릴까 해서 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진보·개혁진영도 보다 적극적으로 성장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된다.” “진보개혁 버전의 성장담론이 필요하다.” 이것이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성장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장을 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지탱될 수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확대 재생산을 계속 해야 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왜 우리는 경제를 더 키워야 되고, 계속 더 만들어야 되고, 또 많은 것을 생산해야 할까?…… 끊임없이 물으셨죠. 이것이 과연 옳고 바른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늘 가지고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언젠가 도교와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장시간 나누었던 기억도 납니다. 인간의 물질적 욕구와 관련하여 서양의 역사는 보다 많은 물질을 공급하고 획득함으로써 이를 채우려 한 경향이 있는 반면, 동양에서는 욕구 그 자체를 줄임으로써 만족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동서양의 근본적인 차이가 어떠했건, 또 어느 쪽이 옳고 그르든 지금으로서는 물질적 생산을 강조한 문화가 우월적 입장에서 세상을 끌고 가고 있다는 생각을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중요한 것은 성장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졌냐와 관계없이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와 정부는 성장 그 자체를 생각의 중심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장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즉 나누어야 할 파이가 커지지 않으면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두들 물질적으로 좀 더 잘 살고 싶은 욕구, 또 올해는 지난해보다 좀 더 잘 살아야 되겠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정작 파이가 커지지 않는다? 혹은 줄어든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커지지 않은 만큼, 또 줄어든 만큼 욕구를 줄여나가게 될까요? 그래서 서로 양보하고 도와주며 살게 될까요? 천사처럼 말이죠……. 아니면 최소한 지금껏 가져가던 양만큼은 가져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래서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또 싸움도 하게 될까요?

 

 

 

 

MIT의 경제학자 Lester Thurow는 『제로섬 사회(Zero Sum Society)』라는 명저를 통해 이 문제를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림 1). 설득력 있는 설명인데요,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더 가져가는 만큼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덜 가져갈 수밖에 없게 되므로 사람들은 서로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싸움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싸움의 결과, 혹은 최종적인 분배의 결과는 어떨까요?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게 될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힘 있는 사람들이 더 가져가게 됩니다. 이들은 예년에 가져갔던 만큼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커지는 자신들의 욕구까지를 반영한 양 만큼 가져가기도 합니다. 자연히 힘없는 사람들은 지난해보다 더 적게 가져가게 됩니다. 그만큼 어렵게 살게 되죠. 계층상승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렵게 되는 이치입니다. 장자나 노자의 말씀을 따라 우리 모두 ‘무위무욕’으로 살 수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장은 중요합니다. 가진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없는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더욱 중요합니다. 국가나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옛말에도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습니다. 일단 파이가 커져야 인심도 나고, 말도 서로 통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성장담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진보·개혁 진영의 성장담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반론을 하겠지요. “무슨 소리! 우리도 성장담론이 있어.” 그렇습니까? 제대로 된 성장담론이 있습니까? 혹시 복지를 통해, 아니면 사회정책을 통해 성장을 시킬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까? 그것 가지고 될까요? 그런 정도로 우리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 진보·개혁 진영의 성장담론은 매우 약합니다. 노동, 인권, 복지, 환경 등, 보존하고 나누는 것에는 강하죠. 그러나 경제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약합니다. 비판에는 강하죠. “이것이 잘못 되었다, 저것이 잘못되었다” 하며 지적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큰 그림을 내어 놓거나 대안을 내어 놓으라면 제대로 내어 놓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성장에 관한 문제는 경제·산업 분야 관료들과 기업을 포함한 시장세력 등, 보수집단의 몫이 되어 왔습니다. 성장담론 자체도 이들 중심의 편향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문제의 인식이나 상황판단이 왜곡되고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진보·개혁 진영의 태도입니다. 대안적 담론의 형성을 위해 고민하기보다는 성장을 위한 고민 그 자체를 통째로 보수주의자 내지는 시장만능주의자로 몰아붙이곤 했습니다. 뒤에 다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만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자’로 몰아붙인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라 생각합니다.


보수진영의 친기업 담론과 그 결과

진보·개혁 진영의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다시 하기로 하고, 먼저 보수진영의 성장담론 문제를 이야기해보죠. 지나치게 일반화한다고 하겠지만 이야기를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어 그러한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묘하게 보수진영과 진보·개혁진영 모두를 비판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이 납니다. 정부에 있는 동안에 맨 날 양쪽으로부터 얻어맞기만 했거든요. 오늘은 반대로 오히려 제가 말 좀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이 문제를 가지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이야기를 좀 해야 되겠습니다.

