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지권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역삼각형 권력구조와 대통령의 한계!

장백산-1 2011. 7. 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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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역삼각의 권력구조와 대통령의 한계
2011년 07월 07일 (목) 00:31:35 김병준(前참여정부정책실장) webmaster@socialdesign.kr

노무현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 김병준 前참여정부정책실장 기념강연 제4강
 

   
 

집권하면 세상 바꾼다?: ‘불쌍한 아이크(poor Ike)’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집권해야 한다고.......혹은 재집권해야 한다고....... 그래서 세상 좀 바로잡고, 나라 제대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집권하거나 재집권하면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을까요?

 

오늘은 바로 이 질문을 던져 보았으면 합니다. ‘집권하면 나라 좀 바꿀 수 있나?’ ‘대통령이 정말 그렇게 센가?’ 이런 질문입니다.

 

나름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이야 늘 그렇게 이야기하죠. 집권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표주면 집권해서 세상 바꾸겠노라고....... 그런데 그런 선동 믿고 기대했다가 뜻대로 안 되면 어떡하지요. 하늘보고 침 뱉는 짓이나 하지 않을까요? ‘투표한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둥 해가며 말이죠. 또 같은 편끼리 손가락질 해가며 책임소재를 다투기도 하겠죠. 그러다 결국 ‘차별화’다 뭐다 하며 등 돌리고 갈라서고, 적군과 아군도 구별하지 못한 채 동지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하죠.

 

결론을 먼저 이야기 드릴까요? 지금과 같은 체제,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집권해도 세상 그렇게 못 바꿉니다. 대통령도 그렇죠. 흔히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글쎄요? 그렇게 보이겠죠. 특히 일보다는 사람이나 자리, 아니면 특혜 등에 관심 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죠. 한 자리 주거나 작은 혜택 베풀 수 있는 힘도 있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잡을 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일’을 중심으로 해서 봐 보세요. 우리사회를 바로 잡을 근본적인 일들을 생각해 보세요. 할 수 있는 일,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세상 그렇게 크게 바꾸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먼저 드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권하지 말자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무엇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알고 집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죠. 또 더 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며, 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지도 묻게 됩니다. 오히려 집권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나 선동이 우리를 죽이고, 우리의 미래를 죽이고 있는 겁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우리도 비슷해져 간다는 생각에서 말이지요. 대통령 연구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노이슈타트(Richard Neustadt)의 Presidential Power, 즉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책의 머리 부분에 있는 이야기입니다(그림 2).

 

미국의 33대 대통령 트루먼(Truman)이 8년간의 대통령직을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집무실을 둘러보면서 그 자리에 앉게 될 새 대통령을 생각합니다. 상대정당인 공화당 소속으로 군 출신이자 2차 대전의 영웅이었던 아이젠하워(Eisenhower)죠. 그리곤 한 마디 합니다. "He will sit here." 이 친구가 곧 이 자리에 않겠지. "and he will say, 'Do this do that." 그리고는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겠지. "And nothing will happen." 하지만 되는 게 아무 것도 없을 걸. "Poor Ike." 불쌍한 아이크(아이젠하워의 애칭). "It won't be a bit like army." 군대 같은 줄 알겠지. 하지만 천만의 말씀. "He'll find it very frustrating." 엄청 실망하게 될 거야. 


 

   

 

 

 

얼마 후 아이젠하워 정부가 들어섰죠. 실제로 하고 싶은 대로 못했습니다. 지난 번 강의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경제사회정책만 하더라도 방향을 틀고 싶어 했죠. 지지자들도 당연히 그렇게 기대했고요. 드디어 ‘좌파’가 만든 뉴딜정책의 뿌리를 뽑을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못했습니다. 소득세율도 말이죠. 최고세율을 90%대로 그대로 유지합니다. 나중에 내린다는 것이 겨우 1~2% 내려 89%쯤 되죠. 꼼짝 못하고 그 경향성을 그대로 유지한 것입니다.

 

물론 대통령의 권력의 대한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죠. 대통령 연구의 또 다른 고전이라 할 수 있는 Imperial Presidency, 즉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책을 쓴 슐레징거(Arthur M. Schlesinger, Jr.)의 견해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그림 2). 닉슨대통령 시기를 주로 관찰한 슐레징거는 대통령이 초헌법적인 권한까지 행사하는 상황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맞을까? 앞서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만 저는 노이슈타트 쪽이 옳다고 봅니다. 초헌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던 닉슨은 결국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만한 견제 시스템이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실제 행사할 수 있는 힘의 정도가 그렇게 크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슐레징거도 이 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은 비교적 강한 편입니다. 미국을 비롯해 대통령중심제를 취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대통령에 비해서 말이죠. 법적 지위야 다 같이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고, 국군통수권자이죠. 그러나 의회와의 권한관계, 내각 등에 대한 인사권, 그리고 행정권과 재정권 등 권한의 범위와 깊이가 다릅니다.

 

미국만 해도 의회의 권한이 우리보다 훨씬 강하죠. 그만큼 대통령의 권한이 약해지는 것이고요. 의회는 장관직과 대사직을 비롯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는 주요 직위에 대해 인준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예산과 정부조직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훨씬 폭넓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산편성권만 해도 원래부터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 의회의 권한입니다. 정부가 실질적 편성을 합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회를 지원하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원래 권한이 의회에 있으니 의회는 행정부가 작업한 내용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지출항목을 새로 넣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습니다. 늘리거나 줄이는 것도 마음대로죠. 깎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우리의 국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의회의 권한이 이렇게 큰 만큼 대통령의 권한은 그만큼 줄게 되죠.

 

지난 번, 한미 FTA 협상을 할 때도 두 나라에 있어 대통령의 법적 권한이 어떻게 다른지 확연히 드러나더군요. 우리나라는 통상교섭을 하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국회는 이를 비준하는 권한만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우리의 통상교섭단은 오로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교섭활동을 합니다. 국회에는 사사건건 보고할 이유가 없습니다. 비밀유지도 그만큼 철저할 수 있죠.