 

보수진영의 성장담론은 대충 이렇습니다. 기업이 잘 되면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회변화나 기술변화에 맞는 산업구조정도 이루어지게 된다. 자연히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게 되고 가계와 소비도 좋아지면서 선순환 구조로 경제가 잘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친기업’ 기치 아래 기업에 잘해 주어야 한다. 특히 대기업에 잘 해주어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그 아래 하청구조로 엮여 있는 바, 대기업이 잘 되면 그 효과가 트리클 다운(trickle-down), 즉 물 흐르듯 아래로 흘러가게 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이야기하죠. 물론 평생교육이나 복지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산업구조조정이 일어나는 가운데 낙오자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들이 새로운 구조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며, 이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복지 등을 통해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기본은 ‘친기업’이다.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해 주어야 모든 것이 선순환의 구조로 자리 잡게 된다……. 대충 이런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공급자 중심(supply side)의 사고나 자유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갈고 있는 것이지요.

 

이명박 정부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경제정책을 이런 방향으로 잡았었지요. 그래서 기업중심의, 특히 대기업 중심의 정책들을 많이 시행했습니다. 환율만 해도 그렇죠. 수출대기업에 엄청난, - 보기에 따라서는 과도한 특혜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혜성 정책이었지요? 그것뿐이 아니죠. R&D정책 등도 마찬가지였지요. 참여정부 때는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 기초과학 등이 중심이 되었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기업이 알아서 투자할 부분에까지 정부가 돈을 대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외에 감세라든지, 저금리 기조의 유지라든지……. 모든 정책이 기업, 특히 대기업을 향해 있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대기업들이 돈을 엄청나게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투자를 합니까? 아니죠. 유보시키고 있습니다. 나눠주지도 않고요. <그림 2>에서 보시다시피 기업의 저축액이 무려 270조 원에 달합니다. 투자와 소비 모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60%, 무려 100조 원이 늘어난 것이죠. 물론 대부분이 대기업의 돈입니다. 중소기업들이야 비축하고 유보할 형편이 못되지요.

 

 

 

이렇게 되니까 정부가 화가 났죠. 그래서 이런 소리 합니다. ‘아, 당신들 돈 벌게 해줬는데 왜 투자 안 하나?’ 이명박 대통령께서 대기업 총수들 불러놓고 대 놓고 다그치죠. 또 정운찬 전 총리 같은 분은 재임 중에 ‘이익공유제’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나누어주라고 종용을 했었습니다.

 

기업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거죠. 저는 이를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하나는 흔히 말하는 ‘퍼포먼스’입니다. ‘정부와 대통령이 이렇게 열심히 챙기고 있다’ 하고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지요. 모양 갖추기입니다. 쇼를 하는 것이지요. 효과가 있고 없고 간에 일단 국민들에게 챙기는 모습만 보여주면 끝이 나는 겁니다.

 

그다음 하나는 정말 화가 나서 그러는 것입니다. 환율까지 손 봐가며 벌게 해 줬더니 왜 투자도 하지 않고 나누어 주지도 않느냐는 것이죠. 화가 난 거죠. 짜증이 난 거고……. 환율만 해도 사실은 서민들 돈을 털어서 대기업에 가져다준 꼴이 되지 않았습니까? 유가와 중국산 공산품 등 수입물가가 오르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지요. 서민들 가계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 것입니다. 대신 수출대기업은 돈을 엄청나게 벌었지요. 정부가 돈 보따리를 그냥 안겨 준 셈입니다. 그러니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 줬고, 당신들이 어떻게 돈 벌었는데 이렇게 할 수 있어?’ 하는 것이죠.

 

이 두 가지가 다 있다고 봅니다. 쇼를 할 필요도 있고, 실제로 화도 나고, 짜증도 난 것이지요. 그러나 정부와 대통령이 이런다고 기업들이 ‘아, 잘못 했습니다’ 하고 투자를 하고 협력회사 등에게 이익을 나누어주고 할까요. 아닙니다. 투자만 해도 잘못되면 누가 책임지나요? 외국인 대주주나 투자자들이 문제라도 제기하면, 또 주식을 대거 팔고 나가 주가가 떨어지면, 그래서 경영권이 불안해 지는 상황이 오면 누가 책임지죠? 대통령이 집니까? 가당찮은 이야기이죠.

 

 

대기업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시장(市場)이 백배 천배 더 무섭습니다. 옛날처럼 개별적인 특혜 받고 회계부정해서 정치자금 주고받고, 그래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기업을 죽이고 살리고 하던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장(市場)이 무섭지 대통령이 왜 무섭습니까? 그것도 실제 힘쓰는 기간은 3년도 채 안 되는 대통령 말이지요. 그래도 대통령 체면은 살려줘야 하니까 그러는 척하다가 세월 좀 가면 그만이죠. 투자는 장사꾼의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돈이 벌릴 것이라 판단될 때 투자하는 것이지요. 이런 것 모르고 대기업 돈 벌게 해주고, 서민가계 힘들게 했다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 일이지요.