 

그러나 미국은 통상교섭권을 의회가 가지고 있습니다. 행정부는 의회의 위임을 받아 교섭활동을 하는 거죠. 그래서 미국의 통상교섭단은 교섭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의회가 요구할 때 마다, 아니면 의회가 요구하지 않아도 상시적으로 보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과정이 복잡하죠. 자세히 이야기 드릴 일은 아닙니다만 이러한 차이가 교섭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죠. 예컨대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우리 협상단이 훨씬 더 유리하고 강한 입장에서 협상을 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자, 여기까지는 그런데요. 한국의 대통령이 진짜로 강하냐? 제 결론은 이미 말씀 드렸죠. 아니라는 걸로 말이죠. 특히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 등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복이 많아서이겠습니다만 참여정부 5년간 꼬박 대통령 모셨습니다. 바로 옆에서 말이죠. 다른 분들은 오래 모시더라도 중간에 한 번씩 쉬기도 하고, 내각으로 나가 한 발자국 떨어져 지내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어쩌다 보니 거의 5년 내내 가까이에서 모셨습니다. 정책관련 일을 주로 하다 보니 내각과 관료사회, 그리고 정당과 국회와의 접촉도 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의 경험과 기억들을 바탕으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료조직의 문제

직업공무원제도
앞서 미국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보다 약하다 했는데, 공무원을 임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닙니다. 우리보다 강하죠. 외부 인사, 즉 자신의 철학과 정책방향을 따르는 인사들을 공무원으로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 대통령보다 훨씬 더 큽니다. 경우에 따라 국장 이상의 자리는 물론 심지어 과장까지 임명하기도 합니다. 직업공무원제도의 우산 속에 있는 공무원 수가 우리보다 훨씬 적은 것이죠.

 

헥클로(Hugh Heclo)라는 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이방인의 정부(government of strangers)'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람들이 관료조직 속으로 대거 들어 왔다가 정권이 바뀌면 대거 나가는 현상을 말하는 거죠. 행정의 연속성이라는 점에서, 또 직업공무원과의 마찰이 잦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지만, 일단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관료조직을 이끌고 통제하는 토대가 되겠죠? 정권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에 충실한 사람들이 곳곳에 위치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는 아닙니다. 대통령이라 하여 함부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장관이나 차관, 그리고 일부 개방직 정도죠. 결국은 기존 관료조직을 손발로 하여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이 관료들은 대부분 신분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직업공무원제도의 우산 아래 있는 거죠. 1급은 정무직공무원과 직업공무원 중간쯤에 위치하는 관계로 대통령이나 정부가 굳이 내 보내자면 내 보낼 수 있습니다. 각 부처의 차관보, 기획관리실장 등이죠. 그러나 2급 이하부터는 철저히 신분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함부로 내보낼 수가 없죠. 그만큼 대통령의 리더십과 통제력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는 관료출신들을 활용하는 일종의 문화가 있습니다. 1급 공무원의 거의 다가 직업관료들이고, 차관도 대부분 관료출신들이 맡습니다. 심지어 장관 자리에도 직업관료 출신들이 상당수 임명되죠. 대통령이라 하여 이러한 관행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예컨대 자신의 오랜 참모나 정치적 동지들을 함부로 임명할 수 없는 거죠. 관료집단의 영향력이 큰데다 정치적 임용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크기 때문이죠. 물론 정당이나 정치권이 이들을 대체할 능력 있는 인물들을 길러내지 못하다보니 더 그런 것이고요.

 

커뮤니티
그런데 이 관료집단은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부서지지 않는 관료문화죠. 대표적인 게 부처이기주의인데요, 관료조직의 대부분이 이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곧 이어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부처이기주의 말고도 여러 가지 이야기 드릴 수 있겠는데요, 오늘은 선후배 네트워크 등의 비공식 요소를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즉 공동체 이야기만 드렸으면 합니다. 부처이기주의와 이러한 커뮤니티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얽혀 있기도 합니다.

 

커뮤니티는 단순히 관료 선후배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료조직 외부의 이해관계자와 고객집단까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정서적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네트워크이고 공유된 정서라 눈에 잘 띄지도 않죠. 이 커뮤니티의 힘이나 영향력이 때로는 대통령의 그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특히 집권 후반기에는 말이죠.

 

경제관료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의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장관 차관 되는 것도 있겠지만, 민간 부분에 나가서 높은 보수 받고 좋은 대우 받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일 수 있습니다. 장관하고 차관하는 것도 오히려 민간부문에서 더 높은 대우를 받기 위한 과정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민간부분의 그런 자리를 주선하죠?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는 선후배들입니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피아’다 뭐다 하는 겁니다. 선후배끼리 밀고 당기고 하는 거죠. 임기 5년의 대통령, 특히 임기 후반의 대통령이 무슨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장ㆍ차관도 한 번 해 봐야겠고 승진도 해야 하니, 또 대통령이라 하니 그 앞에서 그냥 잘 하는 거죠. 물론 본인의 철학과 일치하거나 커뮤니티의 분위가 대통령을 지지하는 상황이면 열심히 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저 형식이나 차리게 됩니다. 진보ㆍ개혁 성향의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이 그렇지 않은 대통령이나 집권세력보다 더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관료집단이나 그 커뮤니티가 대체로 보수적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더 철저하고 설득력 있는 정책 펙키지와 집권플랜이 있어야 하는 거고요.

 

경제관료들만 이러는 게 아니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을 한 번 생각해 볼까요? 군도 나름대로의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그 커뮤니티의 정서가 때로는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의 철학이나 정책보다 우선합니다. 대통령은 길어야 5년이지만 그 커뮤니티의 생명은 그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기 때문이죠.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예컨대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가진 가운데 군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그와 정반대라면 군의 간부들은 어느 쪽을 더 따를까요.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비협조가 커뮤니티에 의해 더 큰 명예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면 말이지요.

 

조직이기주의와 갈등
커뮤니티 문제와 연계된 사안이기도 합니다만 관료조직 내의 조직이기주의와 그로 인한 조직간 갈등도 대통령의 지도력과 개혁의지를 꺾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다툼 같은 거죠. 대통령이나 정부의 중요한 과제들이 이러한 이기주의의 덫에 걸려 꼼짝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검찰과 경찰의 싸움은 눈에라도 잘 띄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부처이기주의나 부처 내의 조직이기주의 현상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어제도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거죠.

 

참여정부 때도 이 문제로 개혁과제들이 표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청와대나 총리실이 나서서 가라앉히거나 조정을 하죠. 때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사건건 어떻게 나서겠습니까? 눈에 띄는 중요한 문제들에나 나서는 거죠. 나머지 크고 작은 것들은 알게 모르게 그대로 진행되죠. 그래서 대통령과 정부의 개혁의지나 개혁과제의 발목을 잡는 거고요.

 

또 실제로 청와대와 총리실 등의 조정이 쉽지만도 않습니다.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강제로 조정을 하는 경우 반드시 후유증이 따릅니다. 관료조직과 이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도 문제이지만, 이들과 연계된 외부의 고객집단까지 들고 일어나게 되죠. 쉬운 일 아닙니다.

 

기억나는 일 하나 소개할까요? 참여정부 초기에 신성장동력사업이 있었습니다. 홈오토메이션, 텔레마틱스(telematics), 차세대 전지, 등 10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하는 사업이었죠. 미래의 먹 거리를 만드는 사업으로, 이명박정부도 이 개념을 그대로 받아 주요 R&D 사업을 국정과제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규모 재정투자를 수반하는 사업이었고요.

 

문제는 이 사업들의 관할부처를 정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산자부와 정통부 그리고 과기부가 모두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는 하는 거였죠. 사업 하나하나 마다 관할 문제에 시비가 걸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업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표류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청와대의 과학기술보좌관이 조정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손을 들고 말았죠. 갈등이 워낙 심하다 보니 과학기술보좌관까지도 부처 간 갈등의 한 가운데 놓이게 된 거였습니다. 그 다음 경제부총리로 하여금 이를 조정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역시 부정적이었습니다. 경제부총리도 손을 들고 말았던 거죠.

 

사실 당시, 총리나 부총리가 이러한 중요 사안을 조정하는 기능이 매우 약했습니다. 고쳐야 할 부분이었죠. 특히 부총리는 더 했습니다. 이름만 부총리라 했지 실제 부총리 기능을 못했죠. 동료 장관들 앞에 나서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할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청와대 중심으로 돌아갔던 우리 행정의 한 속성이었죠.

 

쉽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거 참, 이상하다’ 하시겠죠. ‘아 그까짓 것 장관들 모아 놓고 지시하면 될 것 아니냐?’ 하시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선 장관들조차 합의를 보고 싶어도 쉽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부처의 공무원들이 다 쳐다보고 있고, 그 뒤에는 앞서 말씀드린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양보를 하는 순간, 공무원이나 커뮤니티로부터 ‘OO부를 죽인 무능한 사람’이나 ‘OO부를 팔아먹은 배신자’란 비난을 듣게 되죠. 이런 비난은 평생을 따라 다니게 됩니다. 때로는 오히려 불리한 조정안에 반발하고 사표를 쓰는 것이 명예로운 선택이 되죠. 커뮤니티의 존경이 따르게 되니까요. 사태가 그 정도로 가게 되면 정부는 큰 혼란에 빠지는 거죠.

 

어쨌든 대통령은 속이 탔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사업이고, 그래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바로 대통령의 의지를 실어 추진하는 사업인데, 이것이 1년씩 표류하고 있었으니까요. 계속 조정을 지시하고 했지만 조정이 안 되는 겁니다.

 

결국 대통령이 직접 나섰죠. 대통령 주재 관계 장관회의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도 장관들 간에 언쟁이 오갔죠. 대통령께서 서둘러 회의를 정리하셨죠. 그러더니 저한테 조정을 하라 지시하시더군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 왜 저에게 이 업무를 맡기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죠. 단순한 조정으로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나게 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신 거죠. 그래서 아예 과학기술분야의 조정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조직개편까지 시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결국은 이것이 과학기술부가 부총리 부처로 격이 높아지고, 그 안에 정부 R&D 예산을 총괄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라는 차관급 기구가 하나 더 생기는 걸로 발전하게 됩니다.

아무튼 일차로 부처 간의 조정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부처의 입장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예들이죠.

 

한 번은 한 부처의 차관보가 찾아 왔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소속 부처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처 간의 갈등에 대한 고민을 전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분 말씀이 공무원으로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격지심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다른 부처의 활동을 모니터하고 그에 대비한 ‘작전’ 짜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는 겁니다. ‘저 쪽 부처의 오늘 동향이 어떠냐?’ ‘협회를 만들었어? 그러면 우리도 빨리 사람 모아 협회 만들어.’ ‘OO부의 누가 청와대 누구한테 전화했다는데, 그러면 우리도 누구를 찾아가고.........’ 매일 이런 거 했다는 거죠. 집에 가서까지 그런 전화 주고받고 하니까 부인이 그러더랍니다. “당신들 월급 받고 사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그러더니 또 한 번은 장관 한 분이 찾아 왔습니다. 사표를 내겠다는 거였습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 부처의 1급 이상의 공무원들 사표를 모두 받아 낼 테니 다른 부처 하나와 통합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싸움과 갈등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통합해서 상대 부처의 공무원들이 1급 이상 장관까지의 모든 자리를 다 차지해도 좋다는 거였죠.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죠. 그런다고 조직 간의 갈등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고요. 하여간 그렇게 복잡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리저리 연구하고 궁리를 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10개의 사업 중 산자부가 5개, 정통부가 4개, 그리고 과기부가 1개를 하기로 결정했죠. 대통령께 보고를 드린 후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총리실 국무조정실장, 그리고 세 부처의 장관들이 모두 앉아 있는 자리에서 ‘통보’를 했습니다.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거였죠.

 

그러자 결국 예견된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과기부장관이 사표를 내겠다는 거였습니다. 이대로 부처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거였죠.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하시라고 말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마구잡이로 결정을 했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항의성 사표를 냈었다”고 말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결국 사의 표명하셨고, 얼마 후 대통령은 이를 접수했습니다.

 

과기부에 1개의 과제만 배당한 것은 사실은 과기부를 부총리 부처로 만들어 R&D 예산을 총괄하게 한다는 계획 속에서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자연히 ‘심판’의 역할을 많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선수’의 역할은 줄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정확히 표현은 못했지만 그러한 내용을 적절하게 설명을 드리기도 했지만 사의표명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조직의 입장들이 그렇게 강하다는 이야기죠. 다시 이야기하지만 그만큼 대통령이 개혁적인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가 힘이 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일이 이 건 하나 뿐이 아니라는 사실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죠.


정보와 기술
관료집단과 관련하여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기술입니다. 행정이 점점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행정은 일반적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죠. 정책문제와 행정문제에 대한 폭 넓고 정확한 정보와 효과적인 처리기술을 요합니다. 날이 갈수록 그렇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습니다만 이러한 정보와 기술은 쉽게 구할 수도 없고, 쉽게 익힐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조세문제를 많이 이야기하는데요. 사실은 잘 모르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세를 누가 어떻게 부담하고 있는지, 세목과 세율을 바꾸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자료들이 나와 돌아다니지를 않습니다. 이런 자료를 누가 가지고 있지요? 당연히 기획재정부의 세제실이나 국세청이 쥐고 있겠지요. 청와대도 때로는 이런 정보를 다 받을 수가 없습니다. 청와대에서 가져오라 해도 안 가져옵니다. 개인정보 유출 등, 가져오면 말썽이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못 내놓는 것이지요. 그런 정보를 전부 이 관료집단이 독점을 하고 있습니다. 통제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을 대신해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장관이나 차관이 관료집단을 통제해주면 되죠. 이를 통해 정권의 이념과 가치가 살아나게 할 수 있는 거고요.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장관은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부처에 파견이 된 사람인데, 조금 있으면 그 장관이 부처의 대표가 되어 대통령 앞에 나타납니다.