투자부진의 이유

여기서 이제 중요한 이야기를 좀 하고 가야겠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배경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보수고 진보고 할 것 없이 이것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경제ㆍ산업정책을 바르게 수립할 수 없지요.

 

우선 기업의 투자부진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기업이 몸을 움츠리게 되는 보편적 환경과 조건이 있다는 것이지요. 우선 몸을 움츠리고 있는 모습을 한번 볼까요? OECD 자료를 하나 소개하겠는데요, 대충의 트렌드만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림 3>인데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OECD 주요 11개국의 기업들의 저축과 투자, 그리고 net-lending, 즉 유보금의 추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검은 실선은 투자를, 점선은 저축을, 그리고 파란 막대는 유보금을 나타내고 있는데, 2000년대 들면서 기업들이 돈을 벌어 저축을 늘리는 모습과 투자를 늘리지 않아 유보금이 쌓이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GDP의 4% 정도 적자를 보이던 유보금이 2000년대에 들어 GDP의 3% 정도 흑자를 보일 정도로 쌓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투자가 둔해졌다는 것이지요.

 

 

 

 

많은 분들이 이러한 현상을 경기 사이클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든 이대로 계속 가지는 않겠지요. 투자부진을 유도하는 요인들에 대한 처방들이 나오면서 상황이 변화될 겁니다. 그러나 그전에 무엇이 이러한 현상을 초래하느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있어야 되겠지요.

 

먼저 빠른 기술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품이나 기술도 생애주기라는 것이 있지요? 하나의 기술이 발명이 되고, 그것이 생산되어 유통되다가 나중에 다른 기술에 의해 대체되면서 사라지기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애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약 10여 년 전에 이사를 가면서 프로젝션 TV를 하나 샀어요. 큰 맘 먹고 샀습니다. 오십 몇 인치쯤 되는 것이었습니다만, 새집으로 이사 가는 기분에 돈을 좀 썼죠. 제 기억으로 5~600만 원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몇 년 지나니까 이 TV를 볼 수가 없어요. 밖에 나가니까 모두들 LCD TV를 보는데 화면이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또 큰 맘 먹고 TV를 바꿨습니다. 제가 영화를 좋아하니까 그래야 되겠더라고요.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어요. 불과 몇 년 전에 거금을 들여 산 프로젝션 TV를 버릴 때가 없어요. 아무도 안 가져가요. 결국 갖다 버리려고 하니까 구청에 처리비를 내야 하더라고요. 머리 아픈 쓰레기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거금을 투자한 TV가 말이지요. 불과 몇 년 만에…….

 

이 LCD 기술은 얼마 갈 것 같습니까? 이제 조금 있으면 모니터 자체가 필요 없는 그런 화상기술이 안 나온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10년 이상에 걸쳐 십 조원 이십 조원을 들여서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는 사이에 다른 신기술이 나와 버리는 것이지요. 기업입장에서는 투자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시티폰’ 나와서 다들 대박 터뜨린다고 그랬지요? 시티폰 사서 손에 채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없어져 버렸어요. ‘삐삐’도 마찬가지였죠. 어느 순간에 싹 없어져 버렸습니다. 오늘 어떤 신문기사를 보니까 HD 기술을 이용한 디스크 리더기가 나왔는데 나와서 한 달 만에 생산중단이 되었다고 하네요. 생산된 순간 바로 신기술이 나와 버린 것이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오늘날의 기술혁신 사회입니다. 이 속에서 기업들이 쉽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림 4>를 보십시오. 원자재 값이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변합니다. 지금 이게 가격변화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그래프의 경향성만 보고 지나가겠습니다.

 

 

 

 

2000년을 100으로 보고 농산물(푸른색 선)과 금속(붉은색 선) 그리고 에너지(녹색 선)의 가격변화를 보여 주는데요, 보시다시피 등락이 심합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 오르내림이 더욱 심해집니다. 이들 원자재를 사용하는 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도체 가격이나 금값도 한번 볼까요? 먼저 반도체 가격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두 배 세 배를 오르내립니다(그림 5). 오른쪽은 1968년 이후의 금값과 미국 다우존스 지수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글자가 작아 잘 보이지 않아 죄송합니다만 최고 높은 수치가 40배, 제일 낮은 수치가 1배를 나타냅니다.