 

그런 일이 많으냐고요? 한마디로 적지 않습니다. 특히 전문성이 낮은 정치인들이 장관으로 임명된 경우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주로 정치적인 활동을 하느라 밖으로 쫓아다니면서 내부 일을 차관을 비롯한 간부들에게 맡겨 놓는 경우가 많은데, 얼마가지 않아 관료집단의 유능함(?)과 외부의 고객집단의 영향력에 포획(?)되죠.

최근 몇 년간의 보건복지가족부 같은 경우를 보시죠. 의료법인 영리화를 추진한다는 공약이 있었지요. 이명박 대통령의 중요한 공약 중 하나였을 겁니다. 장관을 임명할 때 틀림없이 그러한 부분을 짚었을 것이고요. 그런데 부처로 가서는 결국 그 반대의 길을 가게 됩니다. 관료집단이 지닌 정보와 기술에 감화를 받은 거죠. 임명권자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혔을 겁니다.

 

법과 제도 및 책임의 문제
관료집단 문제와 관련하여 법과 제도의 문제를 이야기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관료집단이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의 철학이나 정책방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 드렸습니다만......... 그런데 그렇지 않고 이를 열심히 따라오고자 할 때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관료집단을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몰고 가는 것이 법과 제도입니다. 법과 제도가 일을 하게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죠. 온갖 규정과 규칙 등이 관료들에겐 밟으면 터지는 지뢰가 됩니다. 그러고 보면 도처에 지뢰밭이죠. 움직이면 당합니다. ‘그릇 깰까봐 설거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오는 거죠.

 

언젠가 한 번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께 농담 삼아 물었습니다. ‘삼성전자 사장하다가 정통부장관하니 뭐가 다릅디까?’ 그랬더니, 금방 두 가지를 대답해요. 그 하나는 우선, “삼성에 있을 때는 미래를 생각하느라고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장관이 되니까 과거 이야기를 하느라 미래를 생각할 틈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삼성에 있을 때는 신제품을 어떻게 만들고, 시장을 어떻게 뚫고 들어가느냐를 생각하느라 바빴다는 거죠. 그래서 어제 뭘 하고 그저께 뭘 했는지도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부에 오니까 지나간 일 감사받고 국회 출석해서 지나간 일에 대해 답변하고 하느라 정신이 없더라는 거죠.

 

또 하나는, “기업에서는 아홉 가지 사소한 잘못을 해도 중요한 일 한 가지를 잘 하면 그걸로 승진도 하고 하는데, 정부에서는 아홉 가지 큰일을 잘 해도 한 가지 작은 일을 잘못하면 목이 날아간다”는 거였습니다. 말이 되지요? 온통 지뢰밭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고백을 하나 하지요. 심지어 장관들조차도 잘 움직이지 않으려 합니다. 장관들 눈에도 지뢰가 도처에 있는 거죠. 사실, 장ㆍ차관을 비롯한 정무직이 뭐 하는 자리겠습니까?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가 책임지는 겁니다. “내가 책임질 테니 그렇게 하라” 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정무직들조차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누가 봐도 해야 할 일을,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을 정부부처나 기관이 하지 않고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점심을 하거나 차를 하면서 그 이유를 알아보면 결국 책임문제입니다. 전화를 하건 아니면 문서를 보내건, 청와대에서 확실히 지시를 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 옵니다. 결국 그렇게 하지요. 전화를 하건, 회의를 하건, 아니면 문서를 보내건 하지요. 아마 모두 기록해 둘 겁니다. 몇 월 며칟날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화........ 뭐 이런 식이겠지요. 나중에 사고가 나면 훌륭한 보험이 되는 거죠.

부동산정책 다룰 때의 기억은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종합부동산세를 만드는데 곳곳에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심지어 당도 반대했고요. 당까지 반대하니 정부부처는 더욱 불안해졌고요. 특히 과세대상을 9억 원에서 6억 원으로 낮출 때 더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청와대에서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이건 청와대에서 밀어붙였다 하세요. 회의기록도 그렇게 남겨도 좋습니다. 내각은 다 반대했다고 하세요.”.......

 

무슨 일이었는지 밝히지는 않겠습니다만 심지어 15분이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있었습니다. 이해관계도 다 드러나 있고 각 부처의 입장도 대체로 다 정리되어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결국 청와대에서 관계 부처 장ㆍ차관들을 모아 회의를 했죠. “자, 이렇게 갑니다” 라고 결론 내리는데 15분 이상 안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건이 1~2년 동안 꼼짝을 않고 있었던 겁니다. 모두 책임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사안마다 이럴 수 있습니까? 청와대가 챙겨봐야 얼마나 많이 챙기겠습니까? 그 한계가 분명한 것이고, 그 와중에 수많은 중요한 개혁사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떠돌게 되는 거죠. 집권후반기로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요....... 집권해도, 대통령되어도 세상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선거, 정당, 국회의 문제

선거와 정당
그 다음, 관료조직을 넘어 정치적인 문제로 한번 가보지요. 이것은 더 큰 문제죠. 먼저 선거가 국정에 미치는 영향을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노무현 대통령께서 늘 고민하시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만....... 선거가 다가오면 대통령이 일을 못합니다. 아마 청와대 계셨던 분들 기억하실 겁니다. 선거가 다가오면 대통령께서 한 발 뒤로 물러서곤 했죠. 민심을 잃을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물러나 버렸습니다. 선거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까 걱정했던 거죠.

선거 결과도 문제입니다. 집권 초기에는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힘이 실리죠. 그러나 임기 중간에 선거가 실시되면서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중간선거는 대체로 집권여당이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요구나 기대가 실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기 때문에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지지도가 하락하게 되어 있죠. 당연히 중간선거는 힘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특히 진보ㆍ개혁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경우죠. 대부분의 중간선거에서 집권여당이 패배합니다. 탄핵반대 바람이 불었던 17대 국회의원 선거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100% 지죠. 개혁에 대한 기대심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언론환경과 관료문화 등 실제 그러한 개혁과제를 실행하기 위한 환경은 오히려 더 나쁘기 때문이지요. 지지자들이 더 쉽게 실망할 수 있고, 그런 만큼 선거도 더 힘들어지는 거죠.

 

선거 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몇 달 동안 동력이 쫙 빠지죠. 당과의 관계도 말할 수 없이 나빠집니다. 이걸 겨우 회복할만하면 선거가 또 돌아옵니다. 아래 <그림3>을 한 번 보시죠. 선거가 얼마나 자주 있는지......... 거의 해마다 선거가 있죠. 국회의원 선거에 지방선거, 그리고 보궐선거......... 참여정부 때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전부 선거가 있었습니다. 보궐선거가 전후반기 다 있었던 때도 많죠. 
 

   

 

 

 

앞으로는 어떠냐?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선거가 있습니다. 그 다음 정부도 마찬가지겠죠. 중간선거의 부담을 안게 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선거가 있게 되면 대통령이나 정부가 소신껏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거에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하는데다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국회가 열리지도 않죠. 특히 논란이 가중될 수 있는 법안은 전부 잠자게 됩니다.

 

큰 문제지요. 여기다 정당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정당들이 정책정당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야 할 것 없이 정책적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습니다. 정책정당이면 대통령의 인기가 조금 떨어져도 뜻을 같이 해서 가게 되죠. 그런데 그렇지를 못하니까 대통령 인기가 조금만 떨어져도 정책적인 방향을 확 바꾸어 버립니다. 대통령이나 정부와 정책정향을 달리하는 국회의원들이 ‘신주류’니 뭐니 해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또 힘들어지는 겁니다. 당정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상황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결정의 속도: 법안처리
이러다 보니 대 국회관계가 무척 힘들어집니다. 법안이 통과되어야 일을 하는데,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어지는 거죠. 재미있는 자료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정책문제가 행정부 정책의제로 채택되어 행정부 안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국회로 가서 심의ㆍ의결되어 법률로 만들어지고, 이것이 다시 행정부로 와서 집행되기 시작하는데 얼마가 걸릴까요?

 

 

   


 

 

참여정부 시절, 하도 답답하니까 이걸 한 번 분석해 봤습니다(그림 4). 1988년부터 2006년까지 분석한 데이터입니다. 모두 3,131건의 법안처리를 분석한 건데 행정부 정책의제로 채택되어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하는데 까지 평균 14.5개월입니다. 시민사회 의견 조회하고 부처 간 이해관계 조정하며 해 나가는 거죠. 그 다음에 여러 대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결정행위를 하는 데에 7개월, 그리고 이것이 국회를 통과하는데 7개월 걸립니다. 마지막 시행에 들어가기 까지가 또 5.9개월. 도합 약 35개월입니다. 3년이 걸리는 겁니다. 문제가 인지되고, 이 문제가 의제로 채택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넣지도 않았죠. 물론 이것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죠. 예컨대 대학등록금 문제가 언제부터 시끄러웠습니까? 언제부터 시끄러웠는데 지금에서야 의제로 채택이 되는 겁니까?

 

국회를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적지 않게 걸리죠. 당정협의다 뭐다 하여 정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절차를 다 거치고도 말이지요. 참여정부 때도 국회 통과하는 데만도 법안에 따라서 4.5개월 5.2개월 4.5개월 이렇게 걸렸습니다. 평균 그렇다는 겁니다. 중요한 개혁과제는 이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지요. 왜 그러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소야대 정국입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적지 않은 문제가 될 겁니다. 중간선거가 집권여당에 불리한 구도이기 때문에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봐야 되겠지요.

 

한 예로, 참여정부 때 중요한 개혁과제 중의 하나로 EITC제도 도입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워킹 푸어(working poors)들, 즉 일하는 저소득층 근로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서 만든 근로장려세제였습니다. 생산적 복지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겁니다만........ 이 EITC는 인수위 때부터 거론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언제 통과되었는가 하면 참여정부 거의 마지막인 5년차에 통과가 되었습니다. 시행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되었죠. 결과적으로 이명박정부가 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5년, 6년의 세월이 걸린 겁니다.

 

이것뿐이겠습니까?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인수위에서부터 인적자원육성을 위한 정책마련에 신경을 썼습니다. 대학 개혁을 포함하여 인적자원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인적자원육성기본법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죠. 이렇게 시작한 일이 언제 국회를 통과했느냐? 4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로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데도 말이죠. 국회로 간 다음에는 계속 사립학교법 문제 등과 패키지로 얽혀 한동안 상임위 자체를 열 수도 없었습니다.

 

오죽 했으면 대통령께서 사립학교법의 일부 조항을 양보하고서라도 다른 중요한 인적자원 관련 법안들을 처리해 줬으면 했을까요. 개방형이사 등의 문제에 있어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가 죽으라고 양보를 안 하고, 그로 인해 국회 전체가 움직이지 않으니 답답해서 한 말씀이죠. 한나라당이나 박근혜 대표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런데 이런 입장이 또 논란이 되었죠. 진보ㆍ개혁 진영이 발끈하며 대통령을 공격하고 나섰고요. 말하자면 ‘집토끼’까지 놓치게 된 거죠.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추락하는 대통령

역삼각의 권력구도
이런 사정인데도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Imperial presidency,’ 즉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있는 거죠. 이러한 환상은 쉽게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문제가 얽히면 대통령의 리더십이나 정치력이 문제라고 합니다. 잘 살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주머니에 돈은 들어오지 않지, 세상이 확 바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게다가 ‘사립학교법 법안에 양보하자’는 소리나 해 대고......... 마음에 들 리가 있겠습니까? 지지도가 뚝 떨어지고, 정치력과 행정력은 더욱 떨어지게 되지요. 특히 보수편향의 언론환경이 존재하고 보수인사들의 여론점유율이 높은 상황에서 진보ㆍ개혁 성격의 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취임과 동시에 급전직하로 떨어지게 됩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도 추이를 한 번 보십시오(그림 5).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도 추이도요. 다 떨어졌지요.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죠. 이명박 대통령은 출발 자체가 낮았기 때문에 편차가 크게 심하지는 않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70% 이상에서 시작한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50% 선에서 시작했죠.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습니다. 실제하고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야권이 지리멸렬하니까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요. 아무튼 하향 추세는 틀림없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실제로 여권은 야권보다 지지기반이 단단합니다. 기본적인 지지율이 한 30%는 되죠. 진보나 야권 쪽은 분열이 심하고, 또 잘 삐칩니다. 같은 편에 몽둥이를 들이대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보수나 여권 쪽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위기에 빠졌다 싶으면 다시 뭉치는 그런 기류가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 자리가 일종의 역삼각형과 같다고 봅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실제로 대통령이 처리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죠. 말하자면 역삼각형의 윗변처럼 넓습니다. 그러나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혹은 권력적 기반은 역삼각형의 아래 꼭지점처럼 좁은 거죠. 당연히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한 번 흔들리면 그 다음부터는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그래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지를 점점 잃게 되는 악순환 구도에 들어서게 됩니다.