1960년대 말 다우존스 지수의 25분의 1에 불과했던 금값이 1970년대 말에는 거의 같은 수준이 될 정도로 올랐다가, 이후 다시 40분의 1 가까이 떨어지고,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10분의 1수준이 될 정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가격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등락이 심하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자료가 하나 더 있는데요(그림 6). 아시아개발은행에서 나온 자료인데 성장률하고 물가를 비교하고 있는데, 성장률은 3.2%, 2.7%, 2.9%, 2.6% 이렇게 가는데 비연료부문(non-fuel) 원자재 가격의 변동은 17.4%, 13.5%, -5.9%, -6.4% 이런 식입니다. 변동의 폭이 커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재밌는 것은 말이죠. 이 자료가 2006년 자료인데 2006년에서 2010년 사이의 유가(브렌트유)를 배럴당 57불로 예상했다는 점입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자료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곳에는 적지 않은 경제학자와 전문인들이 일하고 있지요. 에너지 경제 분야의 ‘도사’도 있겠죠. 아마 온갖 정보를 다 수집해서 예측을 했을 겁니다. 그 가격이 57불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제 2010년에 와서는 100불이 넘어 버렸습니다. 전문가들조차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니 기업들이 쉽게 투자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소비자 기호도 굉장히 빨리 변합니다. 어제 ‘17차’ 마시던 사람들이 오늘 갑자기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등의 음료를 마시고, 그러다 어느 날 또 다른 음료로 대거 이동해 버립니다. 어제 ‘걸 그룹’이다 ‘댄싱 그룹’이다 하여 ‘와~’ 하던 사람들이 ‘세시봉’ 이후 갑자기 ‘나가수’ 어쩌고 하며 가창력 위주의 무드로 옮겨 가 버립니다. 소셜네트워크가 강화되면서 대중의 이러한 소비기호 변화는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기업들로서는 고민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변화 따라가야 하지, 원자재 가격 제대로 예상해야지, 소비시장의 기호 따라가야지……. 정신이 없는 것이죠. 위험이 그만큼 커지게 됩니다. 여기에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 이하의 구매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제5강에서 집중 거론할 예정이라 이 자리에서는 중요한 문제라는 지적만 해 두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잘 발달된 리스크 헤징 시스템, 즉 위험을 완화시킬 수 있는 체제가 기업들의 이러한 고민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 등의 등락이 미칠 영향을 최소화시켜 주는 헤징 장치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을 투자자로 유치함으로써 잘못될 경우의 위험을 분산시켜 주는 자본시장이 형성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변화나 원자재 가격의 등락 등이 워낙 빠르고 심한 상황에서, 또 양극화 등의 문제로 소비시장 자체가 얼어붙는 마당에 기존의 리스크 헤징 시스템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 쉽게 사업을 시작하기도, 확대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그 돈을 다시 투자하기가 쉽지 않게 되는 거지요.


떠도는 돈은 어디로? - 금융 파생상품과 부동산

투자가 되지 않고 떠도는 돈은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쉽게, 그리고 짧은 기간에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몰려갔지요. 금융시장으로 흘러가 각종의 투기성 사업과 이와 관련된 파생상품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가계대출을 통해 부동산으로도 대거 흘러가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차원, 특히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결과 투기성 투자와 금융 파생상품들이 얽히면서 돈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부동산은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어 갔습니다. 은행은 넘치는 돈을 우량고객을 넘어 비우량 고객들에게까지 빌려주었죠. 그리고 돈을 빌린 사람들은 이 돈으로 부동산을 샀습니다. 집값이 올라갔겠죠. 그러자 이들은 은행 돈을 더 빌려(mortgage extraction) 또 집을 사거나 소비를 했습니다. 그 결과 집값은 계속 오르고, 소비도 좋았습니다. 소비는 GDP의 70%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표면상 경기가 좋아 보였지요. 미국 이야기입니다.

 

반면, 저축률은 계속 떨어졌고 가계부채는 고공행진을 했습니다. 집을 사는 것도 소비를 하는 것도 모두 부채로 한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가계부채는 금융위기 직전에 가처분소득, 즉 수입에서 세금과 연금 등 의무성 지출을 뺀 금액의 140%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악의 수준이었습니다.

 

가계가 저축을 하면 기업이 이를 빌려가 투자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경제죠. 그런데 금융위기 전의 미국은 이렇게 기업이 저축을 하면 가계가 빌려가 부동산을 사고 소비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이런 경제가 온전할 리 있겠습니까? 터지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림 7>은 당시의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왼쪽의 푸른 선은 저축률이 제로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요, 오른쪽 그래프는 가계부채가 가처분소득 대비 140%에 육박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왼쪽의 붉은 선은 소비가 GDP의 70%까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모습이죠.