 

 

대연정 제안: 오죽했으면.......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든 이러한 구도를 벗어나고 싶어 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께서 크게 욕을 먹었던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 하나는 대연정 제안이었습니다. 다들 기억하시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셨던 것......... 욕 많이 먹었습니다. 지지세력도 크게 잃었었죠. 또 하나가 원-포인트 개헌 제안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논란이 심했죠. 욕도 많이 먹었고요. 왜 이런 제안을 하셨는지 설명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대통령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면 참여정부가 겪었던 어려움을 똑같이 다시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연정을 제안하시기 전에 대통령께서는 급하게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2박 3일 인가의 일정이었는데, 잠은 주로 비행기 안에서 자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같습니다. 하여간 급하고 불편하게 다녀오셨죠.

 

미국 가시기 전, 약 3일을 관저에서 두문불출 하셨습니다. 관저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오셨어요. 면담도 일체 하지 않으셨죠. 비서실장이고 정책실장이고 안 만나셨어요. 뭘 하시는 지 모두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미국 가시는 준비하시나 보다 생각했죠.

 

미국으로 출발하는 날, 모두들 관저로 인사를 드리러 갔죠. 출발 직전에 뜰에 나오시더니 손녀를 안으셨죠. 그리고 저를 쳐다보시더니 “오늘은 주제가 뭡니까?” 이러세요.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주제 말씀입니까?” 했더니, “세상 사람들이 뭘 이야기 하느냐고요” 하셨어요. 거의 달관한 모습 비슷하게 말이죠. 그래서 아무 뜻 없이 대답했죠. “대통령님 미국 가시는 이야기하겠죠.” 그랬더니 “그렇습니까?” 하시고는 대문 쪽으로 걸어가셨죠. 그 때는 좀 심각해 보이셨어요.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은 기내환송을 하는 것이 관례라 성남공항까지 가서 환송을 했죠. 헬기에서 내려서 비행기까지 걸어가는데도 표정이 계속 안 좋으셨어요. 미국가시는 부담 때문에 그러신가 보다 했죠. 기내까지 모셔드리고 인사를 드렸지요. “일정이 촉박해 고생하시겠습니다” 하고요. 그랬더니 힘없는 모습으로 하시는 말씀이 “비행기 안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합니다” 하시는 거예요. 지금도 그 모습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트랩을 내려오는데 가슴 속에서 뭐가 솟아오르더군요. 약소국가의 대통령........ 미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약소국가 아닙니까? 그 작은 나라의 비애 같은 것이었죠. 미국 대통령 잠시 만나기 위해 그 먼 곳을 불편한 일정으로 쫒아가야 하는, 그리고 이것저것 사정하고 호소해야 하는 설움 같은 것이었죠.

 

며칠 뒤 부시대통령 만나고 귀국을 하셨죠. 출국 때의 표정과는 180도 다른 표정이었습니다. 기내 영접을 하면서 “고생하셨습니다. 큰일 하셨습니다” 했더니, “그렇죠 큰일 했지요? 큰 일 했습니다” 하시더군요. 당신이 하신 일을 정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죠. 관저에 도착해서도 여직원이 꽃다발을 건네자 두 손을 높이 들며 ‘와!’ 하고 좋아하셨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출국 전 3일간의 두문불출이 모두 미국 가시는 문제 때문이었다고 말이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제가 틀렸더군요. 두문불출의 이유는 대연정 구상 때문이었습니다. 글을 쓰시면서 구상을 다듬으신 거죠. 왜 대연정이었을까요?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죠? 대통령과 정부가 일을 해야 하는데 여소야대 정국 속에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여당의 일부가 벌써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꼼짝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유일한 돌파구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중요한 개혁과제 몇 가지 풀어주고 나머지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라.” 이것 아니겠습니까?

 

이 구상을 총리 이하 주요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당정청, 그러니까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정부, 그리고 청와대의 주요 인사들이 매주 한 번 총리공간에 모여 간담회를 가지곤 했었는데 그 자리에 오셔서 이야기 하신 거죠. 미국 가시기전 이 문제에 골몰했노라 하시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한 가지 여운은 남기셨죠. “글로 논리를 풀어 나가고 있는데, 글이 잘 안되네요.”

반응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예상을 못했던 내용이었죠. 하나 같이 반대했죠. 저도 물론 반대했죠. “아까 글이 잘 안 된다고 말씀 하셨는데, 글이 잘 안 될 때는 내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당시 제가 드린 이야기 중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모두들 반대하는 상황 속에서도 대통령께서는 왜 해야 하는지를 계속 설명하셨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계속 강력히 반대했고요.

 

결국 대통령께서 물러서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안 꺼내겠습니다. 나는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계신 분들이 이렇게 반대하시니 다시는 안 꺼내겠습니다. 그리고 부탁컨대 이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머릿속에 있으면 반드시 입으로 나가게 돼 있습니다. 머릿속에서도 지워주십시오.” 표현 그대로를 기억합니다. “머릿속에서도 지워 주십시오.”

 

대통령께서 먼저 자리를 뜨시고 난 뒤, 곧 나머지 분들도 자리를 일어났죠. 문 입구에서 이해찬 총리께서 다시 한 번 당부를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하면서 말이죠. “대통령 말씀처럼 머릿속에서도 지웁시다.”

그런데 며칠 뒤 이게 신문에 나버린 겁니다. 누가 발설했느냐를 굳이 따져 뭐하겠습니까? 처음엔 작은 기사였죠. 이어 메이저 언론들이 크게 받았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결국, 이왕 세상에 알려졌으니 제대로 한 번 논의해 보자라고 된 거죠. 이렇게 시작된 것이 대연정 논의입니다. 시작이 어떻게 되었건, 현실성이 어떠했건, 그 안에는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비판과 비난에 앞서 대통령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나 국정운영 메커니즘 상의 문제점을 좀 더 이해하는 차원에서 접근해 줄 수는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포인트 개헌 제안: 내일의 대통령을 위해
원-포인트 개헌 제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주요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두 가지였죠.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4년으로 줄이되 현재 단임으로 되어 있는 것을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 이 두 가지였습니다. 둘 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반을 강화시켜 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역삼각형의 아래 꼭지점처럼 되어 있는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과 권력적 기반을 좀 더 넓혀 주자는 거였습니다. 이제 임기를 마치고 나가는 대통령이, 대통령직 5년의 고민과 고통을 담아 내일의 대통령을 위해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의 결점인 레임덕 현상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길게 설명드릴 이유가 없겠죠. 그리고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첫째, 중간선거로 인한 국정운영상의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선거가 있게 되면 그 앞뒤로 6개월은 손을 놓고 지내야 될 판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둘째, 여소야대 구도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중간선거는 여당이 불리한 경우가 많고, 그 결과 여소야대 구도가 쉽게 자리 잡게 되죠. 국회의원 선거를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하게 되면 그럴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는 거고요. 때마침 17대 대통령 선거는 2007년 12월, 18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8년 4월에 실시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임기를 일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본 것이죠.

 

제도를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행정부와 입법부가 일체화되어 다시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시민사회가 이렇게 성숙되어 있는데 그런 일이야 일어나겠습니까? 언론도 만만치 않고요. ‘제왕적 대통령’ 상황을 걱정하는 것보다 오히려 대통령이 취약한 정치적 기반과 권력적 기반으로 인해 주어진 헌법적 기능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을 더 걱정해야 된다고 본 것이죠. 개헌제안 때의 이야기처럼 대통령을 해 본 사람으로서 알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한번 생각해 보시죠. 내각제 국가인 영국은 내각의 결정이 곧 의회의 결정입니다. 다수당에서 내각을 장악하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정책결정은 원 라운드로 끝이 납니다. 의회의 입장이 자연스럽게 내각의 결정에 반영이 되죠.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행정부가 한 결정을 국회가 다시 한 번 결정을 해야 합니다. 행정부 차원에서 시민단체와 이해관계자들 의견 수렴하고, 부처 간 이견 조정하고 해서 국회에 보내면 국회가 다시 한 바퀴를 돌립니다. 투 라운드가 되는 거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이렇게 배웠죠. 대통령 중심제는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에 집행력이 높다. 그렇죠?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한 겁니다. 특히 우리와 같은 경우 당정분리가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여당에 대한 리더십이 없죠. 여당의 인사나 당내 선거, 그리고 공천에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여당이지 지지도가 떨어지면 야당보다 더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통령을 흔드는데 오히려 앞장을 섭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얼마나 괴로우셨으면 말이죠. 주민소환제도에 대해 한 때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셨어요. 기본적으로 반대 하신 것은 아니었고 ‘유보적’이셨죠. 주민소환이라는 것이 자치단체장이 잘못했을 때 주민들이 그 직에서 쫒아내는 제도 아닙니까? 지방자치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죠. 도입방침을 정하고 보고를 드렸더니 “그거 꼭 해야 됩니까?”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하셔야 된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했죠.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그런데요 내가 대통령 해보니까 대통령을 너무 흔들어요. 자치단체장도 너무 흔들면 일 못합니다.” 결국 주민소환 성립요건을 엄격하게 하겠다고 보고 드렸죠. 거듭 하시는 말씀이 “남발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시더군요. 대통령이고 자치단체장이고 일할 사람 일 좀 하게 해줘야지 너무 흔들면 일 못 한다는 말씀과 함께.


성공한 룰라에 실패한 노무현?

하나 부가해서 이야기 드리고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퇴임하실 때 우리 언론들이 브라질의 룰라(Lula) 대통령과 비교하더군요. 2010년 룰라 대통령이 퇴임할 때도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하더군요. 왜 같은 ‘좌파’ 이면서 룰라 대통령은 성공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했느냐는 논조였죠. ‘좌파’나 ‘실패’가 주는 뉘앙스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만 그걸 가지고 시비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와 브라질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좀 알고 비교를 해 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그래야 그 비교는 시비를 걸고 욕을 하기 위한 비교가 아니라 우리 미래에 도움이 되는 학습으로서의 비교가 됩니다.

 

룰라 대통령은 아주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굉장히 존경했던 지도자입니다. 87%의 지지도로 퇴임을 했죠. 역사상 퇴임하는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그렇게 꽃길을 깔아준 예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잘 했다는 것이지요. 경제가 좋았고, 경제가 좋았던 만큼 정치적 리더십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참 부럽지요? 우리도 그렇게 모시지 못 해 가슴 아픕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운도 좋았던 대통령입니다. 최근 와서 제조업이 꽤 강화되긴 했습니다만 브라질은 여전히 1차 산업 중심국가입니다. 농산물과 광물 같은 게 중심이 되어 있죠. 수출내역 한 번 보시죠. 제일 많이 수출하는 게 철광석 콩 같은 것들이죠. 가공품까지 포함하면 수출의 약 60% 내지 70%가 1차 산업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됐는가 하면요. 한때 그 가격이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졌죠. 그러다가 룰라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 확 치솟습니다. 집권한 기간이 2002년부터 2010년까지인데요. 2006년도부터, 특히 집권 후반기에 들어가면서부터 확 치솟죠. 2002년도를 100으로 잡을 때 250, 2.5배까지 가격이 뜁니다. 그야말로 ‘럭키 가이,’ ‘럭키 프레지던트’입니다. 

 

 

   

 

 

 

여기에 또 대규모 유전이 발견이 되죠. 이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외화가 또 들어옵니다. 원자재 값이 치솟으며 우리는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브라질은 오히려 만세를 부르는 구조였죠. 하여간 이렇게 들어 온 돈으로 저소득층과 빈민들에게 가계지원과 교육지원을 합니다. 결과적으로 양극화가 많이 완화되었죠. 전세계가 양극화로 신음을 할 때 브라질은 이를 오히려 완화할 수 있었던 겁니다.  

 

참여정부도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연 평균 4.5%의 성장을 했습니다. 같은 기간 브라질의 성장율은 4.4% 정도였습니다. 외환보유고는 어떨까요? 양쪽 다 크게 늘어났죠. 룰라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200~300억 불밖에 안 되던 게 나중에 퇴임할 때는 약 2,500억불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땠습니까? 1,600억불 정도 되던 것이 참여정부 말에는 2,700억불이 되었습니다. 룰라 대통령 임기보다 3년 짧은 기간에 말이죠. 우리 이야기입니다만 국민소득도 참여정부 말이 2007년에 21,600불이 되었습니다. 수출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2002년 말 1,600억불 정도였던 게 참여정부 말인 2007년에는 3,700억불로 늘어났습니다. 2.3배 성장한 거였습니다. 환율장난을 통해 서민가계나 수입기업에 나쁜 영향을 주며 이루어 낸 것이 아니라 원화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이루어 낸 결과였습니다.

불행하게도 브라질처럼 양극화를 크게 완화시킬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재원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늘 감세압력에 시달렸죠. 결국 강력한 정치적 압력에 의해 법인세를 인하시켜야 하기도 했죠. 연 수조원의 세수 감소가 따른 조치였죠. 얼마나 섭섭했으면 대통령께서 몇 차례나 법인세 인하가 기업을 유치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고, 우리 기업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몇 번이나 하셨죠. 큰 영향이 없다는 보고서를 읽어시고는 더욱 섭섭해 하셨죠.