 

 

<그림 8>도 흥미롭습니다. 대도시 지역에서의 부동산가격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보시는 것처럼 2000년대에 들어와 수직상승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2000년을 100이라 했을 때 2006은 200이 됩니다. 그 사이에 두 배가 뛰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닙니다. 정도는 덜 하지만 유럽 등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독일과 일본 등 경기가 좋지 않았던 국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부동산 붐이 일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형태도 비슷했습니다. 국토 전체의 땅값이 다 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도를 중심으로 한 특정지역, 그것도 그 안에서의 또다시 환금성이 높은 특별한 지역만 오르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지역 같은 경우죠. 넙치는 유동성 자금과 투기성 자금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림 9>의 이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왼쪽은 영국이고 오른쪽은 프랑스입니다. 왼쪽의 붉은색이 런던인데 2000년대 초에서부터 200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두 배 이상 가격이 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의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죠. 2000년대 초부터 오르기 시작해 6~7년 동안 두 배 이상 상승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담 한마디 하고 갈까요. 여담이라 하기엔 너무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혹시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아십니까? 약 150%입니다. 앞서 금융위기 전의 미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40%라 했습니다. 세계 최악의 수준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아래 우리는 이제 그 수준마저 넘었습니다. 저축률은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90년대 후반만 해도 20%에 육박했던 우리의 개인저축률은 이제 3% 정도입니다. 이 역시 세계 최하위입니다. 고환율과 통화량 확대, 그리고 이로 인한 당연한 결과로서의 인플레이션 등으로 돈을 한쪽으로 몬 결과이죠. 반면 기업저축률은 2011년 3월 현재 약 20% 수준에 있습니다. 투자를 하지 않고 유보하고 있다는 이야기이죠. 이제 우리 역시 기업이 저축하고 가계가 그 돈을 빌려 쓰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걱정되시지 않습니까?

 

하나 더 이야기하고 가겠습니다. 부동산이야기입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세계 경기의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조치였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가 어느 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되면 금융이 무너지면서 우리 경제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걱정이 없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종합부동산세 신설, LTV와 DTI, 실거래가 등기부 기재의무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습니다. 욕 많이 먹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있는지, 또 잘못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에 대해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대 놓고 비난했습니다.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심지어 OECD의 고위 정책담당자 한 분도 부동산 가격상승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데 왜 한국만 유난히 강한 정책을 쓰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 쪽으로 지나치게 몰리는 경향이 있다. 서울의 땅은 돈 있는 국민 모두의 투자대상이고, 서울의 땅값은 온 국민의 관심사이다. 다른 나라보다 더 나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다른 국가들도 한국을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같은 경우 부동산으로의 자금 집중현상과 이로 인한 가격상승 현상이 이미 우려할만한 수준을 넘고 있다. 결국은 많은 문제를 낳을 수 있다.” 2007년 1월에 했던 이야기입니다.


왜 성장담론인가?

지금까지 무엇을 이야기했습니까? 기업에 잘 해주기만 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업이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해 주기만 하면 투자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도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보수적 시각으로 경제 운영하다간 부동산 투기나 일으키고 서민경제 엉망으로 만들고, 나라 망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진보·개혁 진영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이 또한 지나친 단순화라 욕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이런 거죠.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장소득 격차를 줄일 필요가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대기업 중심의 구도와 사용자 중심의 구도, 정규직 중심의 구도 등을 바로 잡아야 한다. 아울러 시장소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약한 자들의 교섭권과 정치력이 대단히 중요하므로 정부규제 등을 통해 이를 충실히 보장해 주어야 하며, 이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산업구조조정과 시장개방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또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장소득은 차이가 크게 날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는 재정정책과 복지정책을 통해서 이를 보완해 주어야 한다. 인력양성과 과학기술 수준의 제고야말로 가장 좋은 성장정책인 만큼 국가는 공교육의 강화와 평생교육체제의 확립 그리고 R&D 등을 위해 크게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국가는 적절한 수준의 조세를 통해 이 모든 것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여야 한다.

대충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다른 이야기가 많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큰 줄기는 이러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케인즈 경제이론 등을 반영한 수요중심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국가재정의 역할과 복지 등을 강조하는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성장’이 있습니까? 물론 있지요.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구매력을 가지고, 또 국가가 재정을 통해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크게 하게 되면 큰 성장의 요소가 되지요. 인적자원을 육성하고 R&D에 힘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을 위한 중요한 요소들이죠. 그러나 어딘가 좀 부족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것으로 강의의 앞부분에서 말씀드린 성장의 필요성에 관한 충분한 답이 될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부족하죠. 예컨대 글로벌화는 우리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대세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산업구조는 어떻게 되어야 하죠? 지금 이대로 둬도 좋은 겁니까? 지금과 같은 산업구조가 국민이 요구하는 고임금 구조와 잘 어울릴까요? 말하자면 계속 월급 올려주면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산업들인가요? 그래서 우리 경제와 산업 전체가 글로벌 경쟁력을 그대로 계속 유지하게 될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이 산업구조로는 안 됩니다. 고용이 계속 창출되지도 않고, 고임금의 일자리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 많이 들으셨지요. 몇 년 전의 일입니다만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에 가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정몽구 회장과 슬로바키아 수상과 함께 준공식을 하고 용접공장과 조립공장 등을 돌아보았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런데 그 큰 용접공장과 조립공장 안에 사람이 안 보이더군요. 수백 대의 로봇이 움직이며 일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 회장께 물었지요. “이 로봇 움직이는 사람들은 어디 있나요?”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관제실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 딱 네 명이 여유 있게 그 많은 로봇들을 움직이고 있더군요. 고용 없는 성장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직업이 많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직업이 생기기도 하지만 없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디오 가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니까요. 그런데 요즘 비디오 가게 있습니까? 다 없어져 버렸죠. 케이블에서 DVD 바로 받아서 보지 않습니까? 또 예전에는 사진 찍으면 다 Dp점 가서 현상하고 인화했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노동의 종언(The End of Work)』을 쓴 제레미 립킨(Jeremy Rifkin)은 2050년이 넘어가면 경제 인구의 5%가 전 산업을 다 돌리게 될 것이라고까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지금의 산업구조는 자동화나 전산화에 매우 취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세 자영업자가 경제인구의 30% 정도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반실업의 상태에 있는 분들이 대단히 많죠. 이들을 그냥 둬도 좋은 겁니까?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최근 진보진영이 매달려 있는 ‘복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까?

 

흔히들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하면 ‘일자리 나누기’나 ‘사회적 일자리’ 등을 이야기합니다. 주로 진보진영에서 그러죠. 저는 무책임한 태도라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니거든요. 물론, 틀린 말 아닙니다. 일자리 나누기해야 되고 사회적 일자리 많이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서구사회하고 달리 앞으로 고임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서비스 산업입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약한 편이죠. 발전시키고 확대시킬 가능성이 매우 컵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특정 영역을 지적해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글로벌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서비스 산업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성장담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남의 이야기만 가지고 옵니까?

 

사실 우리나라는 서비스 산업을 잘할 수 있는 국가입니다. 글로벌 표준을 훨씬 뛰어넘는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국가입니다. 당연히 서비스 산업을 세계로 가져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소비자인 국민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비스 산업 이야기만 나오면 강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누가 그러냐고요? 진보진영이죠. 규제완화 아니냐? 대기업에 특혜 주자는 것 아니냐? 하며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고 꼼짝도 못하게 못을 박아 버립니다. 산업구조에 대한 올바른 담론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나오지는 않지요.

 

산업구조에 대한 생각이 약하니 어떻게 구조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시각도 약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처럼 국정원과 검찰과 그리고 관치금융 등을 통해서 할지? 아니면 정부가 돈을 많이 마련해서 그 돈으로 유인을 할지? 또 아니면 개방정책이나 시장경쟁의 힘을 빌려 할지? 이에 대해 진보·개혁진영에서 얼마나 고민했을까요? 다음 강의 때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만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이러한 현실을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성장담론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습니다만 진보진영은 이러한 고민을 ‘신자유주의자’로 몰아붙이면서 정부와 대통령의 등에 칼을 찔렀습니다.

한두 가지 더 이야기해 볼까요? 앞서 잠시 이야기 드렸습니다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리스크 헤징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과거 체제는 무너지고 새로운 체제는 제대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3공화국에서 5공화국까지의 시절을 생각해 보면 바로 상상이 되실 겁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나섭니다. “당신은 조선을 하고, 당신은 반도체를 해.” 그리고는 친절하게 금융까지 주선을 해 줍니다. 기업은 당연히 하지요. 당시의 권력구조 아래 안 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무조건 합니다. 그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되지요? 괜찮습니다. 실패한 것이 다소 서운하겠지만 그렇다고 죽을 일은 아닙니다. 어차피 정부가 하라고 해서 한 사업입니다. 잘못되면 간척지라도 개발하게 해서 손실을 보전해 줍니다. 게다가 관치금융으로 은행 돈 빌려서 한 사업이죠. 망해봐야 손해날 것이 없었습니다. 확실한 리스크 헤징이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정부가 리스크 헤징을 해줬습니다. 대기업 아래의 하청구도에 흡수됨으로써 리스크를 줄이기도 했습니다만, 핵심은 부동산 가격이었습니다. 공장을 하다 망해도 땅은 남았습니다. 부동산 가격을 정부가 적절하게 유지해 주거나, 오르도록 해 주면서 너도 나도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던 거죠. 땅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 많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렇지가 않습니다. 더 이상 국가나 정부가 해 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리스크 헤징을 해 준다고 나서는 순간, 바로 ‘게이트’가 됩니다.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가격을 계속 올리면 결국은 그것이 상품이나 서비스의 단가에 반영이 되죠.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사회갈등을 심화시킵니다. 국민들이 그냥 보고만 있지 않지요. 더 이상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더욱이 이제 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산업의 비중도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졌지요. 경제와 산업 전체에 걸쳐 헤징 효과는 없고 오히려 부담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큰 것이죠.