 

대통령으로 무얼 그렇게 잘못했다는 겁니까? 어떻게 룰라 대통령은 성공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라 규정을 하죠. 양극화 문제만 하더라도 대통령의 실패이기 이전에 우리 정치의 실패 아닐까요? 책임을 면하자는 뜻은 절대로 아니고요.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고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재미삼아 해 보는 이야기입니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브라질 대통령이었으면 어떠했을까요? 룰라대통령보다 더 잘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룰라 대통령은 제조업 부분을 많이 희생시켰거든요. 이것이 브라질의 앞날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고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원자재 가격 등 1차 산업 생산물의 가격이 올라가고 유전이 발견되면서 달러가 계속 유입되었죠. 그 결과 브라질화의 화폐가치가 상승했습니다. 화폐가치가 상승하니까 자연히 제조업의 수출이 둔화되었죠. 오히려 브라질화 강세의 바람을 타고 밖으로부터 싼 공산품들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말이죠. 저가의 제조업 생산물들이 밀려 들어왔죠.

룰라 대통령 정부도 상당기간 이러한 분위기를 즐겼죠. 외화유입에 따른 인플레가 걱정되는 상황에 저가 수입품들이 들어오니 물가안정이나 서민가계 안정에 큰 도움이 되었죠. 그러나 브라질의 제조업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성장에서 소외되는 부분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브라질의 제조업은 상당한 위기에 있습니다.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죠.

참여정부나 노무현 대통령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엉뚱한 질문이죠. 아마 제조업 기반을 다지는 산업정책을 가지고 갔을 겁니다. 어떤 형태로건 말이죠. 왜냐하면 임기기간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앞으로의 먼 장래를 생각해서 정책을 구성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죠. 재미삼아 그냥 해 본 이야기입니다.


대통령의 죽음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브라질 대통령도 어려운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국정을 운영하겠습니다만 우리의 대통령들은 정말 어려운 환경 속에 있습니다. 앞서도 말했습니다만 특히 진보ㆍ개혁 성향의 대통령은 그렇습니다. 시장과 시민사회의 이해관계부터 복잡하지 않습니까? 옛날처럼 단순한 게 없습니다. 이쪽을 도와주면 저쪽이 손해 보게 되어 있고, 저쪽을 도와주면 이쪽이 손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의 기대는 크고, 이를 채워주기 위해 필요한 권력기반은 약합니다. 지지도는 금방 추락하고, 그와 함께 정치력과 리더십도 약화됩니다. 5년 단임에 당정분리,........ 관료집단을 이끌어 가기도 쉽지 않고 국회도 쉽지가 않습니다. 선거는 계속 다가오고요.........

 

매 맞을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나마 참여정부니까, 또 노무현 대통령이니까 그 정도라도 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참여정부는 출범 때부터 험난한 환경을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거기까지라도 간 것입니다. 처음부터 온실 환경이나, 날씨 좋은 상태에서 여행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비오고 천둥치고, 우박 쏟아지는 환경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칫 길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로드-맵 작업에 그렇게 매달렸던 거고요.

 

그래서 인수위부터 다르게 구성했죠. 기억하시다시피 참여정부의 인수위에는 정치인들이 거의 없습니다. 임채정 위원장만 정치인이었죠.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이 당선자를 도와 정책구상을 했던 학자와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5년의 로드-맵, 길을 잃지 않도록 할 로드-맵을 작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치인들에 인수위를 맡겨서는 그러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본 것이죠.

 

인수위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국정과제위원회를 만들어

   
 

로드-맵 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정부의 정책이나 행정활동이 로드-맵에서 벗어나는지의 여부를 모니터링 하도록 했습니다. 비서실 체제로 운영되던 청와대를 비서실과 정책실로 분리시켜 정책실로 하여금 이 모든 것들을 챙겨나가게 했고요. 말하자면 나름대로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갖춰 험한 환경 속에서도 목표를 잃지 않도록 한 겁니다.

 

지금도 이러한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더 험해졌으면 험해졌지 더 좋아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죠? 야당을 보십시오. 민노당 같은 경우는 정책 스펙트럼이 비교적 좁고 단순하고 괜찮습니다. 민주당 같은 당은 스펙트럼이 넓어 정책방향에 있어 쉽게 합의를 볼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등 상대를 비판하고 반대할 때는 비교적 쉽게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야당일 때는 그런대로 볼 만하다는 이야기죠.

 

 그러나 국정을 이끌어 갈 큰 그림을 내 놓을 때나 어떤 정책을 제안할 때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쉽게 합의를 볼 수 없을 겁니다. 여당 노릇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대통령 지지도가 내려가면 이를 때려 면피나 하려는 생각들이나 하겠죠. 청와대에 ‘십자가’를 지우다가 종내는 대통령을 출당시키고 어쩌고 하는 일이나 할 겁니다. 한두 번 있었던 일 아니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집권만하면 세상 바꾸겠다고 이야기하면 안 되죠.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되죠. 정말 제대로 집권해서 제대로 일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또 대통령 등에 칼 찌르고 출당시키고, 아니면 서로 욕하고 차별화 한다고 튀어 나가고, 그래서 다시 불행한 대통령 만들고 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되죠.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기간 내에 어떠한 어려움을 겪었고, 어떠한 고민을 했는지 정말 주도면밀하게 분석해 봐야 합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서로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야겠죠. 헌법을 비롯해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할 것이 있으면 이것도 고치도록 노력해야 할 거고요. 당정관계나 선거제도가 잘못되었다면 이것도 고쳐야 하겠죠.

 

전직 대통령이 절벽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5년 집권기간의 대부분을 고통과 고민 속에서 보내시다가 말이죠. 어떻게 우리의 역사가 이렇게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을 해 보셨습니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얼마나 고민해 보셨습니까? 혹시 그런 고민 없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이나 여권 내의 갈등을 즐기기나 하고 있지 않은가요? 반사이익이나 기대하면서 말이죠. 지금 이대로라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내일의 나에 대한 비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 보셨나요? 이런 저런 생각 없이 돌아가신 대통령의 초상화나 들고 표 얻으러 다니는 것 아닙니까? 집권하면 세상 바꾸겠노라 큰 소리 치면서 말이죠.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마치겠습니다.

 

*이 강의록은 라디오21이 주최한 ‘고 노무현대통령 2주기 추모’ 강연의 제4강(2011년 6월 1일)을 녹취하여 읽기 편한 문장으로 재정리 한 것입니다. 재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첨삭과 일부 내용의 전후 이동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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