 

한마디로 전통적인 리스크 헤징 메커니즘이 무너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기업은 투자에 따른 불안을 많이 느끼게 되죠. 게다가 우리는 퇴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패자부활의 기회도 없습니다. 사업을 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노동문제다 뭐다 하여 쉽지가 않습니다. 또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정비를 해서 다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합니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한번 망했다 하면 다음날부터 검찰이나 경찰에 붙들려가 곤욕을 치르곤 합니다. 그만큼 시작하기가 겁이 난다는 뜻입니다.

 

리스크 헤징이나 퇴로문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제대로 된 자본시장의 육성도 매우 중요합니다. 금융기관들만 해도 경영이나 기술을 평가할 능력도 없이 부동산 담보 잡고 돈 빌려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바, ‘전당포’죠. 이래가지고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고, 혁신형 기업들이 나오겠습니까?

 

창업을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름대로의 열정과 경험을 가지고 사무실을 엽니다. 처음에는 그동안 저축했던 돈과 퇴직금을 털어 넣지요. 그다음에 어려워지면 집을 팔아 넣습니다. 그리고는 부모 형제와 처가 집 돈을 털어 넣습니다. 그다음에는 요? 소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를 지나게 됩니다.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지만 돈의 없으니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두고 성장을 생각할 수는 없지요.

물론 돈을 빌리는 쪽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기업운영과 기업회계의 투명성이 낮은 것이 문제지요. 은행 입장에서는 믿을 수가 없으니 담보 없이 빌려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업의 투명성은 어떻게 높이느냐? 각종의 유착과 비리가 없어져야 하겠지요. 정치권과 행정기관을 상대로 한 비리와 부정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등을 통해 로비를 하는 방법 등 합법화 된 것이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이 문제는 제4강에서 이야기 드리기로 하지요……. 유착과 비리가 없어야 경영이나 회계도 투명해 질 수 있는데, 이 점과 관련하여 기업과 기업 사이의 부패와 비리의 관행을 바로 잡는 것도 큰 숙제의 하나가 됩니다.

 

이 외에도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이지요. 이제 강의 막바지라 결론을 말씀드려야겠는데요, 한마디로 “성장담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성장담론이 아니라 앞의 이야기 외에 많은 것을 포함하는 “진보·개혁 버전의 성장담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진보·개혁진영에서는 ‘동반성장’ 이야기를 즐겨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성장’보다는 ‘동반’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사회정책 쪽을 강조하여 이야기합니다. 복지나 평생교육체계, 공교육 등의 이야기이죠. 균형 있는 ‘동반성장’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가 진보진영이 자주 언급하는 스웨덴 정도 되는 국가 같으면, 아니면 다른 잘 사는 유럽국가들 같으면 복지나 평생교육체계 등의 이야기만 하면 됩니다. 말하자면 자본시장이 그 정도 잘 자리 잡혀 있고 혁신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시장 내·외적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면 사회정책적인 측면만 이야기해도 된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분명 아니지요. 우리가 그들 국가를 따라갈 것은 복지뿐만이 아닙니다. 개방체제나 산업체계, 금융체제나 자본시장 체제 등도 참고해야 하는 겁니다. 왜 그 나라의 복지만 이야기합니까?

 

복지가 없이는 성장이 어렵습니다. 이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복지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나 이에 관심을 둔 단체들은 계속 이 이야기를 끌고 가주어야 합니다. 복지도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니까요. 그러나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사람들이, 즉 정치권이나 정치사회지도자들이 그러면 곤란하지요. 보다 종합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넓은 영역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복지 없이는 성장을 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더욱 분명한 것은 복지만으로 성장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성장은 그 나름대로 그 사회에 맞는 성장담론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외 교역이 활성화되어 있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뻗어나갈 수 있는 잠재성이 큰 나라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지요. 다른 나라와는 또 다른 상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스웨덴에도 핀란드에도 나름대로의 성장담론이 있고 경제·산업정책 담론이 있습니다. 글로벌 체제에 맞는 산업을 키우기 위해 전 사회가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진보라면 이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저성장의 아픔은 고스란히 서민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진보가 성장에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복지담론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복지 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을 걱정합니다.

 

같은 일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장을 추구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를 예를 들어보지요. 제주특별자치도는 네 가지 토끼를 한목에 잡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그리고 서비스산업육성과 규제완화입니다. 이를 위해 심지어 제주도를 아예 우리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었습니다. 그래서 1국가 2체제 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영어공영권 구상도 있었고요.

 

잘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도 그렇습니다. 한 가지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거든요. 누가 하고 그 내용이 어떠하냐가 중요하지요. 보수집단에서 이 문제를 추진했다면 아마 규제완화와 서비스산업 육성 등의 문제만을 앞세웠을 겁니다. 그러나 진보 쪽에서 추진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러한 개혁조치의 과실이 제주도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겠죠. 당연히 추진의 절차와 과정부터 크게 다를 것이고요.

 

같은 개방정책을 하더라도 완전한 시장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개방 그 자체에 신경을 쓸 것입니다. 그야말로 국가의 역할은 최소화한 가운데 말입니다. 그러나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요. 개방조치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배려하는데 큰 신경을 쓸 겁니다. 즉 그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데 신경을 쓰지요. 국가의 역할을 강하게 정립하는 가운데 말입니다. 똑같은 사업을 하더라도 그 내용이 다를 수 있는 겁니다.

 

참여정부가 잘하기만 했겠습니까? 많은 부분에 잘못이 있었지요? 그러나 성장에 대한 이러한 고민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진보·개혁 버전의 성장담론을 내어 놓으려 노력을 했지요. 그때마다 그 내용이나 진정성과 관계없이 얻어맞았습니다. 누구로부터 맞았냐고요? 진보세력으로부터 맞았습니다. 매섭게 맞았습니다. FTA 이야기만 나오면 그 내용과 철학,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는 판단의 근거를 바르게 생각해 보지고 않고 그냥 때렸습니다.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이 또한 기본적인 내용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때렸죠.

 

한 예가 되겠습니다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참여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료보험을 민간보험으로 대체하려 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삼성병원을 영리법인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한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런 적 없습니다. 특정지역 내에 영리법인을 허용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동네 의원은 이미 영리기관 아닙니까? 경제자유구역 등 특별한 지역에 한해서 대형 병원도 그러한 영리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추진하는 것이 아니고 공공의료를 획기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의료보험제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고요. 삼성병원은 정말 웬 난데없는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참여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했었다’는 내용의 글이 실린 책을 보았습니다. 누가 퍼뜨리고 누가 옮긴 이야기들일까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해서야……

강의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대통령쯤 되는 사람이라면 성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노무현 대통령은 확대 재생산을 계속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던지시던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지도자로서 성장을 고민했었습니다.

 

 

 

 

아마 진보진영에서 다음 대통령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까요? 성장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반드시 생각하고 성장정책을 중요한 정책으로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복지만으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 겁니다. 산업구조조정과 서비스 산업을 포함한 신산업의 문제, 자본시장과 금융의 문제 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 때 어떻게 할 겁니까? 다시 대통령의 얼굴에 ‘시장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의 낙인을 찍고 그 등에 칼을 꽂을 건가요? 이런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해서는 진보정권과 개혁정권이 설 수 없습니다. 설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 보수집단은 이미 복지부분이나 사회정책에 대해서 상당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뉴라이트가 말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보십시오. 공동체자유주의가 뭔지 진보진영은 아예 읽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읽을 이유가 있습니다. 이분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본적으로 글로벌차원의 분업이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그 글로벌 분업체계 속에서 산업구조가 어떻게 개편되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구조개편 과정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을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복지문제와 사회정책의 문제가 진보ㆍ개혁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흔히들 박근혜 단순히 재정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문제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문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모순구조에 대한 큰 인식차이가 있습니다. 제5강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한두 해 재미있는 화두가 있었습니다. 경제·산업정책과 관련된 국가의 역할에 관한 논쟁입니다. 장하준 교수가 화두를 던진 셈이죠. 최근 좌우로부터 다 얻어맞고 있지만……. 저도 마음에 썩 들지 않습니다. 특히 정부의 강하고 직접적인 산업정책적 역할을 주문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강하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도 해 봤거든요.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만 실제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논리를 떠나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제3공화국이나 제5공화국의 이야기를 지금의 이야기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이야기를 던졌고, 이로 인해 국가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한 동안 뜨거웠습니다. 이런 논쟁이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다름 아닌 진보·개혁진영에서 일어났으면 합니다. 성장담론을 준비하는 중간단계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성장담론을 준비하자! 진보·개혁 버전의 성장담론을 이야기하자! 오늘의 주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병준 / 前참여정부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